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맥스무비 Feb 14. 2022

이별을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는다면

[리뷰] ‘우리가 사랑이라고 믿는 것’ 이별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는다면

하루에도 수십 번, 우리는 SNS 등을 통해 사랑에 대한 허울 좋은 말들을 접한다. 솔직해야 한다는 둥, 자주 싸워야 한다는 둥, 말로는 쉽지만 정작 과연 누가 그렇게 손쉽게 할 수 있나 하는 것들이 우리의 눈과 마음을 괴롭힌다.

영화 ‘우리가 사랑이라고 믿는 것’ 역시 사랑에 대해 이야기한다. 하지만 언제나 피상적이고 겉돌아 마음에 닿지 않던 SNS의 무수한 말들과는 전혀 다른 깊이다. 빌 나이와 아네트 베닝이 내뱉은 대사 하나 하나가 더 없이 깊숙이 파고들어 관객의 마음을 꿰뚫고 지나간다. 사랑을 했고, 이별을 거쳤다면, 혹은 이별을 앞뒀다면, 영화 ‘우리가 사랑이라고 믿는 것’에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영화 '우리가 사랑이라고 믿는 것' 스틸. 사진 티캐스트


영화는 사실 겉보기에 특별하지 않다. 미장센이 대단히 아름답다거나, 예술적 성취가 뛰어나다거나, 캐릭터의 감정 폭이 널뛰며 강렬한 인상을 남기지도 않는다. 되레 여느 소규모 자본의 외화들과 같이 조용하고, 정적이며, 일부 아름다운 자연 풍광과 아기자기한 인물 사이 대화만이 이어진다. 종종 ‘구태여 인서트 샷이 이렇게 많을 필요가 있나’ 싶을 정도로 이미지에 큰 의미가 담기진 않았다. 그래서 ‘우리가 사랑이라고 믿는 것’에 대해 말하고 있는 지금이지만, 이러쿵저러쿵 설명할 것은 많이 없다.

그럼에도 영화 ‘우리가 사랑이라고 믿는 것’에 대해 관객, 독자들과 감정을 공유하고자 한다. 영화가 갖는 단 하나의 힘, 대사가 주는 깊은 공감과 울림을 여기저기 떠들고 싶은 이유다. 사랑과 이별, 남겨진 이와 떠나가는 이, 그를 바라보는 또 다른 누군가와 무수히 스쳐 지나가는 감정의 시련. 시나브로 꺼져가는 사랑의 종말과 복잡하기 그지 없는 긴 사랑의 무수한 상처들. 영화 ‘우리가 사랑이라고 믿는 것’은 29년 동안 결혼 생활을 이어오던 중년 부부의 관계를 함축적이고 통찰력 있게 파고들며 보는 이의 심장을 단숨에 옭아맨다.

영화 '우리가 사랑이라고 믿는 것' 스틸. 사진 티캐스트


지난한 삶을 견뎌오며 어떤 방식으로든 이별을 경험해본 이라면, 영화의 교묘한 화술에 넘어갈 수밖에 없을 터다. 우리네 인생이 그렇듯, 영화 역시 결코 해피 엔딩은 아니다.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에서 시작됐다는 이 영화는 마냥 따뜻하거나 부드럽지 않게, 현실을 철저히 자각시키며 성숙된 감정을 그려낸다. 비록 상처입고 절망했을지라도 이겨내어 내일을 살아갈 방법에 대해 함께 고민한다. 우아하게 다가온 영화의 진실된 위로가 상실의 고통을 마주해 본 이 모두를 슬며시 어루만져준다.

물론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감정을 배제한 채 철저히 영화에 대해 논하자면 아쉬움은 여럿 있다. 불필요한 인서트의 나열과 감정의 고조를 유도하는 티가 역력한 일부 장면은 다소 거북하다. 그러나 모든 영화를 그리 분석적으로 만날 필요는 없다. 우리 삶의 단면을 들춰낸 이 훌륭한 각본은 그 자체만으로 충분한 가치가 있다. 영화의 주인공은 중년 부부와 그 아들이지만, 세 캐릭터 모두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고 깊이 몰입하게 된다. 나이 따위와는 관계 없는 진솔한 감정이, 우리 모두가 갖는 ‘사랑’이라는 신화에 희망을 불어넣는다.

영화 '우리가 사랑이라고 믿는 것' 스틸. 사진 티캐스트


# 영화정보

시를 엮은 책을 만드는 유쾌하고 솔직한 그레이스(아네트 베닝), 고등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는 조용하고 신중한 에드워드(빌 나이), 그리고 감정 표현이 서툰 하나뿐인 아들 제이미(조쉬 오코너). 성격은 다르지만 평범하게 29년을 함께한 한 가족의 일상에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에드워드는 급작스레 아내를 떠나겠다고 선언하고, 사랑이라고 믿었던 모든 것이 무너진 그레이스. 큰 충격을 받고 깊은 슬픔에 빠진 그를 보며 아들 제이미는 각자의 입장에서 그들의 감정을 이해하려 노력한다.

영화 ‘우리가 사랑이라고 믿는 것’(감독 윌리엄 니콜슨)은 가족의 갑작스러운 이별로 감정적 혼란을 겪는 이들의 마음을 그렸다. 영화 ‘레미제라블’, ‘글레디에이터’의 각본을 집필한 윌리엄 니콜슨이 메가폰을 잡은 작품으로, 그는 자신의 경험에서 영감을 받아 영화의 시나리오를 완성했다.


개봉: 2월 24일/ 관람등급: 12세관람가/감독: 윌리엄 니콜슨/출연: 아네트 베닝, 빌 나이, 조쉬 오코너, 아이샤 하트/수입·배급: 티캐스트/러닝타임: 100분/별점: ★★★☆

작가의 이전글 ‘리코리쉬 피자’ 1970년대 미국 향취와 청춘 예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