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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독버섯 Jul 17. 2023

무화과 쿠키


  이것은 불지옥 사진이 아니다.

  내가 오늘 구운 무화과 쿠키의 사진이다.


  가끔 유튜브를 보며 베이킹을 연습하고 있는데,

잘되다가도, 어떤 날은 늘 하던 레시피 그대로 했는데도 불구하고 쿠키가 퍼져버리곤 한다.


  날이 덥고 습해서 일수도 있고, 설탕을 너무 녹여서 일 수도 있고, 아무튼 이유는 무궁무진하다.

같은 레시피로 만들어도 공기의 습도에 따라 결과물이 달라지는 베이킹이란 것은 '밀당을 잘하는 남자친구' 같다.


  잘된다 싶으면, 어느 날 이렇게 엉망이 되어버려 베이킹은 때려치워야겠다 싶다가.... 또 어느 날은 백화점 지하식품관에서 팔듯한 비주얼이 완성되어  '이거 이거 베이킹으로 돈 벌어야 되는 거 아니야~'하는 고민을 하게 하는 희한한 취미!


오늘의 기미상궁도 역시 남편.

한 입 먹어본 남편은 이야기한다.

"음.... 생긴 건 좀 그런데 맛은 있네!"

 

젠장!!!!!!! 아직도 그타령이냐!!!!!!!!!!!!

남편의 시식평은 나를 타임슬립으로 20년 전으로 데리고 갔다.






  20년 전 남편은 남자기숙사에 살고 있었는데 당시 그가 기숙사에서 여자친구가 생겼다고 고백하자, 친구들은 모두모두 옹기종기 둘러앉아 같은 질문을 했다고 한다.

.

.

.

"이쁘냐?"


  남편은

"음.... 생긴 건 그저 그런데 대화가 잘 통해!"라고 사실을 이야기했고, 이 이야기는 돌고 돌아 어느 날 한 선배를 통해 내 귀에 들어왔다.


 '뭐라고라고라... 생긴 건 그저 그렇다고??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에 관한 법률이 어디 있더라....'


  남편은 생긴 게 그저 그런 나와 6년이나 만난 후 결혼을 결심했고,  결혼을 앞둔 어느 날, 나는 아버지가 안 계시니 아버지를 대신해 우리 외삼촌 3형제가 총출동해 남편을 불러내었다.


'이 녀석... 우리 삼촌들 싸움 장난 아닌데... 후훗.'


  어깨에 뽕을 63 빌딩처럼 넣고 나는 삼촌들과 남자친구의 대면자리를 마련하였다. 삼촌뿐 아니라 이모, 숙모, 조카들까지 바글바글 모인 이곳은 남편 입장에선 쉽지 않은 장소인지 연신 땀을 흘렸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술자리가 길어지던 와중에,

나는 내편이 압도적으로 많은 이곳에서, 6년간의 한을 이제야 풀기로 마음먹었다.


  "삼촌삼촌 있잖아~~ 오빠가 처음에~~ 친구들한테 내가 생긴 건 그저 그런데 말이 잘 통해서 만난다고 소문내고 다녔대!!!"


  "자네 정말 그랬는가???"


  "아... 아니... 그게 아니라. 외모보다는 마음이 더 아름다운 사람을 만났다고 이야기한 것이 그렇게 와전된 것 같습니다.


   "자네  듣게. 윤정이가 생긴 건 그저 그렇지. 그건 사실이야.  자넨 얘가 생긴 건 그저 그렇지만 성격이 좋다고 결혼을 결심했겠지.

   하지만.... 잘 듣게.

   얘는 생긴 건 별론데 성격은 더 별로인 애야. 자넨 망했네. 으하하하!!!!!!!"


삼촌들은 껄껄껄 웃으며 남편에게 위로의 술잔을 건넸고....


난 생긴 건 그저 그런데 맛은 최고인 쿠키를 보니 자꾸 눈물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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