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주의자
오늘을 살아 있기에
ㅡ 채식주의자
해안 강민주
채식주의자를 읽는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활자 사이에서
내 지난날들이
조용히 고개를 든다.
논에서 잡은 개구리가
그날 밤
엄지손톱에 박히고,
하늘에서는
그 과보를
백오십 년에 걸쳐
받으리라는 음성.
모든 생명은
어느 생엔가
부모였고
자식이었다는 믿음.
길가에 죽어
말라비틀어진
개구리에게서도
내가 보여
울던 날들.
그래서 나는
한동안
입에 고기를
댈 수 없었다.
나는 여러 번
삶의 가장자리에
서 있었다.
어머니의 뱃속에서
낙태를 위해 삼킨 약이
나를 스쳐 지나가며
이미 한 번,
세상과의 약속은
취소될 뻔했다.
유치원 무렵,
친구 집에 놀러 갔다가
개에게 물렸을 때
친구 할머니는
잘라낸 개털을
내 손에 쥐어주었다.
외가에서는
수탉에게 쫓겼고
그 수탉은
그날 저녁
삼계탕이 되었다.
집에서 기르던
송아지의 뿔에 받혔고
그 소는
말없이
팔려갔다.
물은 또 얼마나
나를 데려가려 했던지.
양촌에서,
동학사 계곡에서,
죽음의 문 앞까지
다녀왔다.
대학 시절
롤러를 타다
다리는
세 동강이 났고,
결혼 후에는
아이들을
여러 번
떠나보냈다.
자궁 외 임신으로
나팔관이 터졌을 때,
나는 다시
죽음의 얼굴을 보았다.
아이를 낳고 나서는
피가 멈추지 않고
혈압은
백구십까지
치솟았다.
꿈에 나타난 선녀는
내게
평생
정신암에 사달 릴 거라
말했다.
돌아보면
나의 ‘죽을 뻔한 역사’는
차라리
소설이라 불러도
이상하지 않다.
그래서일까.
내 안에는
PTSD가
겹겹이 쌓여
넘치고 또 넘친다.
부처님께 엎드려
눈물로 참회하고
또 참회했다.
그럼에도
나는 이렇게
페이지를 넘기며
여전히
살아 있다.
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
나는 참회 대신
감사의 기도를
시작했다.
늘 다른 생명의 희생 위에
오늘을 살아 있음을 알기에
이제는
불안과 불면 대신
먹은 값 하는 사람으로
살아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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