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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죽는다고 끝일까?

할아버지의 죽음

by 엄마쌤강민주

죽음은 인간의 삶에서 불가피한 부분이며, 많은 이들이 죽음의 의미와 그 이후의 삶에 대해 궁금해한다. 어떤 사람들은 죽음이 모든 것의 끝이라고 믿지만, 어떤 이들은 죽음 이후에도 삶이 계속된다고 믿는다. 나는 할아버지의 죽음을 겪으면서 ‘죽음이 정말 끝일까?’라는 의문을 품게 되었다.


어린 시절, 할아버지는 나에게 있어 한없이 믿음직한 존재였다. 사마귀를 보고 겁에 질렸던 내가 울음을 터뜨릴 때, 할아버지는 망설임 없이 그것을 손으로 툭 쳐 날려 보냈다. 그러곤 나를 향해 따뜻하게 웃어주셨다. 그의 웃음은 마치 따스한 햇살처럼 내 마음 깊은 곳에 스며들어, 모든 두려움을 씻어내주는 듯했다.

할아버지는 종종 노란 양은주전자를 내밀며 가게에 가서 막걸리를 받아오라고 하셨다. 심부름에서 돌아오면 작은 주머니에서 동전을 꺼내주곤 미소 지으셨다. 울고 있을 때면, 그의 작은 주머니에서 달콤한 사탕이 나왔다. 그 달콤함을 입에 물고 있으면 나는 더 이상 아프지도 슬프지도 않았다. 그의 작은 주머니는 수많은 보물들로 가득 차 있었고, 그 속에서 나는 한없는 사랑과 온기를 느낄 수 있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할아버지가 작은 주머니에서 만능 칼을 꺼내 밤을 정성스레 깎아서 내 입에 넣어주실 때였다. 아기 새처럼 입을 벌려 열심히 밤을 받아먹는 내 모습에, 할아버지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시며 “내 새끼, 내 새끼, 우리 이쁜 똥강아지”라고 말씀하셨다. 그 한 마디는 단순한 말이 아니라 온 세상의 사랑과 정성이 담긴 진심 어린 응원처럼 느껴졌다.


할아버지와 함께했던 추억은 마치 낡은 사진첩 속 한 장의 사진처럼 세월의 빛을 머금고 점점 희미해지지만, 그 기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마음 한편에 잔잔한 그리움이 피어오른다. 할아버지의 부드러운 음성, 인자한 미소, 그리고 깊은 사랑이 담긴 그 모든 시간들은 내 인생의 가장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 길을 잃은 듯한 어둠 속에서도 다시금 빛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힘이 되어주었다.


하지만 나는 그 따뜻한 존재를 갑자기 잃어야 했다. 중학교에 다닐 때였다. 어느 날, 병원에서 할아버지의 폐가 많이 안 좋다는 말을 들었다. 그 말에 가족들은 놀란 가슴을 부여잡고 하나둘 할아버지의 집으로 모였다. 하지만 막상 도착했을 때, 할아버지는 평소처럼 환한 얼굴로 우리를 맞으셨다. 눈가에는 미소가 어려 있었고, 마른 손으로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셨다.

“어이구, 우리 강아지 왔네.”

그 말에 우리는 안도했고, 집 안은 곧 웃음소리로 채워졌다. 그렇게 짧은 긴장감은 금세 해소되었고, 가족들은 하나둘 다시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다음 날 아침, 전화벨이 울렸다. 작은 아버지의 목소리는 조용하고, 무겁고, 말끝이 떨렸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어.”


할아버지는 집 바깥에 따로 있던 좁고 어두운 푸세식 화장실에서 혼자 생을 마감하셨다. 화장실 바닥에는 ‘똥구덩이’라고 불렸던 깊고 어두운 구멍이 있었다. 그곳은 오래된 배설물과 그에게서 풍기는 냄새가 가득했다. 암모니아의 자극적인 향과 썩은 유기물이 만들어 내는 탁하고 묵직한 냄새. 그것들이 한여름의 뜨거운 공기와 뒤섞이면, 악취가 더욱 짙어지고 끈적하게 퍼져 나가, 주변의 모든 것을 덮어버렸다. 구석에는 두엄이 수북이 쌓여 있었고, 파리와 이름 모를 벌레들이 윙윙거렸다.

할아버지는 그런 푸세식 화장실에서 아무도 없는 새벽의 어둠 속에서 조용히 세상을 떠나셨다.

어린 시절, 나는 푸세식 화장실을 몹시도 싫어했다. 낮에도 꺼림칙했지만, 밤이 되면 어둠 속의 그 화장실은 마치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듯한 기운을 풍겼다. 한밤중 요의를 느끼면, 나는 늘 수십 번을 참고 또 참았다. 화장실 문을 열면 코끝을 찌르는 냄새와 함께 축축한 공기가 먼저 나를 맞이했다. 가장 무서웠던 건, 그곳에는 전등조차 없었다는 사실이었다.


더는 참을 수 없게 된 나는 조심스레 라이터 하나를 손에 쥐었다. 작은 불꽃이 ‘찰칵’ 소리와 함께 피어오르자, 마치 손에 무기를 든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구겨진 종이 한 장을 꺼내 바닥에 두고 불을 붙였다.

종이는 불을 만나 바스락거리며 타오르기 시작했다. 붉고 노란 불꽃이 어둠을 조금씩 밀어내면, 그 속에서 나는 조심스럽게 바지를 내리고 몸을 웅크렸다.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타들어 가는 종이, 그리고 그 불빛이 만들어 내는 그림자들 속에서 나는 언제 어디서 무서운 괴물이 튀어나올지 모른다는 상상에 사로잡혀 두려움에 떨었다. 어린 나에게 시골의 푸세식 화장실은 더럽고 냄새나는 공포의 장소였다.


‘이런 화장실에서 사람이 죽을 수도 있다니!’

그날, 나는 할아버지의 죽음 자체보다 사람이 화장실에서 생을 마감할 수 있다는 사실에 더 큰 충격을 받았다. 그 이후로 화장실은 단순한 배설의 공간이 아니었다. 누군가의 마지막 숨결이 머물렀던 곳, 살아있는 가족들의 기억 속에 깊고 무겁게 자리 잡은, 특별한 장소가 되어버렸다.


할아버지를 모시는 상여는 금박과 은박의 반짝임 속에, 나비와 꽃, 불꽃을 연상케 하는 섬세한 문양들이 새겨진 천과 정교한 조각들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었다.


나는 상여를 바라보며, 사랑했던 할아버지와의 갑작스러운 이별 앞에 한 줄기 눈물조차 흐르지 않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는 혼란스러운 감정에 휩싸였다. 할아버지에 대한 깊은 애정이 여전히 마음 한편에 자리 잡고 있는데, 왜 눈물이 흐르지 않는 것일까? 혹시 그동안의 내 감정이 거짓이었나? 아니면 나는 슬픔을 못 느끼는 이상한 사람인 것일까? 그런 자책과 혼란 속에 나는 무심히 상여만을 응시했다.


상여가 천천히 집 밖으로 나가려는 순간, 아침의 고요함을 깨는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졌다. 슬픔과 상실감에 잠긴 가족들과 친척들이 상여를 둘러싼 그 찰나, 작은 어머니가 갑작스레 상여를 꽉 붙잡으며 모든 이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리듯 말했다.

“울지 말고 곡을 해라. 울면 내가 갈 수 없다. 울지 말고 곡을 하래도.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그 말 한마디는 마치 시간마저 멈춘 듯한 정적 속에서 울림을 남겼다. 사람들은 작은 어머니가 할아버지의 뜻밖의 죽음에 충격을 받아, 할아버지의 흉내를 내는 것이라고 속삭였다. 그녀는 이내 다른 이들의 손에 이끌려 집 안으로 사라졌다.


나는 한쪽 구석에 서서, 작은 어머니의 떨리는 목소리가 어렴풋이 “I GO, I GO, I GO”라는 영어 발음처럼 들리는 착각에 휩싸였다. 그 소리는 “나는 간다, 나는 간다, 나는 간다”라는 무거운 이별의 선언처럼 내 마음속 깊이 자리 잡으며, 할아버지와의 마지막 작별 인사를 담아내고 있었다.


그날, 또 다른 신비로운 사건이 벌어졌다. 장지로 향하는 버스 안부터 묘를 쓰는 그 순간까지, 마치 현실과 영혼의 세계가 뒤섞이는 듯한 일이 벌어졌다. 이번엔 어머니가 할아버지처럼 말하기 시작한 것이다. 어머니에게서 할아버지의 미소와 한숨, 그리고 그윽한 목소리와 잃어버린 시간들이 그대로 흘러나오는 듯했다

“무덤을 쓰는 곳이 집에서 너무 멀어서 아쉽다.”

“상여가 예뻐서 마음에 든다.”


어머니의 말 한마디 한마디마다, 거대한 운명의 장막이 살며시 열리는 듯했다. 어머니의 입을 타고 할아버지는 장지에 오지 못한 손주들과 친척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며, 그들이 보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을 전했다.


순간, 버스 안의 공기는 차갑게 얼어붙은 듯 고요해졌고, 마치 산 자와 죽은 자의 경계가 흐릿하게 모호해지는 듯 신비로운 긴장감이 감돌았다. 일부 사람들은 경건한 눈빛으로 어머니 주위에 모여들어, 할아버지의 메시지에 깊이 귀 기울이며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할아버지는 옆에 있던 나에게 “너는 말을 잘하니 법관이 되었으면 좋겠다.”라는 말을 건넸다. 그 말은 할아버지의 단순한 바람을 넘어, 내게 다가올 운명을 예고하는 듯 신비롭게 들렸다.

또 다른 이들은 어머니에게서 한 발짝 물러서며, 믿기 힘든 눈빛으로 이 모든 광경을 바라보았다. 그들의 얼굴에는 혼란과 경외감, 그리고 설명할 수 없는 슬픔이 고스란히 새겨져 있었다.


할아버지의 죽음 이후, 나는 냄새나는 푸세식 화장실에 홀로 앉아 책장을 넘기곤 했다. 화장실은 어느 순간 세상의 소음과 방해를 잊게 해주는 나만의 고요한 안식처가 되었다.

세월이 한참이나 흐른 후, 깨달았다. 그 냄새나는 푸세식 화장실에서의 독서가 단순한 시간 보내기가 아니라, 할아버지와의 소중한 추억을 되새기는 애도의 시간이었다는 것을. 나는 할아버지의 마지막 숨결이 머물렀던 화장실에서 나만의 방식으로 그를 애도하며 책 속에 담긴 이야기를 통해 아픔을 치유하고 성장하고 있었다.


그 모든 경험들이 나에게 말해주었다. 죽음은 단순한 끝이 아니라고, 죽은 이와의 관계가 육체적인 죽음, 바로 그 순간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고. 눈에 보이지 않아도, 손에 닿지 않아도 그 너머 어딘가에서 여전히 존재하는 것들이 있다고. 그 믿음은 대학 진학 시 법학을 선택하도록 나를 이끌었다.


이 이야기를 전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혹시라도 지금, 어둠의 끝에서 더는 길이 없다고 느끼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 누군가에게, 죽는다고 끝이 아님을, 지금 이 순간에도 당신은 누군가에게 충분히 소중한 존재임을 이 글을 통해 아주 작게나마 느껴주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다.

내 작은 믿음이, 당신이 이 세상에 조금 더 머물게 되는 이유가 될 수 있다면 좋겠다.

해마다 죽은 이들을 위한 영가등을 답니다. 그들의 육신은 사라졌어도 제가 살아있는 한, 제 마음 속에서 그들은 살아있습니다. 제 의식이 기억하지 못하더라고 무의식이 기억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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