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은씨 이야기 (5)
그러다 결국 지은씨의 열등감을 제대로 건드리는 사건이 일어나고야 말았다.
“우리 이번에 세부 가려고.”
미영 씨가 가족 여행으로 세부에 가게 되었다면서, 여행 자주 다니지 않았냐며, 어디 갈까, 뭐 준비할까, 조언을 요청했다. 지은씨로 말하자면야 세부 여행 두 번, 보홀 여행 한 번의 경력을 가진 필리핀 여행 전문가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지은씨는 이것저것 조언을 늘어놓았다.
“어휴, 세부면 짐이 어마어마하겠네. 스노클링 마스크에 오리발까지 다 챙겨가야 할 거 아냐.”
“오리발까지 가져가야 하나? 필리핀 물가 싸다던데, 거기서 사거나 빌릴 수 없어?”
“거기는 인건비가 싸지, 섬나라라서 공산품은 비싸. 한 번 빌리는데 한국에서 사가는 가격 달라고 하더라고.”
짐을 늘이기 싫었던지, 미영씨는 지은씨의 대답이 불만족스러운 듯 예희씨를 쳐다보았다. 예희씨가 잠시 고민하다 한 마디 얹었다.
“호텔마다 다르겠지만, 내가 간 호텔은 무료로 빌려주던데.”
“정말? 호텔이 어디었어?”
“샹그릴라.”
“어머! 거기 세부에서 가장 좋은 데잖아! 가격부터가 다른 데 두 배던데. 그렇게 비싼 데라면 당연히 다 공짜로 빌려줘야지.”
지은씨는 빈정이 상했다. 그래, 알지, 샹그릴라. 하지만 애들 놀기에는 다른 데가 더 좋다길래 안 갔을 뿐, 절대 샹그릴라가 비싸서 피했던 건 아니었다. 하지만 미영씨의 호들갑을 듣고 있자니, 자신은 돈이 아까워서 장비 무료대여 서비스조차 없는 싸구려를 선택한 인간으로 전락한 것만 같았다. 지은씨는 쓴맛을 삼키며 예희씨에게 딴죽을 걸었다.
“샹그릴라는 그거 빌려줘도 딱히 애들 놀 데가 없지 않아?”
“우리는 괜찮았어. 해변에 물고기도 많았고….”
미영씨가 끼어들어 손사래를 쳤다.
“에이, 됐어. 샹그릴라는 어차피 예산 밖이야.”
아니야, 너는 몰라도 나는 비싸서 샹그릴라에 못 간 게 아니라고! 지은씨는 억울했지만 딱히 자신의 답답함을 알릴 방도가 없었다. 그런 지은씨의 억울함은 뒤로 한 채, 미영씨는 예희씨와 이것저것 확인하고 있었다.
“그럼 스노클링 장비랑 다 챙겨가긴 해야겠네. 애들 있으니 트렁크 하나에 모조리 다 넣어 챙겨가려 했는데, 되려나….”
“하나는 좀 힘들지 않을까? 무게 초과할 것 같은데.”
“그렇지? 그래도 초과금액 내더라도 하나에 다 모는 게 좋지 않으려나? 트렁크 여러 개면 애들을 어떻게 챙겨.”
아니, 답답하게 무슨 소리 하는 거야? 내가 가르쳐 줘야겠구만, 지은씨는 다시 끼어들었다.
“괜찮아. 소아랑 같이 타면 수화물 무게 합산 되잖아.”
“어머, 정말?”
“응. 그렇다고 막 무조건 합산이 되는 건 아니고, 최대 수화물 무게가 30kg인가…, 거기까지는 무료로 합산될 거야.”
예희씨가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정말? 그런 얘기는 처음 들어 봐.”
하하, 명품 사고 비싼 리조트 가느라 여행은 몇 번 못 가봤구나. 다시금 정보의 우위를 점한 지은씨는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가족이라도 성인은 안 되고 소아만 가능한 거라, 사람들이 잘 모르더라고.”
“혹시 항송사마다 다른가? 지금 검색해볼게.”
“아, 그럴수도 있긴 하겠다.”
미영씨는 핸드폰으로 잠깐 검색을 해 보더니, 둘에게 검색 결과를 읊어주었다.
“대부분의 저가 항공사들은 무게제한이 15kg인가 밖에 안되기에 소아 무게합산 서비스를 제공한대. 그런데 대한항공이랑 아시아나는 합산 안된다네. 대신 무게제한이 22kg 정도로 훨씬 높고….”
“아…. 그렇구나.”
“어휴, 저가 항공사가 의외로 이건 서비스가 더 좋네. 다행이다.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는 비싸서 못 탔는데, 이런 데서 덕을 보네.”
“그래, 세부 같은 데 갈 때는 저가가 나아. 괜히 대한항공 타면 밥 준다고 깨워서 잠도 못 자고….”
미영씨의 안도의 기쁨을 뒤로, 지은씨는 벙 쪘다. 그래서…, 예희씨는 여행도 늘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만 타고 다니는 건가? 그래서 무게 합산 같은 건 해 본 적도 없는 거고? 나는 늘 저가항공만 타고 다녀서 무게합산이 당연한 줄로만 알았고?
어쩌면 샹그릴라를 선택하지 않은 것도, 결국은 애들을 핑계로 한 자기합리화가 아니었을까? 내가 정말 돈 생각 안 하고 골랐다면 그래도 샹그릴라를 납두고 제이파크를 골랐을까? 최소한 샹그릴라를 한 번 정도는 가 보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