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연, 〈우리집〉, 윤가은 감독
〈우리집〉은 여러 에피소드에서 아이들의 시선을 섬세하게 표현했다. 마치 옆에서 여름에 있었던 일을 지켜보는 느낌이었다. 영화 속 상황은 하나의 뜻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하나가 유미 자매와 바닷가에 갔다가 우여곡절 끝에 집에 돌아온 후, 식사를 차려 가족들에게 “우리 밥 먹자, 든든하게 먹고 진짜 여행 준비하자”라고 말하는 것에서 영화가 끝난다. 영화 내내 아이들이 가족 문제를 해결하려는 모습은 귀엽고 씁쓸했는데 마지막에 가족들이 하나의 눈치를 보는 것이 묘했다.
〈우리집〉의 첫 장면은 당혹스러움이 서린 하나의 표정을 담았다. 치열하게 싸우는 부모님 사이에서 어떻게 해서라도 상황을 진정시켜보려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하나가 처한 상황도 직관적으로 알 수 있었고 나의 경험도 생각나면서 집중하게 되었다. 부모님의 다툼이 없는 집은 솔직히 아니라서 그럴 때마다 누가 어떻게 시작하든, 어떤 과정이든 큰 소리가 피곤했던 것 같다. 하나의 반응에 공감이 되거나 비합리적이라고 여기는 것보다는 영구적인 해결책이 아닐지라도 그런 상황이 무마되길 바라는 마음이 이해 갔다. 그리고 조금 희한하게 공감이 갔던 것은 유미가 상자를 모으는 부분이었다. 어렸을 때 큰 상자 안에 작은 상자를 겹겹이 두고 나름 귀중품이라고 편지, 스티커 같은 걸 넣었는데 아이들을 보면서 잊고 있던 기억이 떠올랐다. 어떤 사람들은 영화의 다른 부분에서 공감했을 수 있다. 하나, 유미, 유진이가 겪은 경험은 특별하지만, 사람들 각자의 집에서 일어났던 기억을 떠오르게 하는 보편성을 영화는 공유한다.
아이들은 가족의 중요한 구성원이지만 보통 집안의 결정에 영향력은 없다. 돈이나 이혼처럼 특히 불편하거나 어려운 문제일수록 쉽게 제외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변화에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나에게 부모님의 이혼은, 유미 유진 자매에게 이사는 심각한 문제이다. 〈우리집〉의 어른들이 나쁘기보다는 피하지 못할 상황에 처했다고 생각하는데, 차라리 솔직하게 털어놓았다면 더 나았을 것이다. 부모님의 돌이킬 수 없는 감정을 설명했을 때, 당장은 힘들어도 하나는 충분히 이해할 것 같다. 아이들이 상황이 해결될 수 없고 자신들의 잘못 때문에 발생하지 않았다는 점을 막연히 느끼는 것과 어른이 명확히 짚어주는 것은 다르다. 영화 속 어른들은 아이들이 상황에 대한 부담을 지고 있는 걸 알지만 금전상의, 성격상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어른으로서 부끄러워 회피했다. 혹은 다른 이유일 수 있지만 어쨌든 이런 외면은 무책임했다.
영화는 아이의 시선에서 바라본 어른의 세계를 보여준다. 나는 이제 어른의 입장이니 아이들의 세계를 어떻게 바라보고 대해야 하는지 궁금했다. 예전에 초등학교 봉사로 여름방학 교실을 신청한 적이 있다. 친동생과 사촌 동생이 나이 차가 많이 나지 않아서 훨씬 어린 사람을 대할 때는 어떠할지 예상을 못 했다. 듣고 있는 것 같긴 한데 소통이 되고 있는지 항상 의문이었다. 섬세한 아이라고 귀띔을 받아서 나름 신중히 말을 하고 있는데 표정이 점점 안 좋아져서 당혹스러웠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개인적으로 굉장히 강렬한 경험이었다. 애들이 좋다, 싫다를 떠나서 어려웠다.
그래서 〈우리집〉의 어른들이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의 엄마가 이해되는 부분도 있어 어른으로서 행동에 대해 고민이 되었다. 이때 말썽꾸러기의 변화를 다룬 한 육아 프로그램이 떠올랐다. 여기서 아이들의 문제 행동에 항상 원인이 있었다. 마치 아이의 행동이 주변 어른으로 인해 정해지는 것 같았다. 하나와 유진 자매의 행동과 사고도 결국 어른들의 부족함이 만들어낸 환경의 반응일까? 더더욱 어른으로서 어렵다고 생각했다. 살면서 여러 어른을 봤고 인간적으로 별로인 경우도 있었는데 <우리들>처럼 아이가 상황을 바라볼 때, 최소한 그런 사람이 되는 것은 피하고 싶었다.
유미네 옥상에서 하나는 ‘우리 가족 토마토 나무’라고 적힌 화분에서 떨어진 토마토를 집는다. 이때 유진이가 다가와 토마토 땄냐고 묻고 곧바로 언니는 괜찮다고 말한다. 영화 중반도 되기 전이지만 유진이에게 하나는 이미 가족이다. 유미는 더 뒤에서 명확하게 드러낸다. 하나와 유미가 작별할 때, 너무 어린 유진을 제외하고 둘은 지금이 정말 마지막임을 안다. 유미는 “우리가 이사해도 언니는 계속 우리 언니 해줄 거지”’라고 묻는다. 이때 하나는 무언가 결심한 듯 “언니는 계속 너희 언니 할 거야”라고 답변한다. 이 순간 각자 무슨 생각을 했을지 궁금했다. 짧다면 짧은 여름 동안 아이들이 어떤 감정이었는지 관객은 정확히 알지 못한다. 비슷한 문제를 함께 고민하는 과정에서 유미 자매의 존재는 하나에게 위로가 되었을 것이다. 바닷가에서 종이집을 부술 때, 하나를 바라보는 유미도 묘하게 이해한다는 표정이다. 팍팍한 삶에 서로 의지했는데 결국 헤어짐이 있다는 점이 아쉬웠다. 그래도 아이들이 가족보다 가깝거나 더 잘 이해하는 타인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느꼈을 것으로 추측한다. 물론 가족은 중요하다. 하지만 본인의 삶, 행복을 갉아먹는 관계는 가족일지라도 재고할 사항이고 마음이 맞는 이가 꼭 가족으로 만나지 않을 수 있다. 하나가 유별난 반응을 했다고 여기진 않는다. 어렸을 때는 그냥 가족의 보편적인 모습이 있다고 생각했던 거 같다. 만약 초등학생인 내게 이혼한다고 하면 ‘네 뭐 부모님 선택이죠’이라고 말하진 않았을 것이다. 어른이 된 지금은 그저 관계의 거리가 가깝다는 점이 완벽성을 보장하지 않음을 알 뿐이다.
영화 이후 이들 가족이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그리고 하나가 어른이 되면 오빠보다 더 냉소적으로 변할지 아니면 ‘함께하는 가족’에 미련을 계속 둘지 알 수 없다. 성장한 유미나 하나에게 가족에 관해 물으면 지긋지긋하다는 답변을 할 거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린아이들인 하나와 유진, 유미 자매의 무거운 경험이 안타까웠고 시간이 흐르면서 본인들을 더 존중하는, 위로를 받을 수 있는 관계를 얻어 너무 외롭지 않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