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를 만난 건
우리가 이사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다.
추운 겨울, 우리 집 화장실에 있는 보일러는
갈 곳 없는 그녀에게 온기를 나누어 주었다.
그녀는 웅크리고 한 구석에 자리를 잡았을 것이다. 이른 아침 발견된 그녀는 몹시 야위고
몸에 상처도 있었다.
정이 많은 동생은 그대로
그녀를 보낼 수 없다고 울고불고,
급기야 밥을 안 먹기 시작했다.
부모님은 없는 살림에 식구가 더 늘었다면서도 그리 싫지 않은 듯이 그녀를 받아 주었다.
그리고 그녀의 이름을 ‘업순이’라 지어주었다.
업순이는 요크셔테리어와 다른 무엇인가가
오묘하게 섞인 듯했다.
지금이나 그때나 나는 동물들에게 크게 애정을
느끼지 못하는 매정한 사람이다.
우리 집은 이태원과 매우 가까운 위치였다.
그때만 해도 지금의 이태원과는
매우 다른 분위기였다.
저녁 시간에 이태원을 지날 때는 야릇한 느낌의
불빛과 흔히 볼 수 없는 옷차림새의 사람들로
거리가 채워졌다.
그 길을 지나는 나는 쿵쾅거리는 가슴으로
눈을 어디 둘지 몰라하며 빠르게 지나치곤 했다.
우리 가족의 추측으로는 근처 야간 업소에 다니는 사람들이 키우는 강아지인데 제대로 돌봄을 받지
못하고 학대까지 받은 거었다는 결론이었다.
그렇다고 업순이를 그냥 키울 수는 없어 전단지를 만들어 주변에 붙여 놓기도 했었다.
하지만 우리와 인연이었는지
업순이는 우리와 함께 살았다.
업순이는 좋아 죽겠다고 물고 빠는 동생 덕분에
몸에 있던 피부병도 사라지고 듬성듬성 빠져 있던 털도 다시 나기 시작했다.
워낙 체질이 마른 아이인지 잘 먹어도
통통해지거나 더 자라지는 않았다.
동생 말로는 벌써 새끼도 몇 번 낳았던
할머니인 것 같다고 했다. 나는 업순이가
할머니인지 새끼인지는 모르겠으나 예쁘긴 했다.
집에서 냄새도 나고 털 날리는 것도 싫다며
끝까지 반대했던 엄마도 금세 업순이의
매력에 빠졌다. 그런 엄마를 우리는
외모지상주의자라고 놀렸다.
아무리 동생이 키우자고 했지만 아직 어린 동생은 강아지 뒤치다꺼리까지는 못 했다.
당연히 업순이도 엄마의 몫이었다.
엄마는 업순이와 이야기도 잘했다.
정말 막내딸이 생긴 것처럼
엄마는 업순이를 돌보았다.
어느 날은 학교에서 돌아와 보니
업순이 털이 군데군데 들쑥날쑥하게 잘려 있었다. 우리는 처음 업순이를 만났을 때가 생각이나
어디 병이 생긴 게 아닌가 했다.
하지만 병이 난 건 아니었다.
범인은 엄마였다.
낮에 업순이랑 있는데 너무 더운지
혀를 쭉 내밀고 헉헉거리더란다.
물을 먹이고 선풍기를 틀어 주어도
업순이의 더위는 가시지 않는 것 같았단다.
더위를 무척이나 싫어하던 엄마는 업순이가
안쓰러워서 털을 깎아줘야겠다고 생각하고는
집에 있던 가위를 들고 털을 자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엄마의 투박한 손길에 업순이가
가만히 있을 리 없고, 엄마는 시작을 했으니
끝을 봐야 했을 것이다.
결국엔 엄마가 땀범벅이 되었고
업순이의 털은 층층이 패션으로 끝나고 말았다.
매우 안타까워했지만, 엄마는 그 뒤로도 업순이의 털을 직접 깎아 주었다.
업순이는 가족들의 발소리를 기가 막히게
잘 들었다. 짧은 골목에 누군가가 들어서기만 하면 반응이 왔다. 우리 가족이 아닌 경우엔 짖곤 했는데, 얼마 안 되어서는 골목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엔
짖지 않았다.
우리 가족 중에서도 엄마나 동생의 소리엔
안방에서 작은방까지 전속력을 달리며 난리가 났다. 집에 들어서면 안절부절 가만히 있지를 못한다.
결국엔 오줌까지 싸서 마지막에 혼나는 걸로
가족 맞이가 끝이 났다.
업순이는 그렇게 조용히 우리와 가족이 되어 갔다.
업순이와 함께 한지 몇 년이 지났을까?
업순이는 이제 외모로도 지긋한 나이를 보여주는
듯했다. 점점 기력도 떨어져 가는 게 보였다.
어느 날 업순이는 조용히 사라졌다.
우리 집에 소리 없이 찾아와 둥지를 틀었던
업순이가 집을 나갔다.
동생은 가족들을 의심했다. 나이 든 개를 어디로
내보냈냐고 가족들을 추궁했다.
억울한 부모님은 우리도 업순이가 보고 싶고
걱정된다고 되려 더 속상해하셨다.
그렇게 업순이는 우리 곁을 떠났다.
동네 사람들은 길러준 사람에게
보답하느라 조용히 나가서
죽은 것 같다고 우리 가족을 위로했다.
천방지축 같기도 하고 언니 같기도 했던
업순이
그렇게 동물을 좋아하지 않은
나도 함께 한 정은 꽤나 오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