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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쓰기 Dec 04. 2021

가상의 편지

머식이,〈케빈에 대하여〉, 린 램지 감독

케빈, 내 아들에게. 



세상이 온통 붉은색이야. 

그날은 집이 붉은빛으로 물들었단다.  

붉은빛은 집 앞 나의 노란 자동차까지 번져있었어.  

나는 붉게 번진 환대를 받으며 거리를 나섰고  

돌아와서는 스스로 붉은빛을 가득 채웠어. 


케빈,  

엄마는 붉은빛이 가득한 밤, 너를 가졌단다.  

그래서일까, 네겐 붉은빛이 부족했나 봐.  

너를 평생 푸른색에 가둔 나를 용서해.  


네가 떠난 후 나의 세상은 다시 붉게 물들었어.  

찬란한 붉은빛은 언제나 쫓아온단다.  

어제는 말이지. 거리의 사람들이 온통 붉은빛으로 내게 모여들었어.  

문득 네가 선물했던 특별한 붉은색 방이 떠오르더라. 

분명 붉은빛의 축복이었을 거야.






에바, 엄마에게. 



난 엄마가 당신과 나를 푸른색 속에 가두었다고 늘 말하고 있었는데. 

 이젠 잘 모르겠어. 

노란색에 도달하면 도달할수록 붉은빛과는 멀어진다는 걸  

내가 언제부터 알 수 있었는지는 몰라. 그저 다가가는 거야. 


손수 노랑으로 노랑들을 가둔 그날, 온통 붉은빛으로 가득 차더라고.  

난 비로소 붉은 것에 닿을 수 있었어. 

그게 당신의 붉은빛은 아니었지만.  

당신이 내가 닿지 못한 노랑을 쥐여준 실리아는  

파란 페인트로 방 벽을 칠해줘도 상관없었을지 몰라.  

그 아이의 방, 그 개성의 색은 당신이 알아보지 못한 내 것이었어.  

증오와 사랑은 닿아있어.  

과녁 속 우리 색의 경계만큼 분명하게 갈라져 보일 뿐이지. 


추신.  

엄마가 붉은색 속에서 몇 번이고 죽고 있을 거란 걸 난 알아.  

당신은 본래 붉었거늘 그 속에 스스로 가두지 말도록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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