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영어회화 수업이 있는 날이다.
아침 운동은 건너뛰고, 간단히 준비한 후 버스를 타고 책방으로 향했다. 부족한 영어 실력이지만 열심히 스피킹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허기마저 느꼈다.
며칠 전부터 먹고 싶던 짜장면을 먹으려고 집에 들러 어두운 티셔츠로 갈아입고 다시 집을 나섰다.
꾸덕하고 맛있는 짜장면 가게가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다는 사실이 너무 감사했다.
주방장님이 화교출신이라고 알고 있는데 짜장면이 내 입맛에 딱이다. 게다가 이곳 고춧가루가 꽤 맵다.
한 젓가락 할 때마다 고춧가루를 솔솔 뿌려 먹으면, 매콤한 기운이 확 올라와 짜장면의 맛을 한층 끌어올린다.
나이가 들면서 느끼하고 밀가루 들어간 음식은 소화가 안 돼 즐겨하지 않지만 짜장면은 한 번씩 먹고 싶더라. 그날이 오늘이었다. 단무지와 양파를 춘장에 찍어 짜장면을 가득 물고 같이 씹어먹을 때 입 안의 조화로운 그 맛은 다들 알거라 생각한다.
미세먼지는 많지만 햇빛도 쨍쨍하고 배도 부르니 기분이 한결 좋아졌다. '좋아졌다'는 단어를 사용한 이유는 근래에 내 감정이 롤러코스터 타듯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이 너무 심해서 멀미가 날 정도였기 때문이다. 덕분인가. 조급함은 진정되고 여유를 느끼며 버스를 타고 스터디카페로 향했다.
스터디카페에 왔을 때 제일 기분 좋을 때는 아무도 없을 때다. 사장님 입장을 생각하면 결코 좋은 상황은 아니지만 조용히 혼자 집중하는 맛을 알기에 거짓말은 하지 못하겠다. 바로 커피 한잔 뽑아 들고 내 자리로 가 가방을 풀고 공부할 준비를 마쳤다.
열심히 집중하다 보니 하나둘씩 룸으로 들어왔다. 조용한 곳에서 나는 작은 소리가 유독 크게 느껴진다. 한쪽에서 먼저 시작된 소리. 쿵쿵 탁탁. 초반에 짐 푸느라 소리가 나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왜 계속 저렇게 둔탁한 소리를 내는 걸까 고개를 돌리니 두꺼운 책을 계속 들었다 놨다 하더라. 그리고 내 시선을 느끼고 잠시 조용해졌다. 그 후 내 바로 뒷자리에서 펄럭거리는 소리가 연달아 났다. 처음 책을 펼치는 건가 싶어 신경 쓰지 않으려고 했다. 그런데도 한참을 펄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소리에 특히 예민해서 짜증이 확 밀려 올라온다.
숨을 고르고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버언...
오늘 날씨가 좋아서 기분 좋았다는 말 거짓말, 맛있는 밥 먹고 든든해서 좋았다는 말 거짓말, 나는 여전히 짜증이 가득했다. 그런 나를 시험이라도 하듯 끝도 없이 이어지는 펄럭거리는 소리에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나는 가장 뾰족한 연필을 집어 들고 뒤로 돌아 그 사람의 오른손에 그대로 꽂았다.
-퍽
-쑤욱
-뿌드득
마치 뼈를 스치듯, 가늘고 기분 나쁜 소리가 울렸다.
순간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파악하려는 남성의 눈동자, 사람들의 시선, 바닥에 떨어진 피. 서서히 일그러지는 얼굴. 남성은 왼손으로 오른 손목을 부여잡고 그제야 현실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이어지는 외마디 비명소리.
"으으으으아아악!"
그 비명은 조용했던 공간을 찢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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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비명은 내 내면에서 들린 비명소리였다. 나는 여전히 의자에 앉아있었다. 한 손에는 연필을 들고 다이소에서 구입한 선 이어폰을 귀에 꽂은 채 시선은 태블릿을 향해 있었다. 그리고, 뒤에 앉은 남성은 여전히 시험지를 펄럭이고 있었다. 나는 조심스레 고개를 돌려 그의 정체를 확인했다.
그렇다. 오늘은 2025년 첫 모의고사날이었다. 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 화는 눈 녹듯 사라졌고, 고 3의 스트레스가 오히려 짠하게 다가왔다.
'정답 확인하고 있었나 보다/점수라도메기는 건가/잘 봤으려나'
분노는 걱정과 안쓰러움으로 바뀌었고, 나는 다시 내 공부에 집중할 수 있었다. 펄럭이는 소리는 여전히 들렸지만, 이제는 신경 쓰이지 않았다. 내 안에 남아있던 불안과 긴장의 잔재가 그를 이해하는 하나의 마음으로 천천히 바뀌어갔다. 나는 조용히, 다시 내 일에 몰입했다.
문예창작학과에 입학하고 스터디카페에서 공부하는 도중, 사건에 대한 과제가 있었습니다. 지금 이 순간을 글로 쓰면 어떨까 하는 호기심에 한 상상을 글로 표현했습니다. 제 하루와 상상을 섞은 글 어떠셨나요? 많이 어설프지요?ㅎㅎ 앞으로 종종 상상의 글을 올려볼 생각입니다. 글 읽어주셔서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