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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뚝검 Aug 27. 2021

슬기로운 검사생활

제1장  지난 8년을 기록하다

두 사람(1)


    방경자(가명) 여사는 소금에 절인 알타리무를 바알간 김칫소에 버무렸다. 도통 입맛이 없다는 딸에게 줄 요량이었다. 찬밥을 냉수에 말아 한 입 욱여넣은 다음 알타리무김치를 한 입 베어 먹으면 없던 입맛도 살아나겠지 하는 기대에 입가에는 미소가 돌았다. 김치통 두 개 가득 김치를 채워 넣고 시내버스에 올랐다. 사람들이 김치 냄새에 인상을 찌푸리기도 해서 눈치가 보이긴 했지만 아무렴 상관없었다. 딸이 맛있게만 먹어준다면.


    [11:12] 버스정류장에서 내려 전화를 걸었다. 딸에게 "내 다 와 간다!" 라고 말했지만 딸은 "응, 그래." 라는 짤막한 대답뿐이었다. [11:13] 이내 벨소리가 울렸다. 딸이었다. 양손에 든 김치통을 내려놓고 휴대전화를 꺼내느라 전화를 받지 못했다. [11:14] 곧장 전화를 다시 걸었다. 딸은 "으흐……. 으……."  앓는 소리만 낼뿐 아무 말도 없었다. 덜컥 겁이 났다. 서둘러 딸의 집으로 걸음을 옮겼다. "민아! 내 딸아!" 현관문을 열어젖히며 외쳤다. 하지만 딸의 집은 텅- 비어있었다.


    [12:04] 딸 홍유민(가명)은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녀는 동거남인 곽호연(가명)의 집에서 의식을 잃은 채 누워있었고, 심각한 상황이라고 판단한 구급대원들이 대학병원으로 그녀를 옮기는 중이었다. 병원으로 호송된 홍유민은 응급처치를 받았지만 나흘 동안 사경을 헤매다 결국 지고 말았다.



영화 '의뢰인', 피로 물든 침대, 그 공간에는 두 사람뿐. 한 여인의 죽음이 가진 미스터리를 풀어가는 안민호 검사(박휘순 분) [출처 : 네이버 영화]



곽호연, 죄명 상해치사


[곽호연의 변]


    저는 홍유민과 1년 가까이 교제한 사이입니다. 저희는 둘 다 이혼의 아픔이 있었는데 흉금을 터 놓고 대화를 나누다 보니 서로 호감을 느꼈고, 교제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제 집에서 동거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행복하기만 할 것 같았던 동거생활은 금방 망가졌습니다. 홍유민은 언제부터인가 제 휴대전화를 몰래 확인하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계속 연락하기를 바랐습니다. 제가 택배를 하기 때문에 연락이 늦어질 때도 있는데 그때마다 홍유민은 수 십 통씩 전화를 해댔습니다. 도저히 일을 못 할 정도로요.


    더구나 홍유민은 알코올 중독이었습니다. 술을 안 마시면 잠을 못 잘 정도로요. 분명히 저와 만나면서 술을 끊겠다고 약속했는데, 저에게 집착하기 시작한 그때부터 다시 술을 마시기 시작했습니다. 간 질환도 있어서 여기저기 넘어지고 부딪치고. 얼마나 꼴 보기 싫던지. 그날도 새벽에 겨우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까 거실 식탁에서 소주를 마시고 있더라고요. 대뜸 저에게 "너 이 새끼! 어떤 년 만나고 왔어!" 소리치면서 달려드는데, 무슨 여자 힘이 그렇게 센지.     


    옥신각신 몸싸움을 하다가 겨우 홍유민을 떨어뜨려놓고 근처 모텔에서 하룻밤 잤습니다. 그리고 아침 11시던가? 그때 집에 들어갔어요. 그런데 안방에서 자고 있던 홍유민이 또 시비를 걸었습니다. 술 냄새가 어찌나 나는지 토악질이 쏠렸습니다. 제 팔, 멱살을 잡아 흔들고 발로 차고. 생각하기도 싫으네요. 그때는 저도 흥분을 했나 봐요. 홍유민을 때릴 수는 없으니 홍유민이 마신 소주병을 창 밖으로 집어던지고, 식탁 위에 있던 안주들 싹 다 엎어버렸네요.


    그리고 집을 나가려고 뒤돌아서서 신발을 신고 있는데 갑자기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아악- 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11:14] 홍유민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더라고요. 깜짝 놀라 홍유민의 뺨을 때렸습니다. 다행히 의식은 있었고, 괜찮다고 했어요. 쉬면 나아지겠다고. 그래서 홍유민을 끌어서 홍유민을 안방 이부자리로 옮겼습니다. 선풍기 바람이라도 쐬면 나아질까 해서 선풍기도 틀어줬고요.


    [11:56] 그런데 홍유민이 막 토를 했어요. 사람이 눈이 뒤집히는데 얼마나 놀라요. 그래서 119에 신고했고, 그 사람들이 시키는 대로 조치도 했습니다. 그런데 누가 그렇게 허망하게 갈 줄 알았나요. 그러니까 술 좀 줄이라고 했는데…. 결국에는 술 때문에 넘어져서 죽은 거 아니겠습니까?




    사건이 벌어진 지 1년 여만에 이 사건을 재배당받았다. 그 시간 동안 경찰과 검찰이 수사를 벌였지만 전임검사도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한 이 사건을 어디서부터 풀어가야 하는 걸까. 오직 두 사람만 있던 공간에서 벌어진 사건, 진실을 아는 두 사람 중 하나는 입을 다물고, 다른 하나는 입을 열 수 없는 사건. 이미 현장과 시신은 사라지고, 오롯이 기존의 수사기록에만 의지해서 문제를 풀어야 하는 사건을 만난 그날은 장마철이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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