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희씨 이야기 (3)
예희씨는 착잡한 마음에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고 있는 아는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뭐 언니라고 뚜렷한 해결책은 없겠지만, 지금 이 상황에 대해 조금은 객관적인 얘기를 들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심 자신의 편을 들어주길 원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건 나도 자주 하는 건데.”
예희씨의 설명이 끝나자마자 언니는 까르르 웃으며 말했다. 예희씨는 번지수를 잘못 찾았음을 직감했지만 그렇다고 전화를 끊어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여기는 특별한 자리야~. 여기 앉는 친구는 친구들에게 본보기가 되는 좋은 모습을 보여줘야 해, 이런 식으로 나도 그렇게 해서 앞에 자주 앉혀.”
“언니, 그런데 우리 반은 그런 건 아닌 거 같아. 선생님도 좀 말투가 딱딱하고….”
“보통 학부모 상담할 땐 그래. 너무 붙임성 있게 대하면, 솔직히, 학부모들이 딱 자기 누울 자리 재고 너무 들이대는 게 있거든. 막 이것저것 요구도 많아지고…. 적당히 거리감을 유지할 필요가 있어.”
이 상황도 그런 상황은 아닌 것 같았다. 이 언니는 원래도 좀 넉살이 좋고 유들유들한 성격이었다. 예희씨가 만나 본 라온이 담임선생님은 전혀 그런 타입은 아니었다. 원체가 깐깐하고 차가운 성미인 듯했다.
“그리고, 우리 라온이가 학교에서 어떻게 하는지 보라면서, 동영상을 보내줬단 말이야?”
“동영상을?”
“응. 지금 보내 줄 테니까 언니도 좀 봐봐.”
선생님이 ‘라온이가 그 자리에 앉아야만 하는 가장 확실하고도 명확한 증거’로서 내밀었던 자료였다. 동영상 속에서 라온이는, 연필을 쥐고 있기 힘들다는 듯 연필을 책상에 내려놓고, 손을 흔들고, 뒤를 돌아보고, 그러느라 연필이 떨어지고, 그 연필을 줍기 위해 몸을 숙이고, 그러고도 연필을 못 찾아서 허우적대고…. 그러는 동안 친구들은 연습장에 가, 나, 다, 라를 착실히 써 내려가고 있었다. 라온이를 뺀 모두가.
“야, 너네 반 애들 대단한데?”
정작 언니의 눈에 들어온 건 라온이가 아닌 다른 아이들인 듯했다.
“우리 반은 안 이래. 라온이 같은 애가 우선 두세명 있고, 가끔씩 한두 명 자리 탈주해서 돌아다니고…. 그게 보통인데.”
언니의 관심사 또한 주제에서 탈주해 돌아다니고 있었다. 예희씨는 끼어들어서 라온이라는 오늘 전화의 목적을 환기시켰다.
“그런데, 이게 그런 자리에 앉을 만큼 큰 잘못은 아니잖아. 뭐 누구를 때린 것도 아니고…. 그냥 주의가 조금 산만할 뿐인데.”
“그런데 다들 저렇게 선생님 말에 착착 따르니, 라온이가 튀긴 한다. 선생님 입장에서는 라온이만 잡으면 완벽해지겠다, 이런 식일 순 있겠는걸?”
“그래서, 그렇게 큰 잘못도 아닌데 애를 앞에다가 죄 지은 사람 마냥 앉혀놓는다고?”
“그게 벌이 아니라, 그냥 교정 방식의 하나인 거지. 솔직히 요즘 애를 때릴 수가 있니, 뭘 할 수 있는데? 저렇게 앉히는 거 말고는 뭐 애들 교정할 방법이 없어.”
예희씨는 찝찝함만 남긴 채 전화를 마무리해야만 했다.
남편은 늘 예희씨 인생의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아이를 낳기 전, 직장 내 직무변경으로 두 배가 된 출근시간 때문에 스트레스 받던 예희씨에게 금전적 걱정은 말고 일 그만두라고 한 것도 남편이었다. 당시 막 개원한 상황에서, 빚은 많고 앞으로의 전망은 불투명해 남편으로서도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텐데 말이다. 망하는 한의원이 잘 되는 한의원보다 많다지만 남편은 ‘피부’라는 특화분야를 내세움으로서 승승장구했다. 동문들과 런칭한 한의원 화장품 브랜드는 그야말로 불티나듯 팔렸다. 지분 투자자 중 남편이 막내일 만큼 젊은 나이에 수완이 좋았다. 하긴, 아무리 전문직이라도 나이가 거의 10살 어린 예희씨를 소개팅으로 낚은 것만 봐도 보통 수완이 아니었다. 하지만 늘 든든했던 남편의 수완과 능력도 지금 상황에서는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다.
“뭐 그런 선생이 다 있어? 내가 지금 전화해야겠어.”
“오빠, 그만 둬. 이 시간에 무슨 전화야. 전화번호도 없어.”
사실이었다. 선생님과 통화하려면 5시 전, 그것도 선생님이 교실에 있을 경우에 한해서만, 학교 대표전화를 통해서 교무실로 연결이 됐으니까.
하지만 그런 것보다도, 예희씨는 라온이가 이보다 더 선생님께 미움받게 될까가 걱정됐다. 엄마가 자기 혼자서는 안 되니 아빠까지 끌여들였구나, 진상 취급받기 십상이었다. ‘아이 아빠가 많이 화났어요’라는 인터넷에서 유명한 밈도 있지 않은가. 게다가 남편은 화가 어지간히 난 게 아닌게, 보는 예희씨가 무서울 지경이었다.
“그리고 좀 진정해. 전화해서 고함치다 교권침해로 신고라도 당하면 어떡하려고….”
“누가 고함친댔어? 얘기만 할 거야.”
“지금도 화나서 고함치고 있는데, 전화해서 화가 안 날 것 같아?”
“그래도 누군가 말은 해야 할 거 아니야.”
“내가 다시 전화할게. 잘 얘기할게.”
“말 했다며. 전화했다며. 그런데 바뀐 게 없잖아. 그런데도 네가 계속 나서겠다고?”
그러면서 예희씨를 바라보는 남편의 눈에는 불신만 가득했다. 우리 오빠는 10살이나 많아도, 내가 돈 안 벌고 집에만 있어도 늘 나를 존중해 준다고 엄마에게 자랑하던 예희씨였다. 오늘, 예희씨는 그 존중이 남편이 허락하는 한정된 분야에만 해당되는 것이었음을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