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상

by 모나리자

우리 작디작은 집의 가장 큰 장점은 옥상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 집은 직사각형이다. 골목에 접해 있는 면을 빼면 삼면이 다른 집들과 바짝 붙어 있다.

숨통을 트일 곳이라고는 앞집 옥상으로 트인 세 개의 창문이다.

안방, 부엌, 작은방이 모두 한 방향으로 내어져 있다.

벽의 두께는 어마어마한데 창문은 매우 작다. 이 정도의 벽 두께라면 춥지 않아야 할 텐데

추위도 잘 막아내지 못했던 두껍기만 한 벽이다.

그나마 안방 창문 크기가 가장 크고 쓸만하다.


우리 안방은 엄마, 아빠의 방이자 거실이었다.

부엌이 작아서 혼자 먹는 게 아니라면 우리는 안방에 상을 펴고 함께 밥을 먹었다.

밥을 먹고 나면 상을 치우고 그 자리에 다시 앉아 텔레비전을 본다.

시간이 늦어지면 방바닥에 엄마 아빠 이불을 펴고 함께 누워서 보다가 우리 방으로 가곤 했다.



이 좁은 집에서 우리를 잠시라도 해방시켜준 것은 옥상이었다.

현관문을 들어서자마자 오른쪽 벽으로 붙어 있는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

한남동이 쫙 내려다보이는 옥상이다.

집 크기와 똑같은 옥상이지만 우리가 나눠서 사용하는 일 층과 달리

우리 집을 쫙 펼쳐 놓은 듯한 옥상은 올라서기만 해도 해방감을 준다.

옥상 계단과 반대편에는 작은 창고도 하나 있다.

아파트에 베란다가 없다면 집의 자질 구리한 짐을 넣을 곳이 없듯이

엄마에겐 옥상 창고가 큰 보물이다.

김치 담을 때 쓰는 대야, 아빠의 자잘한 연장들, 온갖 것들이 창고에 쌓인다.

그 옆으로 엄마의 또 다른 보물, 항아리들이다.

김치도 있고 고추장, 된장, 간장 등등 그 아프고 고단한 몸으로도

어찌 그런 것들을 만들어 우리를 먹였는지......

내가 아이를 낳고, 아이를 먹이게 되니 엄마의 수고로움이, 고단함이 이제야 보인다.


엄마는 한쪽에 스티로폼 상자나 쓰지 않는 다라이에 흙을 담아 채소를 심기도 했다.

상추, 고추, 가끔은 엄마가 좋아하는 꽃도 심는다. 엄마의 농사 실력은 꽤 괜찮다.

여름이 되면 우리는 옥상에 돗자리를 펴고 삼겹살을 굽는다.

우리 가족의 영원한 베스트셀러 음식이다.

돗자리 위 가운데 자리에 신문지를 깔고 부르스타를 올리고 엄마가 키운 상추와 고추를 씻는다.

한 여름밤, 우리는 최고의 식사를 누린다.

삼겹살을 먹고 나면 수박 한 통을 가르고 수박 마니아인 엄마와 동생은 반 통을 뚝딱 없앤다.

지상 천국이 따로 없다.

트인 하늘과, 우리 가족이 두 발 뻗고 잘 수 있는 집과 엄마가 있었다.



우리가 돗자리를 깔았던 자리엔 아빠가 만든 평상이 자리 잡는다.

언제라도 옥상에 올라가면 그 자리에 누울 수 있다.

아바가 만든 평상의 바닥은 마지막 마감이 장판이다.

맨질맨질한 장판은 비가 와도 눈이 와도 끄떡없다.

걸레로 쓱 문지르고 나면 다시 깨끗한 나의 안식처가 된다.


나의 사춘기는 옥상과 함께였다.

혼자 있고 싶을 때는 언제라도 옥상에 올라가 나만의 시간과 공간을 만들었다.

그 낭만적인 옥상이 참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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