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희씨 이야기 (1)
예희씨는 옛날부터 남한테 아쉬운 소리를 해 본 일이 없었다. 주변에서는 늘 미인이라고 예희씨를 떠받들어줬다. 지금의 남편은 예희씨가 대학을 막 졸업했을 무렵 개원 준비를 하던 한의사였는데, 나이가 많아 예희씨로서는 썩 성에 차지 않았다. 소개팅 주선해 준 친구 면도 있으니 예의상 데이트는 끝마치고 ‘연락하지 마세요’ 한 마디를 남기고 쌩 돌아섰건만, 남편은 그 이후로 지극정성으로 예희씨를 쫓아다녔다. 남편 말이 평생에 두 번 만나기 힘들 이상형이어서 미친 척 죽자고 매달려 봤다나? 아직도 그 때 스토커 신고하지 않아줘서 고맙다며 예희씨를 떠받들고 사는 착한 사람이었다.
전업주부였지만 예희씨는 음식물쓰레기 한 번 자기 손으로 버려 본 적 없었다. 집안일에 발 벗고 나서는 남편도 남편이지만, 일 주일에 두 번씩 오는 이모님이 매번 버려주기에 예희씨가 딱히 손 댈 데가 없었다. 자식은 딱 하나만 갖기로 하고 낳은 아들은 예희씨를 닮아 이목구비가 수려했다. 키즈모델 시키라는 소리도 자주 들었지만, 키즈모델이라는 게 자기 돈 써 가며 사는 엄마 만족이 다라는 걸 잘 아는 예희씨는 흔들리지 않았다. 아들과 함께한 호캉스 일상을 인스타에 올리며 받는 찬사로도 충분했다. 평화롭고, 한가롭고, 우아한 생활이었다. 그래, 분명히 그랬다. 그런 예희씨의 일상은 아들이 초등학교 입학을 기점으로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했다.
“라온이 자리가 조금 이상하던데.”
어느 날, 놀이터에서 만난 아이 친구 엄마인 미영씨가 자신이 학교에서 목격한 바를 제보했다.
“다른 애들은 다 칠판 방향으로 앉아있는데, 라온이는 혼자서 맨 앞에 따로 앉아서, 방향도 칠판이 아니라 선생님 책상을 바라보던데?”
“그래? 뭐 특별활동 같은 거 하고 있었나?”
“일일반장 같은 거 아니야?”
주변에서 이것저것 의견을 내놓았지만, 제보자가 입가에 띄운 쓴 미소는 부정에 가까웠다.
“그런 분위기 같지는 않았는데…. 모르는 거니까 한 번 전화해 봐, 엄마가 알긴 알아야 할 것 같아서.”
그 때까지만 해도 별 생각 없었다. 뭐, 잠깐 발표하느라 특별히 마련된 자리에 앉은 거겠지, 아니면 정말 일일반장이라든가…. 그도 그럴 게 라온이가 그동안 유치원에서는 특별히 문제를 일으킨 적 없었던 것이다. 간혹 친구 누구랑 다툼이 있었어요, 하더라도 그 친구 누구는 유치원에서 알아주는 악동이었고, 라온이는 그 친구가 먼저 싸움을 걸어와서 받아쳤을 뿐이라는 식의 결론으로 끝맺곤 했다. 뭐, 먼저 때린 것도 아니라는데, 남자애라면 적당히 받아 칠 줄도 알아야지, 그게 남편의 반응이었고 예희씨의 생각도 비슷했다. 어디 가서 라온이가 맞고 오는 것 보다야….
그 날, 저녁식사자리에서 예희씨는 라온이에게 자리에 대해서 물었다.
“라온이, 저번에 짝꿍 뽑기에서 세아 뽑았다고 좋아했잖아. 아직도 짝꿍이야?”
“아니.”
“그러면 누구랑 짝꿍이야?”
“짝꿍 없어.”
“짝꿍이 없으면, 다른 친구들은? 다른 친구들도 짝꿍 없어?”
“다른 친구들은 다 짝꿍 있어.”
예희씨는 슬슬 불안해졌다.
“세아 짝꿍은 누구야?”
“민준이.”
“왜? 지난주에 라온이가 세아랑 짝꿍 됐다고 했잖아.”
“그거, 선생님이 장난친 거래. 가짜였대.”
“다른 친구들한테도 선생님이 다 그런 장난을 쳤어?”
“아니, 세아한테만. 세아 짝꿍은 원래 민준이래.”
불안한 그림이 스멀스멀 그려졌다. 설마, 애들 다 뽑기로 자리 배정하고, 우리 애만 선생님이 따로 떼어내서 앉힌 건가? 정말로 교실 맨 앞에, 칠판도 못 보고 선생님을 바라보는, 무슨 벌이라도 받는 것 같은 그런 자리에?
“그러면 라온이는, 맨 앞에 혼자 앉는 거야?”
“응.”
“왜?”
“그 자리가 내 자리래.”
더 이상의 질문은 무의미할 거였다. 아이야 선생님이 앉으라는 대로 앉는 거지, 무슨 권한이 있겠는가? 다 같이 뽑기로 뽑은 짝꿍도 선생님의 ‘장난’ 한 마디에 갈아엎어지는 마당에….
그 자리가 무슨 의미인지, 아무것도 모른 채 얌얌 저녁을 먹고있는 아이를 보고 있자니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 당장 학교에 전화를 하고 싶었지만 이미 6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왜 그러셨지? 우리 아이가 무슨 거대한 사고를 일으켰나? 따로 공부를 봐 주셨던 건가? 아니, 1학년인데 뭐 얼마나 배울 게 있다고, 한글도 덧셈도 다 하는 아인데…. 예희씨는 저녁이 차마 목구멍으로 넘어가질 않아 반이나 남은 밥 공기를 그대로 음식물 쓰레기 봉투에 털어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