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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화. 흰 양복과 검은 양복을 입은 두 남자

저승사자를 보다

by 엄마쌤강민주

1994년 가을, 대학의 1학년 2학기가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그때 나는 19살이었는데, 롤러스케이트를 타다 넘어져서 왼쪽 종아리뼈가 세 동강 났다. 나는 멀쩡하게 비장애인으로 살던 사람도 한순간의 사고나 질병으로 장애인이 될 수 있다는 걸 그때 알았다. 무사히 수술을 마치고 일상으로 복귀한 나는 커다란 흉터보다 걸을 수 있다는 사실이 더 감사했다. 그리고 한순간에 후천적 장애인이 된 이들을 안타까워하며 이들을 돕는 변호사가 되고 싶다고 결심했다.


퇴원 후, 진짜 열심히 공부했다. 그러다 새벽녘에 잠이 들곤 했는데 어느 날 꿈속에서 학교로 가는 길을 걷고 있었다. 차가운 공기 속에서도 나는 묵묵히 그 길을 걸었고, 익숙한 이 길을 걸을 때 무언가 특별한 일이 일어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아무 생각 없이 길을 걷다 이상한 느낌이 들어 왼쪽을 바라봤다. 누구의 집인지 모르지만 아주 커다란 집이었는데, 그 집의 대문을 보고 나는 순간 멈칫했다. 대문 앞에 테이블이 놓여있었다. 그것은 마치 그곳에 어울리지 않는, 불쑥 나타난 것처럼 낯설고 어색한 모습이었다. 테이블에는 흰 양복과 검은 양복을 입은 두 남자가 앉아 있었다. 그 남자들은 아주 키가 크고 젊은 미남자들이었는데, 내가 평소 알고 있는 사람들과는 다른, 이질적인 존재들이었다. 나는 누가 말해준 것도 아닌데 그들이 저승사자라는 걸 알았다. 내가 그들을 바라보자 그들도 나를 바라봤다. 나는 저승사자와 그렇게 눈이 마주쳤다.


며칠 후, 나는 학교에 가기 위해 꿈속에서 본 길을 걸었다. 꿈에 저승사자를 보았던 집이 실제로 있었다. 나는 그 집 앞으로 다가갔다. 대문에 초상 소식을 알리는 상갓등이 달려있었다. 이를 발견한 순간, 오싹한 느낌이 들며 나의 심장은 급하게 뛰기 시작했다.

“정말 초상이 난 거야?”.

나는 손을 떨며, 상갓등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그 집을 바라보았다. 갑자기 어깨가 무겁게 느껴지고, 가슴속 깊은 곳에서 답답함과 불안감이 밀려왔다. 꿈에서 본 그 저승사자가 현실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낸 듯한 기분이 들어, 불길했다. 현기증이 일어날 듯한 느낌 속에서, 나는 눈앞에서 맞닥뜨린 현실에 한동안 말을 잃고 멈춰 있었다.


그 후 나는 자주 가위에 눌리기 시작했다. 그날도 나는 눈을 뜨지 못하고 온몸을 조여 오는 압박을 견디며 필사적으로 의식을 되찾으려 애썼다. 손끝에 힘을 주어 겨우 손을 움직여 침대의 가장자리를 잡고 일어날 힘을 모았다. 머리가 어지럽고, 몸은 가볍게 떨렸지만, 결국, 간신히 눈을 떴다. 하지만, 방안은 여전히 어두컴컴했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빛도 없고, 주변은 차가운 침묵만이 가득했다. 나는 혼란스러움과 두려움이 교차하며, 여전히 내가 가위에 눌려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다시 힘을 내서 침대를 벗어났다. 그리고 벽을 더듬어 스위치를 찾았다. 가까스로 손끝이 전등 스위치에 닿자, 그것을 켜기 위해 힘을 주었지만, 스위치를 눌러도 불이 켜지지 않았다. 어두운 방 안에서, 나는 다시금 몸의 무거운 압박을 온몸으로 느끼며, 아직도 내가 잠에서 깨어난 게 아니라, 가위눌린 상태에 갇혀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다시 한번 기를 써 눈을 떴다. 그때 내 눈과 마주친 빨간 눈동자 두 개. 나는 여전히 가위에 눌린 상태였다. 그 공포와 고립감이 나에게 잠이 드는 것을 두렵게 했다.


밤에 잠을 자지 않고 버텨서 그런지, 새벽에 일어났다가 다시 아침 10시경만 되면 잠이 쏟아지는 일이 반복되었다. 그때마다 무서운 꿈에 시달려서 나는 갈수록 창백해지고 메말라갔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또 다른 이상한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나는 한 여자가 우리 집 대문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갑자기 그 여자가 몸을 돌려 나를 바라보는 순간, 가슴속에서 섬뜩한 느낌이 밀려왔다. 그 여자의 얼굴은 내 얼굴이었다. 그 모습에 잠시 멍해진 나는, 무의식적으로 숨을 크게 들이마셨고, 내 몸은 얼어붙은 듯 움직이지 않았다. 내 얼굴을 한 그 여자가 말했다.

“죽기 싫으면 그 시간에 자지 마.”

그 한마디가 내 마음속 깊은 곳을 찔러왔다. 그 말이 단순한 경고가 아니라, 뭔가 더 큰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나의 얼굴과 나의 모습을 한 그녀는 누구일까?’


며칠 후, 내가 여동생과 여동생 친구에게 믿기 어려운 꿈 이야기를 전하고 있을 때, 여동생 친구가 갑자기 말을 끊으며 소름이 돋았다고 했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이 꾼 꿈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내 꿈에서도 이렇게 앉아 있었어요. 언니랑 나는 침대에 앉아 있고 쟤는 바닥에 앉아서 언니가 말하는 꿈 이야기를 듣고 있었어요.”

순간, 나의 몸은 얼어붙은 듯했다. 여동생 친구가 말하는 그 장면은 너무나도 생생하고 정확하게 지금의 모습과 장면이 겹쳤기 때문이다. 내 가슴속은 급하게 뛰기 시작하고, 머릿속은 어지럽게 돌아갔다. 여동생과 그의 친구도 그저 놀라움과 불안함에 사로잡혀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 사건 이후, 나는 어떻게든 아침 10시에 자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리고 서서히 악몽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정확하게 기억나는 것은 아니지만 나중에 능엄경에 대한 책을 읽다가 ‘오십 종 변마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읽었던 글은 시간대별로 어떤 마구니가 활동하는지에 대해 자세히 쓰여있었다. 그 책에서 오전 10시는 악룡이 마구니로 활동하는 시간이라고 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내가 전생에 용이었다고 믿는 이유 중 하나다.


또한 그 시절 내가 살 수 있었던 것에 대해, 지장경을 보고 짐작해 본다. 나는 흰 양복 입은 저승사자와 검은 양복을 입은 저승사자를 동시에 보았다. 하늘이 보기에 나는 죽여야 할 이유도 있지만 살려야 할 이유도 있는 사람인 것이다.


글을 쓰며 삶을 돌아볼수록 매 순간 감사하지 않은 순간이 없다. 내가 알고 있던 것보다 나는 더 많이 신들에게 보호를 받았구나! 그 신들이 나를 살리기 위해 부처님께 이끌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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