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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뚝검 Jul 26. 2021

슬기로운 검사생활

제1장  지난 8년을 기록하다

다시 만난 당신


    제대로 된 중고거래는 판매자와 구매자 모두에게 이익이다. 파는 사람은 애물단지를 처분하고 용돈도 벌 수 있으니, 사는 사람은 제 값을 주고 사기에는 부담스러운 물건을 저렴한 가격에 얻을 수 있으니 유용하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국내 중고거래 사이트는 판매자와 구매자를 연결하는 플랫폼 역할만 할 뿐 안전거래까지 보증하지는 않고, 중고거래 대부분이 구매자가 선입금을 하면 판매자가 택배를 통해서 물건을 보내주는 택배거래이다 보니 그야말로 중고거래 사기가 빈번히 일어난다.  


피의자 박해성(가명),  죄명 사기


    박해성은 중고거래 사이트에 낚싯대 세트를 20만 원에 판매한다는 게시물을 작성했다. 3명의 피해자가 돈을 보냈지만 박해성은 낚싯대 세트는커녕 벽돌도 보내지 않았다. 애초에 낚싯대 세트는 없었다. 피해자들은 뻔한 거짓말에 왜 속았을까 하는 자책감과 내가 이렇게 바보 같을 수 있다니 하는 모멸감에 가위에 눌린 듯 가슴이 갑갑하다고 했다.

    

사기 피해자들은 피해 당한 돈이 아니라 자책감과 모멸감 때문에 더 힘들다고 말한다.  [출처 : 한국일보]


    박해성은 앳된 얼굴이었다. 21살, 뚝검외대 2학년 재학 중. 왜 사기를 치고 다닙니까 물었다. 박해성의 대답은 기가 막혔다. 박해성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면서 주유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러다 휘발유 차에 경유를 집어넣는 실수를 했다. 하필 그 차는 값 비싼 외제차였다. 수리비를 물어주느라 캐피털 회사에서 돈을 빌렸는데, 학자금 대출에 캐피털 대출까지 더해지니 도저히 빚을 감당할 수 없었다.


    어머니가 유일한 가족이었는데 식당 허드렛일을 전전하는 어머니에게 손을 벌릴 수는 없었다. 대출을 받아 대출을 갚는 돌려막기를 하다 보니 빚은 한순간에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주유소에서 해고를 당한 뒤 낮에는 편의점 아르바이트, 밤에는 PC방 아르바이트를 했지만 이자를 갚기에도 벅찼다. 생활비를 마련할 생각에 집에 있는 물건을 중고거래 사이트에 내놓았다. 그런데 판매가 끝난 낚싯대 세트를 살 수 있냐는 연락이 왔다. 그때 박해성은 돈에 눈이 멀어 구매자에게 말했다. 네, 거래 가능합니다! 


    사기꾼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 없어서 가족관계증명서, 채무상환확인서, 대출 내역을 전부 다 확인했다. 주유소 사장에게 물어보니 박해성이 포르셰 승용차에다가 경유를 집어넣는 바람에 자신도 수리비를물어주느라 피해가 막심하다며 더 이상 언급하기 싫다고 했다. 편의점, PC방 아르바이트도 진실이었다. 어쩌면 일이 이렇게까지 꼬일 수나 있나 싶었다.



합의할 수 있겠어요?
일주일만 시간 주시면, 편의점에서 가불하고 엄마에게 빌려서 돈을 마련하겠습니다, 검사님.


    하지만 제아무리 사정이 있더라도 아닌 밤 중에 사기 피해를 당한 피해자들만 하랴. 박해성에게 합의를 당부하며 일주일 뒤에 다시 출석하라고 했다. 박해성이 다시 검사실을 찾아왔다. 합의서 2장을 내놓으면서 피해자 3명 중에 2명에게만 피해금을 변제했다고 했다. 나머지 피해자 1명은 10만 원이 모자라 변제를 못했다는 말을 덧붙였다.


    편취금액 합계 60만 원. 피해자 3명 중 2명에게는 피해금 변제. 형사처벌을 받은 적 없는 초범. 21살의 사회초년생. 기소유예 처분을 고민해 봤지만 1명의 피해자가 여전히 피해금을 변제받지 못한 이상 그것은 부적절했다. 그러나 고작 10만 원에 전과가 생기고, 나중에 공무원 시험이나 취직에 문제가 생긴다면 과연 그것이 옳은지도 확신이 없었다. 검찰청을 나서는 박해성을 뒤따라 갔다. 그리고 주머니에 있던 10만 원을 건네주었다. 이거 형으로 주는 거니까 꼭 합의하는 데 써요. 나중에 성공해서 어려운 사람 만나면 그 사람한테 돈 갚고요. 박해성은 한참 동안 울었다. 며칠 뒤 나머지 피해자 1명에게 합의서가 들어왔다.  



미결수는 왼쪽에서 첫 번째 수의를, 기결수는 왼쪽에서 두 번째 수의를 입는다. [출처 : 솔로몬 로파크 트위터]


    1년 여가 흘러 초임검사 티를 막 벗을 무렵이었다. 점심을 먹고 사무실에 돌아오니 실무관님께서 구속 사건이 배당되었다며 책상에 기록을 올려주셨다. 간단한 신문을 하기 위해 구치감에 있을 구속 피의자를 불렀다. 그리고 내 앞에는 갈색 수의를 입고, 손은 수갑에, 몸통은 포승에 묶여있는 박해성이 앉았다. 그때부터 반년 정도가 흐르고 다시 중고거래 사기를 시작했다가 범죄에 중독되어 버린 그의 지난 시간이 고스란히 기록에 쓰여있었다.


    감화라거나 개과천선을 기대했던 내가 바보였을까. 박해성에게 물었다. 나 기억납니까? 박해성은 나를 빤히 들여다보다가 아- 하는 탄성과 함께 고개를 떨구고 울기 시작했다. 세상 모든 일들이 해피엔딩이면 좋겠건만 비극적이다 못해 처참한 새드엔딩이었다. 나는 멍하니 우는 박해성을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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