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초 학부모들

지은씨 이야기 (6)

by 나나

옛날부터 공부는 그저 그랬어도 잔머리 하나는 기막히게 돌아가는 지은씨였다. 어젯밤, 지은씨는 백화점 VIP가 될 한 가지 묘책을 생각해냈다. 우선 VIP 실적을 쌓을 만큼 명품을 구매하고, 그 명품을 모조리 사용도 안 한 새상품 중고로 되파는 거였다. 가격방어가 잘 되는 스테디셀러나 오픈런 해서 구매해야 하는 인기제품 위주로 구매하면 손해도 거의 없을 거였다. 5% 정도 손해를 본다 쳐도, 모조리 카드로 구매하면 연말에 연말정산 받을 수 있을 거고, 그런 걸 고려하면 어쩌면 손해를 보는 게 아니라 오히려 이득일 수도 있었다. 거기에 백화점 VIP 혜택까지 더해지면 더 따져볼 것도 없었따. 이건 안 하는 사람이 바보였다.


이런 결론에 다다르자 지은씨는 기분이 좋아졌다. 어쩌면 예희씨도 이런 방법으로 VIP 등급을 유지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하기사, 7천 만원을 쌩으로 매년 날리는게 말이 되냔 말이다. 예희씨가 직접 자기 입으로 명품 옷은 해 지나기 전에 당근으로 많이 보냈다고 했던 게 떠올랐다. 시즌이 너무 오래 지난 물건들은 잘 안 팔려서라고 설명했지만, 이제 지은씨는 진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연식이 되기 전에 얼른 팔아버려야 가격 방어도 되고, 그렇게 생긴 여유로 다시 백화점에 가야 구매실적을 쌓을 수 있고….


지금껏 이 방법을 생각해내지 못해서 예희씨 혼자 VIP랍시고 생색내는 동안 자신은 쫄따구 역할만 했던 게 억울할 지경이었다. 지은씨는 당장 백화점으로 돌격하고 싶었지만, 오늘은 아쉽게도 곧 아이가 하교하고 돌아올 시간이었다. 이 계획을 실천하기 위해선 우선 ‘에루샤’가 입점한 서울지점까지 나가야 했다. 이 동네는 그런 탑급 브랜드는 없고 애매모호한 명품들 뿐이었다. 그런 브랜드들은 중고값이 얼마나 처참한지, 늘 이런 브랜드만 이용했던 지은씨가 더 잘 알고 있었다. 다시 한 번 짜증이 일었다. 그래서 예희씨는 뭘 사도 에르메스만 고집했던 거네. 중고 가격 방어가 되니까…. 나는 멍청이처럼 B급 명품만 구매하는 바람에 되팔지도 못하고 돈만 낭비하고. 하지만 곧, 이제는 자신도 백화점 VIP가 될 거라는 생각에 짜증은 눈 녹듯이 사그라들었다. 그래, 이제라도 알아서 다행이지 뭐. 명품도 실컷 사보고, VIP도 되고, 도랑치고 가재잡고….


그렇지만 서울까지 나갈 생각을 하니 좀 귀찮긴 했다. 뭘 사야할지 고민에 다다르자 머리도 살짝 아파오는 거 같았다. 클래식 캐비어? 예전엔 오픈런 해야 했는데, 재고가 있나? 전화해서 우선 확인 좀 해둘까? 그런데 재고만 있으면 되는 거야? 에르메스는 딜러가 뜨내기 손님한테는 인기있는 제품은 안 준다던데…. 에르메스를 애용하는 지인 두엇이 떠올랐지만, 모두 강남쪽에 살았다. 여기서 강남까지 혼자 가는 길은 꽤나 멀고 퍽 쓸쓸할 터였다. 지은씨 머릿속에 다시 예희씨가 떠올랐다. 그 정도 단골이면 분명 아는 딜러도 있을 거고, 이 브랜드에 빠삭하니 뭐가 인기고 뭐가 구하기 힘든 건지 조언도 받을 수 있을 거고, 서로 집도 가까우니 둘이 백화점까지 심심하지 않게 갔다 올 수 있을 거고…. 지은씨는 핸드폰을 들어 올렸다가 다시 내려놓았다. 됐어. 뭣 때문에 내가 이짓꺼리까지 하는데. 괜히 되팔이 하려는 거 저쪽에서 눈치채면 나만 우스워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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