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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공마당

by 모나리자

가파른 언덕길로 택시가 올라왔다.

택시는 큰아버지 집이 있는 골목 공마당에

세워졌다. 택시에서 엄마가 내린다.

아니 기어 나온다.

공마당의 담벼락을 붙잡고 엄마는 힘겹게 한 발작, 한 발작을 내딛는다.

그렇게 엄마는 다시 한남동으로 돌아왔다.

엄마와 함께 택시에서 내린 외할아버지가 말했다.


“걱정 마. 네 엄마는 안 죽어. 병신으로 살 뿐이지.”


그때도, 지금도 할아버지의 그 말은 참 안타깝다.



외할머니는 딸 넷을 줄이어 낳았다.

외아들인 할아버지는 대를 이어야 했단다.

하지만 다섯 번째도 딸이었다.

그 다섯 번째 딸이 우리 엄마다.

엄마 뒤로 아들 둘을 보아서였는지,

이렇게 병신으로 살아야 하는 게 마음이 쓰였는지,

할아버지는 엄마를 다른 딸들보다 더 신경 썼고,

엄마의 딸인 나를 예뻐했다. 아들만 귀하게 여겼던, 친손주만, 아들만 챙겼던 할아버지였다.

그런 할아버지가 병이 들어 걷지도 못하는

젊은 딸의 뒷모습을 보고 서 있다.

골목을 울며 기어가는 엄마를 왜 어느 누구도

업어주지 않았을까?

그날 공마당에는

택시, 외할아버지, 나, 엄마만 존재하는 듯하다.

아무리 기억하려고 해도 그때 그 공간에 누가

있었는지 더 기억나지 않는다.




공마당은 막다른 골목으로 들어서는 작은 공터다. 우리 골목 사람들은 그곳을 공마당이라고 불렀다.

막다른 골목 가장 마지막, 골목의 막다른 집은

큰아버지 집이었다. 골목이 시작되는 공마당에서

보면 저 멀리 큰아버지 집의 작은 대문이 보였다.


그 작은 대문을 나와, 여섯 살이었던 나는 엄마 손을 붙잡고 도망치듯 골목을 뛰어나온다.

공마당이 끝나고 언덕길을 내려가는 맞은편엔

세탁소가 있었다. 순간 세탁소 아저씨와 나는 눈이 마주쳤다. 겁이 난 나는 엄마에게 세탁소 아저씨를 보았다고 말하지도 못하고 엄마 손에 이끌려 계속해서 언덕을 뛰어 내려왔다. 그렇게 버스를 타고

한남동에서 떠나 살던 동네로 향한다.

나는 세탁소 아저씨와 마주친 게 너무 두려웠다.

돌아온 집엔 큰아버지를 피해 도망 온 큰엄마와

사촌 언니, 오빠가 있었다. 큰아버지는 술만 드시면 다른 사람이 되었다. 전날도 큰아버지의 폭력을

피해 큰엄마는 우리 집으로 옷 하나 챙기지 못하고

와 있었다. 엄마는 동생을 큰엄마에게 맡기고서

나를 데리고 큰집에서 옷가지들을 챙겨 왔던

거였다. 하지만 나의 두려움은 현실이 되었다.

큰아버지의 친구였던 세탁소 아저씨와 내가 눈을

마주친 까닭에 큰엄마는 다시 집으로 가야 했다.




처음 엄마가 아프기 시작했던 때였던 것 같다.

엄마는 내게 흰 쌀을 씻어오라고 했다.

마당이 넓은 양옥집의 뒤 편엔 반지하에 사는

두 집이 사용하는 작은 마당이 있었다. 우리가

이사 오고 아빠는 그곳에 있는 수돗가에서 종종

뒷목을 했다. 시원하다고 연거푸 소리를 내면

엄마는 아빠 등에 시원한 물을 한 바가지씩

더 부어 댔다. 하하 호호 즐거워했던 수돗가에

작은 양푼에 흰쌀을 담아 들고 앉았다.

엄마가 씻으라고 한 흰쌀을 열심히 비벼댄다.

언제까지 씻어야 이 뿌연 물이 없어지는지 알 수

없어 한참을 씻는다. 더 이상은 아니다 싶어

엄마에게 들고 갔다. 엄마는 쌀이 반톤 도

안 남았다고 내게 꾸중을 한다. 굵은 눈물이

뚝뚝 흐른다. 쌀은 어제까지 씻었어야 하는 걸까......

내 몸이 성치 못해 아홉 살 딸아이에게

씻어오라고 한 쌀이 다 갈아져 반톨만 남은 양푼을

보며 엄마는 얼마나 답답하고 속상했을까....

그때만 해도 흔치 않았던 류머티즘이라는 걸 엄마가 아프고 난 2년 뒤에나 알게 되었다. 류머티즘이

자가 면역력에 문제가 있는 병이라는 건 더 한참

후에나 알았다. 걷지 못하고 관절 마디마디가 붓는 증상이다 보니 모두들 관절염이 심해서라고

생각했다. 엄마는 관절에 좋다는 뱀, 고양이, 약침, 들어보지도 못한 곳에 가서 기도까지 받았지만

아무런 효과도 볼 수 없었다.






공마당을 지나 경사를 올라가는데 공마당에서

큰아버지가 소리쳤다.

“네 엄마만 안 왔다!”

“무슨 소리예요! 우리 엄마가 제일 먼저 갔어요!”

한참을 소리치다 잠에서 깼다.

큰아버지는 돌아가셨다. 그 막다른 골목집에서 혼자 남아계시다가...

돌아가신 큰아버지 소식을 듣고 엄마는 다른

형제보다 가장 먼저 찾아갔었다.

꿈속에 큰아버지는 그 공마당에서 엄마가 안 왔다고 소리 지르고 있었다. 무섭기도 했지만 잠에서

깨어 꿈을 곱씹을수록 화가 났다.



엄마가 아빠와 결혼할 날짜를 잡았을 때 큰아버지는 큰엄마와 식을 올리지 않고 살고 계셨다고 했다.

큰아버지는 초혼이었고 큰엄마는 재혼이었다. 그래서였는지 형편이 안 되어서였는지 두 분은 사촌 언니도 낳고 살고 계셨는데 식을 안 올리고 있었다.

엄마는 식 안 올린 형님이 있는 게 불편했단다.

그래서 작게라도 식을 올릴 수 있게 도움을 드렸고 큰아버지와 큰엄마는 절에서 약소하게 식을 올리셨다고 했다. 그렇게 엄마는 큰 집이라는 이유로

마음을 썼다. 하지만 엄마의 마음과는 달랐던

큰아버지의 행동에 꿈이라도 화가 났다.

시댁이라고는 변변치 않은 살림에 마음도 맞지 않은 사람들인데도 엄마는 형님과 아주버님들의 생신을 챙기고, 조상님들의 제사를 챙기고 살았다.

성격이 팔자라 했다.



그렇게 엄마를 힘들게 했던 공마당에 엄마는 류머티즘이라는 병을 갖고 다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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