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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쓰기 Dec 04. 2021

영화로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은서, 〈원더〉, 스티븐 크보스키 감독

  사람들이 모두 사려 깊고 선하다면 어떤 세상이 될까? 감정적 문제에 있어서는 평화로운 세상이 될 것 같다. 사소하게 발생하는 갈등도 결국엔 서로가 서로를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기에 해피엔딩인 하루하루를 살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이 질문과 같은 맥락으로, 영화 〈원더〉를 보면서 최근 막을 내린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이 겹쳐보았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에는 똑똑하고 부유하고, 본업에도 충실하며 동료들에게도 친절하고 교우관계도 좋고 취미생활도 잘 즐기는 5명의 의사가 등장한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모든 사람이 결국은 선하고 이상적으로 그려지기에 현실과 동떨어지게 느껴진다. 실제로 많은 시청자가 ‘세상에 저런 의사는 없다’고 말하지만, 이에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신원호 PD는 이렇게 답한다.      


“그게 판타지일지언정 그걸 보면서 마음이 좋고, 나도 저런 좋은 사람들과 같이 있었으면, 그래서 ‘나도 좋은 사람이 돼야지’라고 생각하는 것, 그런 목표를 위해 매번 좋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모든 이들이 노력하는 이상적인 가족      

  위의 언급한 인터뷰처럼 원더는 좋은 사람들이 등장하는 영화이다. <영화-쓰기> 활동을 하면서 많은 가족을 만나보았지만, 〈원더〉의 가족만큼 이상적인 가족을 보지 못했다. 물론 영화에 비추어지지 않은 전후의 사정은 어떠할지 모르지만, 스크린에 비추어진 그들의 모습은 퍽 좋아 보였다. 영화는 태어나자마자 27번의 수술을 거쳐야 했던 어기가 학교에 가기 시작하는 시점의 가족을 보여준다.     

  어기의 새로운 도전과 함께 엄마인 이자벨과 누나인 비아에게도 새로운 상황이 닥친다. 영화는 단순히 어기만을 중심으로 그리지는 않고 이자벨, 비아, 누나 친구인 미란다의 시점을 오가면서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집과 병원 밖의 사회는 거의 경험해보지 못한 어기가 새로운 환경에 발을 들이며 난처하고 당황스러운 상황이 연달아서 발생한다. 가족 밖 사회에서 이리저리 치이고 돌아온 어기는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화풀이한다고 가족들에게 짜증을 내고 화를 낸다. 하지만 가족들은 이런 상황에 분노로 넘기지 않고 어기의 상황에 공감하고,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며 어기와의 관계를 회복한다.      

  영화에 등장하는 갈등은 다양한 역할을 하는데, 이 영화에서의 갈등은 이 가족의 따뜻함과 선함을 극대화하는 역할을 맡았다. 더불어 갈등의 해결을 결과 중심적으로 제시하지 않고, 과정부터 차근차근 전달한다. 카메라의 시점을 어기에서 이자벨, 비아까지 이동하며 그런 행동을 하기까지의 고민을 모두 보여준다. ‘이 사람들이 한없이 선하고 착한 사람이라 이런 행동을 했다.’로 귀결되지 않는다. 수많은 고민 과정 중 충분히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지만, 결국에는 나를 위해, 가족을 위해, 친구를 위해 선한 행동을 했다는 것을 충분하게 보여준다. 이를 통해 가족들의 선하고 바른 모습을 굉장히 입체적으로 제시한다.      


현실에 비추어보기 개인의 선함에만 기댈 수 있을까?

  하지만 이 영화에 아쉬운 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등장하는 인물들은 굉장히 이상적이다. 심지어 이런 선한 인물들의 거듭된 등장은 이질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현실에 저런 가족은 없다며 고개를 젓게 한다. 부모님은 어기를 홈스쿨링할 수 있을 정도로 지적이고, 자애롭다. 비아는 동생에게 모든 관심이 쏠려도 가족의 문제를 늘리지 않고 싶다며 참을 정도로 생각이 깊다. 어기는 똑똑하고 합리적이라 짜증이 나도 가족들이 설득하면 쉽게 납득한다. 이들의 선한 심성은 분명 행복한 가족을 만드는 데 기여했을 것이다.     

  하지만 선한 심성만으로 예측불허한 가족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영화는 주인공 가족을 체제 속 시민이 아닌 한 명의 인간으로만 그려낸다. 이런 방식은 ‘선함’이라는 가치를 더욱 강조한다. 이렇게 그려낼 수 있었던 이유는 캐릭터의 설정 속 ‘부유함’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들 가족은 복지 시스템을 이용하지 않고, 국가로부터 금전적 지원을 받지도 않으면서도 어기가 치른 27번의 수술을 모두 감당하였다.(지원과 어려움이 있었을 수도 있지만, 적어도 영화에서 언급되지는 않는다.) 이러한 조건과 환경 속에서 이들은 단지 어기와 비아에 대한 사랑만을 표현하고, 할로윈을 즐기면 된다.     

  어기의 가족이 가진 ‘부유함’이라는 조건은 가족의 문제에서 꽤나 많은 것을 해결해줄 수 있었다. 그렇기에 더더욱 아버지의 직업을 드러내지 않거나 병원비에 대한 언급 없이 넘어가기보다는 명확히 금전적 문제에 대해 언급하고 넘어갔으면 어떨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런 사실을 어물쩍 넘어감으로써 어기로 대표되는 ‘트리처-콜린스 증후군’ 환자들이 겪는 어려움이 단지 교우 문제뿐이라고 여겨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희귀질환과 장애를 가진 이들이 모두 어기처럼 필요한 수술을 바로바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질병이나 장애를 소재로 사용하는 영화인 만큼 조금 더 많은 이들을 대변한다면 더 다각적인 접근과 논의가 가능했을 것이다.      

  영화는 세상을 보여주는 창구이지만, 모든 것을 다 비출 수는 없다. 〈원더〉는 그 중 친절하고 선한 이들을 조명하길 택했다. 이 선택으로 인해 선한 인물, 비폭력적인 대화, 사랑이 넘치는 관계를 잘 드러낼 수 있게 됐다. 자, 이제 여기에서 어떤 영향을 받을지를 결정하는 것은 관객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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