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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맥스무비 Jan 10. 2022

시다와 공순이로 지내야 했던 그네들의 청춘을 위로하며

‘미싱타는 여자들’ 시다와 공순이로 지내야 했던 그네들의 청춘을 위로하며

1970년대 열악했던 노동 현장. 그곳에는 전태일 열사 외에도 수많은 이들이 함께 있었다. 시다와 공순이로 불리며 자신의 이름조차 까맣게 잊어야 했던 누군가의 딸들. 다큐멘터리 ‘미싱타는 여자들’은 흑백 사진으로 묻혔던 그들의 이름을 하나씩 꺼내며 우리가 기억해야 할 당시를, 그들의 마음을 스크린에 담았다.

영화 '미싱타는 여자들' 스틸. 사진 영화사 진진


1970년대 평화시장에는 가난해서 혹은 여자라서 공부 대신 미싱을 타야 했던 이들이 있었다. 고강도 노동과 열악한 환경 속에서 과로와 학대에 시달렸던, 시다 또는 공순이라 불렸던 소녀들이 바로 그들이다. 힘겨웠던 나날이지만 저마다의 부푼 꿈을 안고 노동교실로 향했던 소녀들. 그들은 서로의 이름을 부르고, 노래하고, 희망을 키웠지만 서슬 파란 국가권력은 단숨에 그들의 꿈마저 앗아가고 말았다.

다큐멘터리 ‘미싱타는 여자들’(감독 이혁래, 김정영)은 1970년대 평화시장 여성 노동자들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를 그렸다. 영화는 지난 제25회 부산국제영화제 다큐멘터리 경쟁 부문을 비롯해 제13회 DMZ국제다큐멘터리 영화제, 제12회 광주 여성영화제, 제22회 제주여성영화제 등 유수 영화제에 공식 초청돼 관객과 인사를 나눠왔다. 영화는 1977년 9월 9일 있었던 한 사건을 중심으로 잊혀져 왔던 그들의 억울하고 아픈 기억을 대중에게 털어놓는다.

1970년대 노동운동을 지칭할 때면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것은 전태일 열사다. 자신의 온 몸을 내던졌던 그는 우상이자 신화가 되어 우리 역사에 자신의 이름을 똑똑히 각인시켰다. 허나 1970년대 노동운동은 전태일 열사만의 노력은 아니었다. 그의 거룩한 이름 뒤 함께했던 수많은 이들도 있었다. 다큐멘터리 ‘미싱타는 여자들’은 바로 그런 이들 중에서도 특히 이름이 가려진 채 긴 세월을 보내야 했던 어린 여성 노동자들의 기록을 다시금 써내려 갔다.

영화 '미싱타는 여자들' 스틸. 사진 영화사 진진


주인공 임미경이 당시를 회상하던 중 전한 이 말은 지난 시대를 살아온 여성들의 애환이 담겼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처했던 현실을 적나라하게 들춰낸다. 아침 8시부터 밤 11시까지 하루 15시간을 일하는 평화시장 노동자들 중 80%가 여성, 그 중에서도 많아야 16살 정도였음을 떠올리게 한다. 그들은 열악하고 부당한 환경 속에서 혹독하게 자라났고, 노동 교실을 통해 노동조건을 바로잡기 위해 운동에 참여했다.

그러나 이들의 이야기는 사실 우리 사회에 깊은 흔적을 남기지 못했다. 부당함에 굴복하지 않고 외쳤던 목소리는 빛났고, 우리 사회를 변화시켰던 큰 용기였지만, 그들의 이름은 어느새 잊혀진 채 수십 년이 지나버렸다. 영화 ‘미싱타는 여자들’은 바로 그들의 이름을 들려주는 작품이다. 어느덧 중년이 된 소녀 미싱사들, 골방에서 무릎도 제대로 펴지 못했던 시다들, 빨갱이라는 어처구니 없는 오명으로 억울한 옥살이를 했던 청춘들의 이름들이 소중히 우리에게 다가온다.

영화 '미싱타는 여자들' 스틸. 사진 영화사 진진


영화는 그렇게 그림자로 청춘을 지나온 세 여성 노동자를 중심으로, 지나간 아픈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상처를 바라보아야 보듬을 수 있고, 치유할 수 있는 이유다. 이 과정을 통해 영화는 그들의 아픈 기억에 새로운 색을 입히며, 보는 이로 하여금 당시 여성들의 진짜 이야기를, 감정을 마주하게 한다. 한없이 아프지만 그래서 더 기억 되어야 할 흑백 사진 속 여성들의 모습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감사함과 감동을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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