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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화. 무의식 열리다

나는 전생에 용이었다고 믿는다

by 엄마쌤강민주

신이 내 몸을 떠나고 그 빈틈으로 무언가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동안 내가 알지 못했던, 아니 외면해 왔던 또 다른 세계. 바로 나의 무의식이었다.


무의식의 문은 이유 없이 열리지 않는다. 의식이 감당하지 못한 감정들, 끝내 눌러두기만 했던 기억들, 그리고 내가 외면해 온 진짜 마음들이 더는 참을 수 없을 때,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떠오른다.

사람들은 평소 누구나 ‘괜찮은 척’, ‘이성적인 척’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마음 깊은 곳엔 말하지 못한 슬픔이, 억누른 분노가, 잊었다고 믿었던 상처들이 자리하고 있다. 그 감정들은 때때로 우리 인생의 문턱에서 예고도 없이 얼굴을 내민다. 큰 스트레스, 충격적인 사건, 꿈이나 명상, 혹은 죽을 뻔했던 순간 같은 계기로 말이다.


무의식 세계는 무섭거나 이상한 것이 아니다. 그곳은 ‘나도 몰랐던 나’를 마주하게 하는, 어두우면서도 깊고 신비로운 방 같은 곳이다. 삶이 던지는 질문들, 혹은 영혼이 느끼는 갈증이 그 문을 열게 한다. 무의식이 열린다는 건, 결국 더 진실하게 살고 싶다는 내면의 소망이 작동했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무의식은 우리가 회피하거나 잊고 살던 것들을 다시 끌어올린다. 그래서 삶의 방향을 바꾸거나, 더 근원적인 ‘나’로 돌아가는 길을 비춰주기도 한다.


하지만 2010년의 나는 무의식이란 단어를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내 안의 그 깊은 문이 왜 열렸는지도 모른 채, 나는 그 세계를 온몸으로 마주해야 했다. 그 안엔 수없이 많은 귀신들과 “날 구해줘”라며 손을 내미는 두렵고 슬픈 존재들이 가득했다.


외부의 신보다 더 집요하고 집착적인 건, 내 안의 무의식 속 신들이었다. 그들은 수많은 얼굴로 다가와 나에게 자신을 따르라 유혹했다.


외부의 신에 시달릴 때는 내 상태에 대해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고 따라서 나를 함부로 대하거나 이용하려는 이들이 없었다. 그러나 신에게서 벗어난 이후, 부처님 덕분이라며 찬양하며 내 경험을 드러내기 시작했을 때. 오히려 나를 무시하거나 이용하려는 이들이 많았다. 이로 인해 나는 상처도 많이 받았다.

그럴수록 나는 더 절박하게 부처님께 의지했다. 죽기 살기로 불경을 외우고, 진언을 되뇌며 간절히 나를 다잡았다. 그러다 ‘금강경’을 만나고 제16장 ‘능정업장분’을 읽게 되었다. 그를 통해 이 모든 고통이 전생의 업을 녹이는 과정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 뒤로는 나에게 닥치는 일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운명처럼, 나의 길처럼.


누군가는 무의식의 문을 열고 그 안에서 천국을 본다고 했다. 하지만 나의 무의식은 왜 그토록 무섭고 처절했을까?


돌아보면, 나는 용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니, 거의 확신한다. 사람으로 태어나기 전의 의식. 그 용이 기억하는 세계는, 아름답지도, 평화롭지도 않았다. 그건 뜨겁고, 격렬하고, 감당하기 벅찬 고통의 기억이었다. 나에게 간절하게 구해달라 기도하는 이들과 그들을 구하지 못해서 아파하는 기억들이 뒤죽박죽 섞여 있었다.

물결 위로 해가 부서지듯 반짝이던 황금빛 비늘들. 어머니는 늘 말했다.

“네 태몽은 백마강에서 솟구치는 황금빛 용이었어.”

그 말은 마치 전설처럼 내 마음 깊숙이 새겨져 있었다. 어머니의 기억 속 백마강은 용의 황금빛으로 가득 찼고, 물결은 그 비늘을 비추며 찬란하게 물들었다고 했다.

전생에 낙화암에 몸을 던졌다는 나. 꽃잎처럼 떨어져 물속으로 사라졌던 생, 그리고 다시 솟구친 용. 나는 가끔 상상한다. ‘낙화암에서 떨어진 나의 영혼이 백마강 속에서 거대한 용이 되어 깨어났던 것은 아닐까’, 하고.

사람들은 흔히 말한다. 용은 상상의 동물이라고. 이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환영 같은 존재라고. 그러나 나는 안다.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상상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나는 용을 보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만난 적이 있다. 대부분은 꿈이었다. 하지만 몇몇은, 눈을 뜬 채 그 기운을 보았다고 했다. 그들의 눈빛엔 흔들림이 없었다. 입가에는 미동도 없는 확신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건 거짓이 아니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은 어머니다. 내 태몽이 용이었다는 이야기는 오래전부터 어머니께 들었다. 어머니는 그 후에도 용을 본 적이 있다고 했다.

어느 해 여름이었다. 남동생 가족과 함께 서대산으로 캠핑을 다녀온 어머니는 저녁 밥상을 차리며 문득 말했다.

“캠핑장에서 꿈을 꿨는데 말이야… 거대한 청룡이 회오리를 일으키며 서대산을 휘감고 돌더니, 휙, 하늘로 날아오르더라.”

말을 마친 어머니는 두 팔을 자신 쪽으로 감싸며 몸을 작게 웅크렸다. 입술이 떨리고, 눈동자엔 아직 그 광경이 남아 있는 듯했다.

“무서웠어… 그 청룡도, 그 회오리바람도… 너무 무서웠어.”


그 말을 들을 때 나는 어렴풋이 알았다. 어머니는 단지 꿈을 꾼 게 아니었다. 무엇인가를, 인간 세상이 아닌 다른 세상의 틈새를 잠깐 들여다본 것이다.


2018년, 베트남 푸꾸옥. 가족들과 호국사를 둘러보고 있을 때였다. 맑고 짙은 코발트빛 하늘 아래, 거대한 용 조각상이 하늘을 향해 몸을 틀고 있었다. 그 조각상 앞에 나는 한참을 멈춰 서 있었다. 그때 등 뒤로 발소리 하나 들리지 않게 다가온 어머니가 숨을 죽인 목소리, 평소와 다른 말투로 나에게 말했다.

“어젯밤 꿈에… 황금빛 거대한 용이 나타났는데… 하늘로 돌아갔어.”

나는 몸을 돌리지 못한 채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 순간, 내 안의 무언가가 사르르 녹아내리는 것을 느꼈다. 쪼개져 있던 내 영혼의 조각들이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하나로 합쳐지는 순간이었다. 해변의 습한 바람, 용의 기운처럼 퍼지는 어머니의 말, 그리고 그 말이 내 귓가에서 사라지는 동시에 나는 알았다. 내 전생의 업이, 이제 완전히 끝났다는 것을.


그러나 나중에, 어머니는 자신이 그런 말을 했다는 사실을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그런 일은 한 번이 아니었다.


2015년, 광수사. 금강불교대학 수업시간이었다. 나는 깊은 혼란 속에 있었다. 매일 밤 꿈은 나를 광수사로 데려가고, 눈을 떠도 그 세계가 내 곁에 남아 있는 듯했다. 내가 미친 걸까? 아니면, 진짜 무언가가 있는 걸까? 그 경계선 위에서 나는 매일을 헤맸다.


그날, 내 옆자리에 앉은 노보살이 조용히 나를 힐끗 보더니 입술만 열어 말했다.

“용은 진짜로 있어. 나도 본 적이 있어”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 말은, 마치 내

머릿속 깊은 곳을 들여다본 사람처럼 너무 정확하고 너무 갑작스러웠다. 그리고 너무 조용했다. 며칠 뒤, 나는 조심스레 그 이야기를 다시 꺼냈다. 하지만 노보살은 나를 멍하니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그 일을 기억하지 못했다.

“내가? 그런 말을 했다고?”


나는 생각한다. 어머니와 노보살, 그들은 그 순간만큼은 신의 목소리를 대신 전한 자들이었다고. 신은 때로는 어머니의 입을, 때로는 노보살의 숨결을 빌려 내게 가장 필요한 말을 나에게만 들리게 속삭인 것이라고.

나도 종종 꿈에서 용을 본 적이 있다. 그들은 대부분 내게 어떤 메시지를 전한다. 그러나 광수사에서 천도재 중 한번, 그리고 신중기도 중 한번. 그렇게 두 번, 나는 용을 현실에서 본 적이 있다. 그날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금강경 제16장 능정업장분 일부 발췌

‘또 수보리여, 선남자 선녀인이 이 경을 받아 지니고 독송하면서도 남에게 업신여김을 당하면, 이 사람은 전생의 죄업으로 마땅히 악도에 떨어질 것이로되, 금생에 업신여김을 받는 까닭으로 전생의 죄업이 곧 소멸되어 마땅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게 되느니라.’


#무의식 #전생 #용 #금강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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