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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뚝검 Aug 15. 2021

슬기로운 검사생활

제1장  지난 8년을 기록하다

어긋난 사랑(1)


    정 씨는 아내와 아이들에게 줄 통닭 한 마리를 조수석에 올려두고 길을 재촉하고 있었다. 교차로에서 녹색 신호를 기다리며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에 맞춰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뒤에서 승용차 한 대가 다가오기 시작했다. 전조등 불빛은 점점 밝아지고 커지더니 정 씨가 타고 있는 SUV의 뒤 범퍼을 그대로 들이받았다. 쿠웅- 하는 충격음이 차가운 겨울 공기를 갈랐다.


    정 씨는 깜짝 놀라 숨을 몰아쉬었다. 등에서는 식은땀이 흘렀다. 손발을 움직여 봤다. 다행히 다치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차에서 내려 승용차로 다가가 운전석 창문을 두드렸다. 지잉 하는 소리와 함께 창문이 내려갔다. 운전석에는 모자를 푹 눌러쓴 남자가 앉아있었고, 그 옆에는 긴머리의 여자가 앉아있었다. 으앗, 이게 무슨 냄새야! 당신 술 마셨어? 정 씨는 남자에게 소리쳤다. 휴대전화 불빛을 비춰보니 남자의 얼굴이 붉었다. 음주운전이었다.


최치훈(가명), 죄명 가. 도로교통법위반(음주운전)  나. 교통사고처리특례법위반


    최치훈은 이미 음주운전으로 두 차례 형사처벌을 받은 전력이 있었다. 얼마 되지 않은 전력이었다. 지금 제정신입니까? 얼마 전에 집행유예까지 받은 사람이 또 음주운전을 해요? 최치훈은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는 말만 반복하다가 그 날은 여자친구 황은혜(가명)와 오랜만에 만난 날이었다며 운을 뗐다.


    최치훈은 거의 몇 주만에 황은혜를 만나 기분이 좋았다. 황은혜가 공무원시험을 준비하고 있어서 자주 보기 어려웠다. 한우전문점에 가서 값 비싼 부위를 주문했다. 최치훈은 맥주 2병을 마셨고, 술을 못마시는 황은혜는 음료수를 마셨다. 맛있게 식사를 마치고 황은혜를 집에 데려다 주기 위해 대리기사를 불렀지만 연말이어서 그런지 대리기사가 잡히지 않았다. 칼바람에 발을 동동거리는 황은혜를 보고 있자니 해서는 안 될 생각이 들었다. 맥주 2병이면 괜찮지 않을까? 그렇게 시작한 음주운전의 끝은 교통사고였다.


술을 한 모금이라도 마셨다면 절대 운전은 금물이다, 명심 또 명심 [출처 : 연합뉴스]


    모두가 다 퇴근한 검사실에 혼자 남아 공소장을 썼다. 증거목록을 정리하면서 마지막으로 하나씩 증거들을 확인했다. 그런데 차적조회와 보험가입증명서를 보니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최치훈이 운전했다는 승용차는 황은혜의 차였고, 보험도 황은혜의 이름으로 가입되어 있었다. 술도 안 마셨다면서 황은혜는 왜 자신의 차를 최치훈에게 운전하게 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황은혜의 경찰 조서를 다시 읽었다.


    황은혜는 최치훈이 운전을 대신 해주겠다고 해서 자동차 열쇠를 넘겨 주었다고 했다. 초보운전이어서 야간에 운전하기가 무서웠기 때문이었단다. 최치훈과 함께 식사를 했지만 맥주를 2병이나 마셨는지 전혀 몰랐고, 최치훈이 스스로 취하지 않았다고 장담해서 그 말만 믿었다고 했다. 분명히 테이블 위에 술병이 있었을 텐데 술을 얼마나 마셨는지 몰랐다는 진술을 믿어야 하는걸까?


    한우전문점에 전화를 했다. 주차관리원에게 3달 전쯤 남녀가 탔던 흰색 승용차를 누가 운전했는지 기억나시냐고 물었다. 주차관리원은 어제 먹은 점심도 가물가물한데 어떻게 3달 전 일을 기억하겠느냐고 내게 반문했다. 하긴 나도 어제 먹은 점심이 기억나지 않는구나. 교통사고 장면이 촬영된 CCTV영상도 봤지만 멀리서 찍힌 화면인지라 승용차의 운전자를 확인할 수는 없었다.


    어차피 최치훈이 운전을 했다고 자백하는데 그냥 처리할까 하는 유혹이 들었다. 한 달에 200건이 넘는 사건을 처리해야 하는데 고작 자백하고 있는 음주운전 사건에 더 이상은 품을 들이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하지만 문득 독립하던 첫날, 방문에 명패를 붙이며 곱씹었던 다짐이 떠올랐다. 그 누구도 억울한 사람을 만들지 말자는 그 다짐이 말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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