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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묵묵히 Feb 13. 2024

해피엔딩을 위해서

소설이나 영화가 해피엔딩으로 끝나면 기분이 좋다. 나에게도 행복의 기운이 전염되어서 그런 것 같다.

어릴 때 읽었던 동화에서도 공주와 왕자가 행복하게 잘 살았다는 맺음이면 늘 설렜다.


사람들은 소설이나 영화에서만이 아니라 자신의 인생이 해피엔딩이길 바랄 것이다.


나 역시 행복이 인생의 목표라고 생각했었다. 

열심히 사는 이유도 행복해지기 위해서라고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열심히 사는데 행복은 점점 멀어지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행복은 언제 나에게 다가오는 건지, 어떤 상황이 되면 내가 행복해지는 건지 궁금해졌다.


행복이 뭔지 고민을 하던 차에 인지심리학자 김경일 교수의 강연을 보고 깨닫게 되었다.

“행복은 목표가 아니라 도구이다. 행복하기 위해서 사는 게 아니라 살기 위해서 행복한 거다.”


무슨 말장난이야 할 수 있지만 엄청난 의미를 지닌 문장이다.

행복을 위해서 살면 늘 결과만 따지게 된다. 좋은 결과여야만 내가 행복하다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 살기 위해서 행복을 도구로 쓰게 되면 과정 자체를 즐길 수 있게 된다.


차를 타고 서울에서 부산까지 간다고 했을 때 부산에 도착하는 것만 생각하면 길은 왜 이렇게 막히는지, 

지름길은 어딘지 생각만 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지나치는 길목 하나하나를 보면 생각지 못했던 좋은 풍경을 만날 수도 있고, 맛있어 보이는 밥집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내 삶이 왜 행복하지 않지? 행복하려고 열심히 사는데.’라는 의문에 사로잡혔던 그때 김경일 교수의 강연은 내 인생관을 좀 더 넓혀주는 계기가 되었다.

너무 결과에만 집착했던 것은 아닐까. 스스로를 옭아매고 시야를 좁게 한 건 아닐까.


지금의 나는 작은 행복을 자주 느끼려고 애쓴다. 

고객과 이야기가 잘 통해서 기분이 좋은 것도 행복이고, 화장이 잘 된 것도 행복이다.

행복을 너무 어렵게 생각하고 이상 속 파랑새를 좇으려 하니 행복이 멀리 있다고 느꼈던 것 같다.


해피엔딩은 환상이 아니다. 

내가 행복의 정의를 어떻게 내리고 살 것이냐에 따라 누구나 해피엔딩을 맞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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