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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으로의 압박 2

김희주는 자신의 현실을 투영할 수 있는 멕시코 화가인 Frida Kahlo의 그림들을 자주 따라 그렸다. 다음은 김희주가 16세에 자신의 일기장에 전사한 Frida의 부서진 기둥(The broken column, 1944)에 대한 메모이다.


사람들은 나를 초현실주의 작가라고 부르지만 나는 꿈을 그리지 않는다. 나는 자주 혼 자이기에 내가 가장 잘 아는 나의 현실을 그린다(프리다 칼로). 나는 그녀가 한 말을 온몸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것을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들은 프리다가 자신은 초현실주의 그 림을 그리지 않는다고 말한 의미를 이해할 수 있을까? 언젠가 튼튼해지면 그녀를 보러 멕 시코에 가보고 싶다. 


누구도 어린 김희주에게 그녀의 질병이나 건강상태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해주지 않 았기 때문에 그녀는 자신의 몸에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해 알지 못했고 계속 막연한 불안감을 가지고 지냈다. 완벽한 몸을 추구하는 사회에서 장애의 경험을 그리는 문화적 재현물이 없다는 것은 장애인의 타자화에 이바지하고, 장애에 대한 두려움을 커지 게 만든다(Wendell, 1996). 김희주는 학교에서 과학시간에 보았던 질병을 가지고 “비정상” 으로 구별되는 책 안의 사람들의 얼굴과 “거울 속에 비친 나의 모습”을 여러 번 비교하 기도 했다. 그녀는 거울을 보면서 그 사람들과 자신이 같은 모습이 아니라 다행이라고 생 각했다. 그리고 아기가 자신과 같은 질병을 가지고 태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해도 낙태를 선택하지는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어린 김희주는 질병을 가지고 살아가는 삶이 언제나 나쁜 것만은 아니고, 자신이 아이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더 잘 가르쳐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김희주는 수술로 인해 자신의 몸에 생긴 상처가 갑자기 생각나고 잊고 싶을 때면 다 른 세계로 가고 싶었기 때문에 책을 자주 읽었다. 하지만 많이 알려진 노트르담의 곱추 나 오페라의 유령은 아직까지 읽은 적이 없는데 “흉한” 모습이나 “비틀어진” 몸을 한 사 람을 보는 것이 그녀는 불편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녀는 서커스와 관련된 모든 이미지 를 싫어하는데, 그들의 평범하지 않은 몸의 움직임과 자세를 보는 것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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