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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나리자 Jul 19. 2023

식물에 대한 책임감

결혼 전 친정은 항상 주택이었다.

엄마와 마지막으로 살았던 집에는 옥상이 있었다.

흔히 볼 수 있는 초록색 방수코팅이 되어 있는 옥상이었다. 엄마는 옥상에서 상추, 고추 야채 등을 재배했다. 날이 갈수록 화분의 개수가 늘어났다. 엄마는 식물들을 잘 가꿨다. 엄마에게만 가면 죽어 가는 식물들도 다시 살아나곤 했다.

거실 한편에 여러 화분의 식물들도 엄마의 보물이었다. 엄마가 그렇게 가꾸는 데도 나는 화분의 식물이름조차 기억이 안 난다. 언젠가는 엄마가 선인장같이 생긴 잎의 끝에 빨간 꽃이 피는 화분 밑에 누워서는 “아~꽃들이 내게 막 쏟아지네!”

하며 웃었다. 참 우리 엄마는 귀엽다.


겨울이 지나 얼었던 옥상의 채소화분들의 흙이 녹아가자 엄마는 흙을 다 뒤엎어서 솎아줘야겠다며 나를 데리고 옥상에 올라간다. 그런 힘쓰는 일은 항상 내 몫이었다. 그 많은 화분들의 흙을 다 쏟아내니 양이 어마어마하다. 이제 삽으로 흙을 뒤집어서 모두 섞으란다. 아고야. 엄마야 나 잡겠다~ 그래도 엄마가 시키는 대로 흙을 섞는다.

“헉! 엄마! 이게 모야!!! 징그러워!!!”

“하하하하 굼벵이네~ 흙이 너무 좋네. 올해 농사 잘 되겠네~”

엄마는 신이 난다.

징그러운 것을 참고 다시 흙을 뒤집고 차례대로 화분들을 채운다.

엄마의 신이 나는 식물 키우기는 참 어렵다.


결혼하고 아파트에 살면서는 식물을 볼 일이 없었다. 일단 내가 잘 가꾸지를 못하니 집에 식물을 들이는 일이 없었다. 그렇게 지내다 이 집에 이사 왔는데 신랑의 눈빛이 달라진다. 아파트도 아니고 주택도 아닌 그 어중간한 집이다. 아파트가 아니어서 좋았고 옥상이 있어서 좋았다.

집 앞에 작은 화단이 있다.

그 작은 곳에 벚나무, 라일락, 담쟁이덩굴, 능소화를 심었다. 물론 내가 아닌 남편이 심었다. 남편이 식물을 이리 좋아하는지 처음 알았다. 퇴근하면 식사 후 현관 밖에 나가 한참을 나무들만 보다 들어온다. 주말에도 날만 좋으면 현관 앞에 나가 있다. 하지만 4년이 되도록 꽃은 피지 않는다.


올봄 처음으로 작은 라일락이 피었다.

내가 더욱 기다렸던 건 능소화였다. 여름 오렌지빛 능소화가 그리 예뻤다.

올해도 잎만 무성하고 마나보다 했는데 며칠 전 벚나무 가지 사이로 작은 능소화가 빼꼼히 보인다.

드디어 피는구나. 식물들은 꾸준한 관심이 필요하다. 빛이 적당히 드는지, 물은 충분한지, 바람은 잘 통하는지…

언젠가 가만히 나무를 바라보는 남편에게 가서 물었다. 그렇게 보고 있으면 좋으냐고 남편이 말한다.

“내가 시작했으니까요. 끝까지 봐줘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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