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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나리자 Jul 03. 2023

아빠의 돈 냄새

작년 아버님이 돌아가시기 전까지는 양가 아버님 두 분을 모시고 종종 나들이도 가고 여행도 갔었다. 양가에 한 분씩 살아 계신 두 분이 동성이어서 좋은 점이었다. 친정 아빠는 아버님을 형님 대하 듯이 하셨다. 코드가 맞지는 않은 듯했지만 적당한 거리를 두시고 잘 지내셨다.


아버님 돌아가시고 처음으로 지난 5월 아빠와 아이들과 함께 단양 여행을 갔다. 숙소를 예약하고 아빠에게 이야기를 했는데 안 간다고 버럭 화를 내신다. 불편할 수 있다. 뭐 나라고 편하기만 한 여행이겠나?

아빠는 공식적으로는 비흡연, 비음주자이다. 여기서 공식적은 우리 딸아이들에게는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라는 거다. 젊은 시절부터 해오던 두 가지를 단칼에 끊는다는 건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로 인해 가족들이 힘들어하고 여러 큰 일들이 있었음에도 아빠는 결단하지 못했다. 3년 전 동맥 혈관이 일반 사람에 비해 늘어져 있다는 진단을 받고도, 호흡기 내과에서 폐 CT를 해마다 찍으면서도 술과 담배와의 이별은 쉽지 않다. 함께 여행을 하면 이틀 꼼짝없이 금연, 금주인데 아빠는 그게 더 답답했을 수도 있다.




그래도 우리는 떠났다. 단양으로..

금, 토요일 1박 2일의 짧은 여행 일정이었다. 금요일 오후에 출발해 6시쯤  단양에 도착했다. 길이 많이  막히지는 않았으나 두 시간 반 넘는 시간을 휴게소 한번 들르지 않고 달려왔기에 저녁 식사는 숙소에서 간단히 먹고 휴식을 하고 토요일 종일 구경하기로 했다.

토요일 아침 식사를 시작으로 우리의 단양 여행은 시작되었다.  날도 참 좋았다. 숙소 앞에 있는 장미터널은 말 그대로 넝쿨장미들이 긴 터널을 이루고 있었는데 시기적으로 꽃들이 막 피기 시작했다. 장미터널 옆으로 남한강이 흐르고 있었다.


다음으로 향한 곳은 고수동굴! 정말 동굴다운 동굴이었다. 좁은 통로를 따라 굽이진 곳을 따라가면 계단을 따라 오르고 내리고, 마지막 계단은 아찔하게 빙빙 돌아 내려놔야 했는데 순간 아이들을 두고 혼자 돌아 나오고 싶었다. 동굴 구경이 아니라 동굴 체험이었다. 아이들과 아빠도 매우 즐겁게 즐기는 모습이었다. 다음으로 우리는 페러글라이딩은 못하지만 양방산 전망대로 올라갔다. 다섯 명이 한 승용차를 타고 오르는데 순간 여기는 다시 어찌 내려가나? 싶었다. 길의 폭도 좁고 구불거리는 건 말할 것도 없었다. 게다가 그 좁고 가파른 길이 일방이 아니라 양방향이었다. 반대편의 차를 만난다면 어디로 비켜서야 하나 싶을 정도로 도로 크기는 너무 협소했다. 다행히 남편의 침착한 운전으로 우리는 정상에 올랐다. 그곳에 오르니 페러글라이딩을 하러 올라온 사람과 교육하시는 분들이 몇 분 계셨다. 전망만 보러 올라온 사람들은 우리 가족뿐이었다. 전망대는 지금은 사용되지 않고 있었다. 하긴 여기를 사람들이 오게 하려면 각자의 차가 아니라 따로 운행하는 교통수단이 있어야 할 듯했다. 멋진 단양의 풍경을 보면서도 난 다시 내려갈 걱정이었다. 우리는 , 아니 우리 남편은 심호흡을 하고 긴장된 모습으로 하산을 했다. 어쩌면 긴장은 내가 제일 많이 했을 것이다. 완전히 내려오자 아빠도 안심이 되었는지 한 말씀하신다. “역시 장서방 차분히 운전 잘하네.”

이제 동굴도 봤고, 높은 곳에서 전망 봤으니 도담삼봉을 보러 간다. 가장 관광객들이 많이 있던 곳이었다. 관광지 안에 있는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차도 마시고 휴식의 시간을 가졌다. 식사든 커피든 우리 아빠는 후루룩이다. 여행에서 아빠의 지루함은 이 시간도 포함되었을 것이다. 아직은 식사 시간이 긴 둘째를 아빠는 하염없이 기다려야 한다. 집에서야 식사하시고 아빠 방으로 들어가 tv를 보시지만 밖에서는 따로 가 있을 곳도 없다. 그래도 생각보다 아빠는 잘 기다리고 크게 지루해 보이지 않았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아빠가 일을 그만두시면서 아빠의 지루함은 내겐 스트레스다. 아빠가 심심해하는 모습이 너무 힘들다. 워낙 몸으로 일을 하셨던 분이신데 친분 있는 지인들은 엄마와 항상 함께 만나셨었다. 이 두 가지가 아빠에게서 없어지자 아빠는 자주 지루해하셨다. 그래서 알아보던 중에 구청에서 하는 정보화교육이었다. 컴퓨터를 제대로 사용해 보지 못했던 아빠에게는 신세계였다. 주 2회 아빠는 구청으로 교육을 들으러 가신다. 인터넷도 사용해 보고 한글타자 연습도 하신다.  아빠를 보면서 나이 들어서 재밌게 즐길거리는 꼭 있어야겠구나.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알아가면서 살아야겠다였다.

휴식이 끝나고 기념사진 촬영도 하고 우리는  만천하 스카이워크로 향한다. 이곳은 산 밑에 주차를 하고 따로 이동하는 버스가 있었다. 주차장에서 티켓을 다 구입해서 한 번에 오르면 좋았겠지만 중간에 한번 내려서 티켓을 구입하고 다시 버스를 타야 했다. 말 그대로 만천하가 내 발 밑에 있도다~ 다! 역시 난 여기도 유리 바닥으로 나가지 못하고 아이들과 남편, 아빠만 보낸다. 넷이서 사진도 찍고 구경도 하고… 말수 없는 사위와 여행이 아빠는 심심할 텐데 그래도 열심히 찍어 주는 사위의 카메라 앞에서는 포즈도 잘 취한다.




자~이제 저녁식사 단양구경시장에 간다. 유명한 만두, 튀김, 빵등을 사서 맛나게 먹었다. 토요일이라 그런지 시장에 사람도 많다. 단양이 생각보다 작은 도시여서 가족끼리 움직이기는 좋았다. 맛난 저녁 후엔 뭐다?! 커피! 아빠는 커피를 참 좋아한다. 생각보다 단양엔 카페가 많지 않았다. 일찍 문 닫는 곳도 있었다. 다행히 남한강 주변에 카페가 있어 여유롭게 커피까지 즐겼다. 이제 우리의 마지막 코스 수양개빛터널로 향한다. 가는 길에 이끼 터널이 있어서 지나가면서 구경하기 좋았다. 저녁시간에 들르기 좋은 곳이다. 수양개빛터널도 내부에 조명으로 화려하게 만들어 놓은 터널이 있었다. 그래도 우리는 정원이 더 멋지긴 했다. 아침 8시부터 시작된 우리의 여행일정이 저녁 9시쯤 끝났다. 이제 서울로 출발이다.




토요일 하루를 꽉 차게 보냈다. 출발처럼 우리는 두 시간 반을 쭉 달려 집에 도착했다. 아이 둘은 이미 꿈나라~ 짐 옮겨 놓고 아이 둘 눕히고 어른들 왔다 갔다 정리하는데 어디서 지독한 냄새가 난다. 우리 짐에 뭐가 있었나? 아니면 하루 집을 비운 사이 집에 뭐가 생겼나? 남편과 냄새의 출처를 찾는데… 아.. 아빠다. 잊고 있었던 우리 아빠의 발냄새. 아빠가 멋쩍게 웃으면서 말씀하신다. “종일 열심히 돌아다녀서 그런가 봐.”

우리 아빤 목수였다. 건물의 내부 인테리어를 하는 목수. 아주 어릴 적엔 뚝딱, 뚝딱 집안 가구도 만들어내는 아빠의 망치가 멋져 보였지만 사춘기 때는 다른 아빠들처럼 넥타이 매고 깨끗하게 하고 다니지 않는 아빠가 싫었던 적도 있다. 하지만 아빠가 도둑질을 하는 것도 아니고 착실하게 자신의 노동으로 가족들을 위해 일하심에 감사해야 한다고, 자랑스러워해야 한다고 스스로 마음먹었었다. 그 시절 아빠가 퇴근하고 집에 오면 아빠의 발냄새가 온 집안을 휩쓸었다. 정말 맡고 있기 힘든 냄새에 우리가 코를 막고 있으면 아빠는 웃으면서

  “이건 발냄새가 아니야. 돈냄새지!”

했었다. 그때의 그 발냄새가 종일 걷고 또 걸으며 했던 여행 끝에 풍기는 것이었다.

난 웃음이 났다. 아빠 오늘 힘들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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