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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쓰기 Dec 04. 2021

좌절에도 의연하게

은서, 〈우리집〉, 윤가은 감독

  많은 어른은 어린이로 살던 시절을 잊어버리고 산다. 항상 기억해야 할 필요는 없지만, 영구히 잊어서는 안 된다. 윤가은 감독의 영화를 보면 집의 구석 어딘가에 먼지 쌓여있는 사진첩을 펼쳐보는 기분이 든다. 윤가은 감독은 〈우리집〉 뿐 아니라 〈우리들〉, 〈콩나물〉처럼 어린이가 주인공인 영화를 여럿 작업했다. 그래서 그런지 어린이를 다루는 관점이 굉장히 섬세하고 구체적이다. 그중 이번 글의 주제인 〈우리집〉이라는 영화는 집과 가족관계를 아이의 관점에서 보여준다.    

 

  영화는 첫 장면부터 주인공 하나의 얼굴을 보여준다. 카메라는 부부싸움을 하는 상황에 과감하게 부부를 잘라낸다. 대신 하나의 흔들리는 눈동자, 타이밍을 재는 입을 보여주며 아이의 심리를 묘사한다. 영화 초반 하나와 다른 인물들의 관계는 크게 두 종류로 나뉘어 표현된다. 부정적 관계는 가족, 긍정적 관계는 유미, 유진 자매이다. 가족과의 관계에서는 매번 해결할 수 없는 일이 발생하며, 가족 구성원들은 이를 해결하려고 적극적으로 애쓰지 않아 좌절감을 느끼게 한다. 반대로 유미, 유진 자매와의 관계에서는 가족과 달리 쉽고 단순하게 해결 가능한 문제가 주로 발생한다. 함께 반복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경험은 아이들에게 성취감을 느끼게 한다. 하나는 그렇게 유미, 유진과 함께 유미의 집을 보러 온 사람들을 내쫓고 매번 이길 수 없었던 오빠의 약점도 잡는다. 그런 생활을 이어가던 와중 유진은 하나 엄마의 노트북에 우유를 엎는 사고를 일으킨다. 이 사고는 유미, 유진과 함께 있는 도중 처음으로 좌절하는 장면이지만, 오히려 이 사건을 통해 하나와 가족과의 관계도 개선되는 듯 보인다. 

그림  유진, 유미의 집을 보러온 사람들을 내쫓기 위해 집을 어지럽히는 하나, 유진, 유미

  하지만 설기게 붙여놓은 문제들은 쉽게 벌어진다. 집 보러 오는 사람들을 평생 막을 수 없었고, 가족여행을 계획해도 소원해진 부부관계가 해결되지 않는다. 가족을 헤어지지 않게 하겠다는 하나의 다짐과, 집을 이사가지 않게 하겠다는 유미의 다짐은 애초의 두 사람의 노력으로 해결될 수 없었다. 이상적인 가족의 모습도 유미, 유진의 집에서 세 사람이 오리고 붙여 만든 집 모형처럼 공들여 낼 수 있는 것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결국에는 버려진 집 모형처럼 세 사람의 다짐 또한 좌절에 못 이겨 스스로 버려야 하는 순간은 오고야 만다. 

그림  노을지는 하늘, 집 앞에 앉아 모형집을 만드는 하나, 유미, 유진

  유미와 유진의 부모님을 찾아 길을 나선 세 사람이 바닷가에 도착하고, 길을 잃어 화가 난 유미와 하나가 서로 싸우는 장면이 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이내 허기를 느끼고 먹고 자는 문제의 해결을 위해 의기투합하며 사그라든다. 먹고 사는 문제를 위해 아이들을 슬프게 만드는 부모님들의 모습과 대비되는 모습이다. 어른이 짊어져야 하는 책임의 무게가 고달픈 것은 이해가 되지만, 아이들이 정말로 부모에게 원했던 것은 참으로 단순한 것이었다. 아이들과 정서적인 유대감을 잘 형성하는 것과 잘 먹고 잘 사는 것은 정말 양립하기 어려운 일일까. 어른의 삶은 자주 모순적이고 가혹해지는 것 같다. 

    

  유미, 유진의 집과 하나의 집의 결핍이 달랐던 것처럼 모든 가정은 서로 다른 문제를 조금씩은 껴안고 있다. 몇십 년간 부대끼며 살아야하고, 금전적 문제를 함께해야하는 공동체의 특성상 문제는 발생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가족의 결핍이 사라지는 것은 굉장히 어렵고 어쩌면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결핍을 없애려고 하기 보다는 의연하게 결핍을 직시해야 한다. 부모의 관계를 봉합할 수 없다는 무기력감에 휩싸이지만, 그럼에도 가족들과 함께할 밥상을 위해 다시 밥을 짓는 하나처럼 말이다. 가장 어리지만 가장 성숙한 태도로 가족을 대하는 하나에게 박수를 쳐주고 싶었다.     


덧붙이는 글     

 

  어린이가 무능할 것이라는 전제에서 파생된 단어인 O린이(헬린이, 요린이 등). 어린이를 단편적으로만 소비하는 잼민이. 두 단어 모두 최근 활발하게 사용되는 유행어이다. 어린이는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무조건적으로 미숙할 것이라 여겨진다. 어린이의 의사표현은 어딘가에 공신력 있게 실리지 않는다. 따라서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혐오표현은 빠르고 쉽게 퍼진다. 1920년 어린이라는 단어를 처음 사용했던 그 취지는 어느새 까맣게 잊어버린 듯하다.      


  이런 혐오표현이 만연하게 사용되는 것과 반대로 윤가은 감독의 영화는 어린이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마음이 강하고 의젓한 어린이, 해맑고 순수한 어린이, 호기심이 많은 어린이, 능숙한 어린이, 서툰 어린이, 단편적인 말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어린이까지. 우후죽순 쏟아지는 콘텐츠들이 삶을 자극하고, 각성시키는 카페인 음료같은 시대에 윤가은 감독의 영화는 막 자판기에서 뽑은 율무차 한 잔 같다. 분명 알고 있었지만, 새삼스러운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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