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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쓰기 Dec 03. 2021

아이가 어른이 될 때

나연, 〈원더〉, 스티븐 크보스키 감독

  영리하게 따뜻한 영화라고 생각했다. 영화관에서 처음 봤을 때도, 내용을 다 알 때도, 정석적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지루하지 않았다. 〈원더〉는 이런 장르에서 원하는 바를 정확하게 제공했다. 억지스럽게 괴로운 상황이 아닌 실제로 있을 법한 상황과 고민이라 좋았다. 그리고 등장인물의 폭발된 감정이 영화에서 오래 남지 않았다. 그래서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 등장인물의 성격이나 관계가 뭐라 할까, 굉장히 깔끔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떤 갈등은 갑자기 강아지가 아파서 무난히 지나가고 혼자 남아도 새로운 친구가 바로 등장하더니 절친이 없어도 나름 잘 지낸다. 각자의 상처를 상세히 보여주나 적절히 끊었다. 보는 이가 감정에 매몰되지 않도록 한 것은 장단점을 떠나서 교훈적이고 가족 구성원의 갈등을 다룬 영화에서 드문 면이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의 장르를 정한다면 가족 영화나 성장 영화다. 이때 어기만이 아닌 비아, 미란다, 잭 윌로 한 번씩 초점이 바뀌는데 각자의 상황이 나오고 고민거리를 해결하면서 성장한다. 어기의 고민은 남들과 다른 외모로 친구들과 잘 지내지 못한 점, 비아는 부모님에 대한 서운함과 친구와의 갈등이, 미란다는 이혼한 부모님과 친구와의 갈등이, 잭 윌은 어기와 멀어진 사이가 고민이다. 신기했던 점은 다들 스스로 성장한다는 것이다. 어기와 어기 부모님의 대화가 자주 나와도 갈등을 어떻게 해결하라고 말해주지 않았다. 잭 윌의 사과도, 그걸 어기가 받는 것도, 미란다와 비아의 화해도, 그리고 나중에 다른 친구들이 어기를 받아들인 점도 특정 어른의 개입이 없었다. 등장인물들은 처음에 판단을 잘못해도 나중에 바로잡는다. 보통 성장물에선 불안한 방황을 강조하는데 여기선 성숙한 관계를 맺는 아이들에 주목한다. 현실적인 감정선과 더불어 그 점을 너무 유치하지도 무겁지도 않게 살리려고 노력했다. 


  어기가 졸업식 때 말한 “모두가  평범한 사람이 아니다. 다들 힘겨운 부분이 있으니 친절해지자”가 영화에서 최종적으로 하고 싶은 말이다. 어기의 성장은 모두가 그리고 자신도 박수를 받을 자격이 있다는 것을 배운 점이다. 영화 초반 어기는 우주인 헬멧을 쓰고 다니고 자신이 평범한 사람(외모)이 아니란 점에 큰 불만을 품고 있다. 그런 어기가 더 이상 보통 사람이 되길 바라지 않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특별한 존재라고 인정하는 건 인상적이다. 어기가 배운 점은 장애 여부, 나이를 떠나서 평생 깨닫기 힘들다. 솔직히 당장 나조차 타인과 나를 그만큼 고려하면서 사는지 모르겠다. 이렇게 어기의 성장 과정에 현실적이지 않은 부분도 있다. 〈원더〉는 현실과의 간극을 고민하는 것보다 낙관적인 시뮬레이션을 보였다고 생각한다. 영화의 비현실적인 면 때문에 오히려 어기의 성장이 많은 조건이 뒷받침되어야 하는 어려운 과정으로 보였다. 그러나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등장인물들이 분명히 큰 희생을 한 것은 아니다. 가족을 제외하고. 그래서 우리가 사는 사회가 이렇게 될 수 없음을 외치는 건 공허하다고 생각한다. 한 개인으로 몇몇 지점은 고려해볼 수 있다. 선생으로 힘들어하는 아이를 차별하거나 무시하지 않을 수 있고 지나가는 이로는 ‘내가 너의 얼굴이면 죽을 텐데’를 말하지 않을 수는 있다. 이처럼 현실에서 <원더>의 배경처럼 완벽히 선한 사회는 불가능해도 변화는 가능하다. 그렇기에 누군가의 삶에 얽힌 작은 변수로 이상적인 선택에 근사해지면 혹시라도 어기와 비슷한 아이의 성장에 보탬이 될 거란 낙관적인 기대를 해본다. 


  비아는 아픈 동생 때문에 부모님의 관심을 상대적으로 덜 받았다. 비아가 영화의 중심이 될 때 “어거스트는 태양이다. 엄마와 아빠와 나는 태양을 도는 행성이지만 나는 남동생을 사랑하고 이 우주에 익숙하다”라고 가장 먼저 말한다. 비아가 이런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과 별개로 서운함은 꾸준히 남았고 결국 엄마와 연극 관람을 두고 크게 터진다. 사실 비아가 출연한 연극을 가족들이 관람한 것으로 엄마와의 갈등을 포함해서 그동안 가졌던 섭섭함이 사라졌는지 잘 모르겠다. 비아의 엄마는 연기하는 비아를 보며 눈물을 흘리고 극이 끝난 후 둘은 포옹을 한다. 이렇게 영화는 갈등을 해소한다. 어쩌면 비아에겐 일생의 고민이자 엄마와의 관계에서 앞으로도 중요한 지점일 텐데 간단히 마무리되어 조금 불만스러웠다. 물론 비아의 부모님은 옛날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비아를 항상 사랑할 거다. 문제는 우선순위에서 조금씩 밀리는 딸에 대한 행동이 바뀌는지 여부이고 그건 알 수 없다. 비아는 여전히 어기보다 자신을 더 사랑해준 사람은 할머니라고 여길 것으로 추측한다. 대신에 이런 점은 연극 이후 비아에게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비아의 성장은 가족이 날 사랑하고 있다는 점을 깨닫는 것보다 자신도 태양이란 점을 아는 것이다. 어기와 비아는 다른 고민을 했지만 어떠한 관계이든 본인도 중요하다는 것을 배운 비슷한 성장을 했다고 본다. 


  원더는 든든한 가족을 기반으로 여러 관계에서 성장하는 아이들의 이야기다. 이들이 정말 어른이 되면 주변 어른들처럼 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그런데 이 영화의 어른들은 비현실적이다. 아이들이 겪은 성장이 불가능해 보이는 이유는 아동 양육 책에 나올 법한 어른들의 모습 때문이다. 이렇게 인물들은 우리가 가족에게, 친구에게, 타인에게 보고 싶은 모습과 닮았다. 그럼에도 현실과 동떨어졌다는 비판을 하기보다 그래도 어딘가 각자의 힘겨운 고민을 이해할 사람이 있다는 따듯한 위로를 했다고 받아들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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