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에서 자라는 글 상추

by 해안 강민주

텃밭에서 자라는 글 상추


해안 강민주


사랑하는 이들의

죽음 앞에서


죽음 같은

배신 앞에서


죽음으로도 갚지 못할

깊은 죄 하나

목에 걸려


빈 종이 앞에 앉아

펜을 드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묻는다.

어떻게 하면

글을 쓸 수 있을까요.


나는

잘 쓰는 법은 모른다.


다만

글을 쓰는 사람은

마음이

한 번쯤

무너져 본 적이 있어야 한다.


무너진 마음이

검은 흙으로 익으면,


그 흙은

상추 씨앗 같은 상처들을

조용히

기르기 시작한다.


관짝 언저리를 밟고

살아온 삶이라

할 말은 넘치는데


글 쓰는 법을 모르겠다는

하소연을 만나면


나는

점 하나부터

찍으라 한다.


그 점 위에

누군가는

말 하나를 남기고


그 말을 이어

문장이 되고,

그것이

세상에

슬며시 놓일 때

글이 된다.


그렇게

반복된 물주기로

조금씩

글 상추가

자란다.


글이 너무 자라면

하나씩

덜어낸다.


상추는

뜯어낼수록

여린 새 잎이

더 맛있게 자란다.


가끔 고라니가

쇠울타리를 넘어

상추를

다 먹어치우기도 한다.


그러나

글이 없는

빈 종이는

새로운 글을 부르는

조용한 초대장.


다시 씨를 뿌려

상추 같은 글을

키우면

그뿐.


오늘도

한 잎,

자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