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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맥스무비 Feb 11. 2022

‘리코리쉬 피자’ 1970년대 미국 향취와 청춘 예찬

[리뷰] ‘리코리쉬 피자’ 1970년대 미국 향취와 청춘 예찬

일명 PTA,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이 돌아왔다. 영화 ‘펀치 드렁크 러브’, ‘데어 윌 비 블러드’, ‘마스터’, ‘팬텀 스레드’ 등으로 영화 팬들의 찬사를 불렀던 그는 이번에도 역시 자신만의 독특한 문법으로 무장한 로맨스를 그리며 눈길을 사로잡았다.

영화 '리코리쉬 피자' 스틸. 사진 유니버설 픽쳐스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이하 PTA)은 악명이 높다. 좋은 영화를 그려내는 능력이 탁월함은 누구도 부정하지 않지만, ‘펀치 드렁크 러브’(2002), ‘마스터’(2012) 등 그의 대표작이라 불리는 작품들은 대부분 씨네필이 아닌 일반 관객들에겐 너무나 낯선 방식이었다. 심지어 가장 대중적이라 불리는 ‘팬텀 스레드’(2017)까지도 그랬다. 관객들은 그의 영화를 향해 (심지어 로맨스마저도)기괴한 감상을 남기고, 모호하며, 현학적이란 반응을 보이곤 했다.

그런 면에서 봤을 때 ‘리코리쉬 피자’(2021)는 PTA의 작품 중 가장 일반 관객들이 받아들이기에 무리 없는 작품이겠다. 물론 영화는 전작들과 같이 여전히 생략적인 연출로 이어지고, 등장 인물들의 감정선을 따라가기 벅차며, 엉뚱하고 이해할 수 없는 그들의 행동으로 보는 이를 당혹시킨다. 그러나 기승전결이 뚜렷하지 않은 상황 속에서도 영화는 분명한 하나의 지향점을 그리며 일종의 ‘영화 감상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 그것은 바로 청춘과 사랑, 1970년대 미국을 떠올리게 하는 향취다.

영화 '리코리쉬 피자' 스틸. 사진 유니버설 픽쳐스


먼저 영화의 레트로 감성에 대해 짚어보자. PTA는 지난 시대 이슈들을 적극적으로 끌어와 이야기를 꾸렸다. 할리우드 유명 제작자의 실화를 모티브로 시작한 이 영화는 실제 PTA가 지난 시대를 떠올리듯 그리움 가득한 시선이 돋보인다. 레트로 감성이 가득한 배우들의 의상, 헤어는 물론 당시 큰 사랑을 받았던 가수들의 명곡으로 영화의 전반이 채워졌다. 특히 PTA는 그가 실제로 유년시절을 보냈던 샌 페르난도 밸리를 배경으로 영화를 찍었다. 그는 본인의 유년시절에 대한 기억과 사진을 바탕으로, 조지 루카스 감독의 ‘청춘 낙서’(1973)의 분위기와 질감을 재현하기 위해 애썼단다.

이 같은 노력은 단순히 영화의 무드를 형성하는데 그치지 않았다. PTA는 캐릭터를 설정하는데도 상당한 공을 들였다. 브래들리 쿠퍼가 연기한 존 피터스는 ‘수퍼맨’ 시리즈를 제작한 실제 당시 할리우드의 유명 제작자며, 숀 펜이 연기한 잭 홀든은 당시에도 이미 왕년의 액션 스타였던 고(故) 윌리엄 홀든을 모티브로 한다. 당초 영화의 시작부터가 할리우드 제작자 개리 고츠먼이 어린 시절 아역 배우로 활동하며 여러 사업을 벌였던 일화로부터 시작하기도 했으니, 영화에 당시를 그리워하는 향취가 진실되게 담긴 것은 지극히 당연하기도 하다.

영화 '리코리쉬 피자' 스틸. 사진 유니버설 픽쳐스


허나 향취를 자극하는 것들이라 한들 국내 관객이 공감하긴 어려울 터다. 주르륵 나열한 요소들의 면면에서 알 수 있듯 PTA는 철저히 미국을 꿰뚫어왔다. 할리우드 역사에 박식한 이거나, 적어도 미국 역사와 사회, 문화에 깊은 공감대를 형성한 이가 아니라면 영화로부터 특별히 그리운 정서를 떠올리기란 쉽지 않다. 물론 레트로 감성 가득한 색채와 질감, 분위기 등 시각적 요소로부터 얻을 수 있는 감정선은 괜스레 보는 이의 마음에 설렘과 그리움을 남기기도 한다. 그러나 여전히 모호한 것에 그치기에 ‘리코리쉬 피자’가 보다 여운을 남기는 것은 다른 것에 있다. 바로 청춘과 사랑이다.

PTA가 ‘리코리쉬 피자’에 그려낸 청춘과 사랑은 도발적이다. 소년은 강렬한 자기 확신이 있으나 오만하고 서툴다. 소녀(?)는 능숙하고 부드럽지만 자기연민과 불안함에 빠져있다. 두 청춘은 분명 서로를 향해 이끌리지만, 평행선을 달리며 서로를 향해 분노한다. 감정의 격화에 따라 두 청춘은 끊임 없이 달린다. 뜨거운 태양이 내리 쬐는 캘리포니아의 어느 도시를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잘도 뛰어다닌다. 청춘의 빛나는 스파크가 스크린에 가득하고, 미숙한 만큼 순수하고 해맑은 미소에 보는 이의 마음마저 슬며시 녹아 내린다. PTA는 그렇게 청춘을 예찬하고 사랑을 그리워한다.

영화 '리코리쉬 피자' 스틸. 사진 유니버설 픽쳐스


두 청춘의 풋풋함은 영화 전반에 깔린 외설적인 농담에서도 느껴진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농담들이 일말의 성적 긴장감을 불러일으키지 못하는 이유다. 어떤 매력도 찾아볼 수 없는 음담패설은 아주 기묘한 동화 같은 인상을 남긴다. 어떤 이유에선지 그들의 감정이 격해짐에 따라 영화는 관객을 몰입시킨다. 그들의 행동에 이해가 따르진 않더라도, 그저 받아들여지는 것만으로 이끌린다. PTA가 그려낸 사랑이 한 때의 열병에 불과할 수도 있지만, 그런 것은 아무래도 상관없다. 그저 순간에 몰두하며 감정에 충실했던, 그렇기에 더욱 반짝일 수 있었던 청춘 그 자체가 아름답다.

요컨대 ‘리코리쉬 피자’는 PTA 작품 중에서는 대중이 가장 접근하기 쉬운 작품이나, 여전히 독특한 문법과 사랑에 대한 표현 방식이 가득한 영화다. 1970년대를 향한 향취와 청춘에 대한 예찬, 서툴고 풋풋하지만 순수한 사랑에 대한 그리운 시선이 엿보인다. 장르는 확실히 로맨스이나 여타 로맨스 영화와 같이 잘생기고 예쁜 남녀 주인공을 기대해선 안 된다. 그러나 그만큼 현실적이며, 누군가의 삶을 그대로 경험할 수 있도록 재현한 듯 하다. 50년 전 캘리포니아의 한 도시와 그 안에서 사랑을 나누는 두 청춘의 삶이 관객의 매일 위로 덧대어 진다.

영화 '리코리쉬 피자' 스틸. 사진 유니버설 픽쳐스


# 영화 기본 정보

무엇이든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믿음으로 가득해 잔뜩 자신감 있는 눈빛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15살 소년 개리(쿠퍼 호프만). 그는 학교 졸업 사진을 찍으러 간 곳에서 한 연상의 여성에게 한 눈에 반하고 만다. 25살로 한참 나이가 많지만 개리는 그에게 거침없이 데이트 신청을 하고, 그런 개리가 한심하지만 귀엽기도 해 슬며시 호기심이 인 알라나(알라나 하임)는 저도 모르게 개리와 함께하기 시작한다. 1973년 미국 캘리포니아의 어느 찬란한 여름날, 두 사람은 청춘의 한복판으로 달려간다.

영화 ‘리코리쉬 피자’(감독 폴 토마스 앤더슨)는 사랑에 바진 소년 개리와 불안한 20대를 지나고 있는 알라나의 뜨거웠던 여름날의 이야기를 그렸다. 영화 ‘마스터’(2013)로 함께했던 배우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의 아들, 쿠퍼 호프만이 영화의 주연을 맡았으며, 할리우드의 유명 영화 제작자 개리 고츠먼의 실화를 모티브 삼았다. 영화는 제75회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과 감독상, 여우주연상, 각본상, 편집상 등 후보에 이름을 올렸으며, 오는 제74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작품상과 감독상, 각본상까지 3개 주요 부문 후보로 올랐다. 영화의 제목은 1970년대 캘리포니아 남부 지역에서 인기 있었던 레코드숍 체인의 이름이다.


개봉: 2월 16일/ 관람등급: 15세관람가/감독: 폴 토마스 앤더슨/출연: 알라나 하임, 쿠퍼 호프만, 숀 펜, 톰 웨이츠, 브래들리 쿠퍼, 베니 사프디/수입·배급: 유니버설 픽쳐스/러닝타임: 134분/별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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