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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 시장

by 모나리자

엄마가 조금씩 움직일 수 있게 되면서 나는 엄마와 시장 가는 걸 하루의 일과로 여겼다.

엄마의 구부러지는 손가락으로 봉지, 봉지

찬거리들을 들고 오게 할 수 없었다.


도깨비시장으로 올라가는 길은 좁고 가파르다.

언덕이 있고 계단이 나오고, 꼬불꼬불 골목을 올라간다. 차가 다니지 못하는 언덕길,

어른 세 명이 나란히 서면 딱 맞을 듯한 폭의

골목길을 엄마와 오른다. 엄마는 엄마의 병이

무색하게 잘도 오른다.


결혼 전, 사진 속의 엄마는 글래머러스한 몸매의

소유자였는데 이제는 바람 불면 날아갈 듯 야위어 있었다. 그래도 목소리만큼은 낭랑 그 자체였다.

밝은 기운이 넘치는 엄마의 딸로, 엄마의 보호자로, 나는 도깨비시장에 장 보러 간다.


한남동의 꼭대기에 자리한 도깨비시장은 위치가

위치인 만큼 올라가는 골목도 여러 갈래다.

엄마는 그날그날 사야 할 것에 따라 올라가는

골목을 정한다. 먹거리만 사는 게 아닌 날엔

우리의 속옷이나 양말을 사려면 쌍방울 집 쪽으로 올라간다. 엄마가 좋아했던 가정약국을 들를

때도 같은 골목으로 오른다.


도깨비시장에는 기와가 있는 단층 건물에 한약까지 판매하는 가정약국이 있고, 2층 건물 일 층에

자리 잡고 하얀 약사 가운을 입은 약사 아저씨가

계시던 덕천약국이 있었다.

엄마는 항상 가정약국에 갔다.

종일 무거운 나무를 나르고, 못 질을 했던 아빠를

위한 까만 파스를 사거나 모기약 에프킬라를

살 때도, 나의 지긋지긋한 축농증을 없애 준 한약도 모두 가정약국에 있었다.

가정약국은 우리 집 주치의 같았다.


가정약국에서 이슬람사원 쪽으로 세네 가게를

지나면 엄마가 가는 미용실이 있다. 엄마 덕분에

우리도 종종 갔으나 사춘기를 지나면서부터는

엄마 미용실을 따라가진 않았다.


여기서 이슬람사원의 반대 방향,

한광 교회 쪽으로 가다 보면 중국집이 하나 있다.

엄마의 은행 같은 곳이다.

한 달에 한 번, 우리는 여기서 짜장면을 먹을 수

있었는데 엄마가 들고 있는 계 덕분이었다.

곗날에는 아줌마들이 중국집에 모였다.

어릴 적엔 자장면이 단맛이 나는지 몰았는데

크고 나서 자장면이 달다는 걸 알았다.

그러면서 엄마가 왜 자장면을 좋아했는지도 알았다. 엄마는 시럽 넣은 아메리카노,

수박, 달달한 미숫가루를 좋아했다.


중국집 옆으로 천막을 쳐 놓은 가게 사잇길로 내려오면 엄마가 유난히 안쓰러워하던 채소 가게가 있다. 엄마만큼이나 마른 채소 가게 아주머니는

표정에서부터 고단한 삶을 보여준다.

단지 아주머니의 표정 때문에 엄마가 안쓰러워했던 게 아니다. 그 마른 몸으로 채소를 다듬고 옮기고

하며 장사하는 아주머니 옆에 하얀 양복을 빼입고 하얀 중절모까지 쓰고 있는 아저씨가 있었기

때문이다. 두둑한 배를 내밀고 가게 근처만 어슬렁대며 다닌 아저씨가 엄마는 꼴도 보기 싫다고 했다.



내가 큰아이를 낳고 퇴사하고 아이를 돌볼 때도

엄마는 말했다.

“나는 사지 멀쩡한 사람이 집에 있는 게 제일 싫어.”

“내가 아이 볼 테니까 다시 회사 나가.”,

“밖에 있는 사람 음식은 남겨 놔도 집에서

자고 있는 사람 음식은 안 남기는 거야.”

등등 엄마의 노동 숭배자 같은 어록은 꽤 많았다.

엄마는 아픈 곳이 없으면 나가 활동해야 하는 게

이치라고 여겼다. 그러니 부인이 저리 고생하는 게 눈에 보이는 데 한량처럼 그 옆에 어슬렁거리는

그 아저씨가 엄마 눈에 곱게 보일 리 없었다.

덕분에 나도 아저씨를 미워했다.

정작 그 아저씨는 우리 모녀의 따가운 눈총을

눈치채지 못했겠지만 말이다,


채소 가게를 지나 시장의 중간쯤 가면 큰 슈퍼가

하나 있었다. 우리 집은 은근히 그 슈퍼가 비싸게

판다는 선입견이 있었는데 왠지 ‘슈퍼마켓’이라는 단어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슈퍼 맞은편에는 시장에서 가장 부자일 것 같은

가족이 사는 과일 가게가 있었다. 과일 가게는 터가 다른 가게들에 비해 꽤 넓었다. 가게 아주머니와

아저씨 그리고 딸이 둘이 있었던 것 같은데

과일 가게를 해서 과일을 많이 먹을 수 있어서였는지 가족 모두가 피부가 참 좋았다.

과일 가게 옆에 우리가 가장 좋아하던 정육점이 있었다. 우리는 자주 삼겹살을 구워 먹었다. 안방에

신문지를 깔고 버너를 가운데 놓고 프라이팬에

고기를 굽는다. 상추쌈에 엄마가 고추장과 된장의 비율을 맞춰 만든 쌈장을 넣어 먹었다. 안방 천장

중간에 달린 형광등에는 삼겹살 굽는 연기가

자욱했다. 요즘은 집에서 냄새난다고 잘 안 먹는다고 하지만 난 아직도 집에서 삼겹살을 굽는다.

삼겹살은 집에서 구워야 제맛이다.


정육점 앞에는 빨간 고부 대야에 담겨 있는 검은

고무장갑 같은 천엽이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 대야에는 노란 단무지가 있었다. 잘려 있지 않고 통으로 된 단무지는 우리 집의 단골 밑반찬이었다.

엄마는 단무지를 물에 담가두었다가 얇게 썰어 고춧가루와 설탕을 넣고 무쳐주었다.

나의 도시락통에서도 자주 만났던 단무지 무침이다. 그때는 김밥에 넣는 단무지도 통 단무지를

길게 썰어 넣었다.


이제 슈퍼 옆 골목으로 내려가기 전 생선 아줌마를 만난다. 고등어, 갈치, 임연수어, 조기 등 엄마는

생선을 골고루 반찬으로 내주셨다. 그냥 굽기도

하고 무와 함께 조리기도 했다. 생선을 골라 아주머니에게 주문하면 아주머니는 구울 건지, 조림할 건지를 묻는다. 그리고 요리 방법에 따라 생선을

다듬는다. 커다란 원통 나무 도마 위에 올라간

생선을 단두대의 칼처럼 세모나고 둔탁한 모양의

칼로 머리를 자른다. 세로로 배를 가르고 창자를

긁어낸다. 바가지에 물을 담아 시원하게 헹군다.

고등어는 굽는다고 하면 굵은소금을

착착 뿌려준다. 손짓도 아주 리듬감 있다.


이제 집으로 간다. 엄마랑 시장을 돌고 집으로

향한다. 엄마는 구부러진 손가락으로 밥 하러 간다. 아픈 엄마의 철없는 딸은 엄마가 해준 음식만

냉큼냉큼 받아먹는다.

엄마의 음식이 나를, 우리 가족을 살 찌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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