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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강민주 시

내가 신이라면

by 엄마쌤강민주



내가 신이라면


– 해안 강민주 –


내가 신이라면

전쟁을 결단하는 그 앉음새에

붉은 손길을 먼저 대리라


지도 위 빈 공간마다

산산이 흩어진 팔

온기 대신 굳은살이 된 아이

침묵으로 굶주린 어미의 입술

그 고통을 그들의 뼈에 새기리라


내가 신이라면

살아남음이 죄가 되는

그 눈망울 속으로

그들을 끌어들여


바람이 남긴 먼지빛 풀잎 하나

흙 위에 흘린 작은 눈물조차

놓치지 않게 할 터이니


내가 신이라면

무자비의 도가니에서

찢긴 여인의 영혼 조각들이

하늘에 닿기 전

그들 곁에 먼저 머물게 하리라


누군가의 아들이고 남편인 병사

잘린 팔다리 속에서

지키지 못한 사랑에 울부짖을 때

그 울음, 그들의 심장에 먼저 스며들게 하리라


짐승이 되고도

짐승보다 더 차가워진 마음

인간이 인간을 저버린 찰나

그 한순간을

영겁의 벌처럼

그들의 심장 한가운데 머물게 하리라


그러나 나는 신이 아니기에

모든 죄와 고통은

끝내 스스로의 바다로 흘러

자기 안으로 되돌아온다는 걸 믿으리라


하늘의 시간 앞에

인간의 백 년은

바람이 스치는 찰나


그래서 내 말 한마디

눈빛 하나가

누군가의 마음에

서늘한 밤이 되진 않을까

늘 스스로를 묻고 또 묻으리라


흙 한 줌으로 돌아갈 때

내 숨결 하나

작은 꽃잎으로 피워

전쟁을 결단하는 그 자리에

떨리는 손길로 놓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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