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매는 시간도 소중해
빗방울이 잦아들 무렵, 우리 부부는 차 안에 있었다. 휴대폰에서 수시로 안전 문자가 날아왔다. 간밤에 물 폭탄이 쏟아지면서 곳곳이 침수되거나 산사태 피해가 발생했다는 보도가 이어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차를 몰고 나선 이유는 시골집에 혼자 남아있을 개가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30분쯤 갔을까. 회색 건물과 반듯한 도로가 뒤로 멀어져 갔다. 대신 구불한 국도변에 우거진 나무와 논밭이 모습을 드러냈다. 운전대를 잡은 남편 옆에서 나는 계속 창밖의 상황을 확인했다. 지대가 낮은 곳에는 이미 흙탕물이 찰랑거렸다. 얼마 전 모내기를 마치고 어린 모가 한창 뿌리내리고 있을 시기였건만, 폭우가 쏟아진 논은 강이나 다름없었다.
"아휴, 어떡해!"
비닐하우스 단지를 지날 때 안타까운 탄성이 흘러나왔다. 강가에 자리 잡은 논이었는데, 밤새 내린 비에 제방이 무너진 것 같았다. 주변으로 벙벙하게 물이 차올라 비닐하우스 꼭대기만 겨우 남아있었다. 저 옆에 주택가가 있었던가, 없었던가? 평소 자주 오가던 길인데도 왠지 낯설었다. 주민들 심정은 저 흙탕물보다 훨씬 더 검게 변해 있을텐데... 제발 그들이 무사히 대피했기를.
라디오에선 속보가 이어졌다. 무겁게 가라앉은 하늘만큼이나 마음에도 먹구름이 드리워졌다. 머릿 속에 물음표가 둥둥 떠다녔다. 이 날씨에 가는 게 맞는 걸까? 계속 가도 괜찮을까? 그나마 앞뒤로 차들이 꽤 많았다. 앞서가는 불빛들은 묘한 안도감을 주었다. 망망대해에서 등대를 만난 것처럼.
헌데 시골 마을로 진입하는 구간이 막혀 있었다. 도로가 통제되었다. 저지대에서 침수가 발생한 듯했다. 목적지까지 가려면 여기서 우회전해야 했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직진하는 수밖에.
길에 차들이 점점 불어났다. 알고 보니 통행량이 많은 게 아니었다. 통제 구간에 진입을 못하게 되자, 우리처럼 앞만 보고 달리는 차들이 늘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대체 어디까지 밀린 거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먼 곳까지 차량 행렬이 이어졌다. 안도감을 주던 불빛은 어느새 지루한 기다림이 되었다. 도로가 주차장이나 마찬가지였다. 역시 괜히 나온 건가, 뒤늦게 후회가 밀려왔지만 이미 늦었다. 설마 여기까지 물이 넘치진 않겠지? 불안한 마음이 수면 위로 스멀스멀 고개를 디밀었다. 문득 그날이 떠올랐다.
오래 전 어느 해 여름 초대형 태풍이 우리 지역을 강타했다. 어른들 말로는 밤새 불어난 강물에 다리가 끊어졌다고 했다. 무서운 일들은 왜 꼭 한밤중에 일어나는지.
당시 나는 초등학교 3학년인가 4학년이었다. 잠 속에서 얼핏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지나갔다. 눈 떠보니 할머니가 주섬주섬 옷을 챙겨주셨다. “어서 입어라, 비가 많이 와서 얼른 나가야 된다.” 하지만 자다 깨서 그랬는지, 불안해서 그랬는지 갑자기 오줌이 마려웠다. 잠시 화장실에 갔을 때 바깥에서 쩌렁쩌렁 고함소리가 들렸다.
“나야, 나야, 어디 있어, 나야!!!”
어둠 속에서 할아버지가 애타게 나를 찾고 있었다. 어린 손녀가 보이지 않자 놀란 할아버지는 마을 앞 하천까지 나가보셨다고 했다. 벌써 40년도 지난 일이지만, 그날 밤 할아버지의 다급한 외침이 여전히 귓전에 생생하다.
당시 한밤중에 어디론가 가야 한다는 사실이 무섭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든든했다. 나는 혼자가 아니구나, 할아버지가 나를 지켜주고 계시는구나. 할아버지가 먼 하늘로 가신 지금까지도 그 믿음에는 변함이 없다.
이튿날 마을을 삼켰던 물이 빠지고, 학교에 갔을 때 교실에는 빈자리가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강가에 살던 한 아이의 가족 중 누군가가 강물에 휩쓸려 사라졌다고 했다. 무거운 침묵이 가득한 교실에서 우리는 꾸역꾸역 슬픔을 삼켰다.
수십 년이 지났어도 그날의 장면이 어제 일처럼 선명하다. 단발머리에 배시시 웃는 모습이 예뻤던 그 아이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어디서 이 비를 보고 있을까.
우리는 짝이 된 적도 있었다. 하루는 미술 시간에 선생님이 나무를 그리라고 했다. 나는 나뭇가지가 갈라지면서 하늘로 뻗어가는 형상을 촘촘하게 표현했다. 한데 짝이 옆에서 슬쩍 곁눈질하며 내 나무를 따라 그리고 있었다. 그때부터 나는 몸을 반대편으로 휙 돌려버렸다. 한쪽 어깨로 도화지를 가린 채 나무를 완성해서 제출했다. 오래전 일이지만 그 나뭇가지가 따끔따끔 마음을 찌를 때가 있다.
"많이 힘들었지, 앞으론 짜증 내지 않도록 조심할게."
밀리는 차 안에서 남편이 한 말이었다. 옛 생각에 잠겨있던 나는 짐짓 놀라며 그를 바라보았다. 내가 어린 시절을 떠올리고 있을 때 그는 사흘 전으로 가있었다. 우리가 얼굴을 붉혔던 그날 밤으로.
사소한 말다툼이었다. 근데 남편이 버럭 했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나도 꽥 소리를 치고 말았다. 평소 같았으면 그가 화를 내더라도 참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날은 전부터 눌러 온 말들이 용수철처럼 확 튀어 올라왔다.
"대체 언제까지 그럴 거야? 아파서 예민해진 건 알겠다고! 그래도 같이 있는 가족도 좀 생각해야지!"
그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눈동자에 물기가 글썽한다고 생각한 순간, 그가 방문을 닫고 들어갔다.
“미안해”
다음날 아침 나는 노크하면서 사과했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무표정하게 나를 스쳐간 남편은 말없이 신발을 신고 나갔다. 퇴근해서도 식탁에 앉지 않았고, 방문도 열지 않았다. 마음의 문을 단단히 걸어 잠갔다.
그가 방문을 닫고 들어간 지 이틀째 되던 밤, 하늘에 구멍이 났다. 천둥번개를 동반한 폭우가 쏟아졌다. 그동안에도 식탁이나 거실, 또는 현관에서 우리는 서먹하게 스쳐 지나갈 뿐이었다. 그런데 어색한 집안 공기와는 별개로 시골집에 혼자 있을 개가 걱정되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키우던 개였다.
그때 베란다 밖을 한참 내다보던 남편이 차 키를 챙겼다. 못 이긴 척 나도 따라나섰다. 그리고 우린 길 위에 꼼짝없이 갇히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나도 미안해, 많이 서운했지?”
“와, 당신 소리치니까 엄청 무섭더라. 앞으론 안 덤빌게.”
팽팽했던 긴장이 한순간에 허물어졌다. 우리는 서로 킥킥거리면서 웃었다. 나는 손바닥으로 그의 등을 문질렀다. 딱딱하게 뭉친 어깨에 손이 닿았다. 굳어졌던 마음도 같이 풀어지길 바라면서 어깨를 살살 어루만졌다. 남편은 목소리만 컸지, 속이 여린 사람이었다. 그 사정을 모르지 않으면서, 쓰린 말로 상처를 준 것이 내내 미안했다. 나를 혼내주고 싶었다.
남편이 아픈 이후로 나는 되도록 부딪히지 않으려 노력했다. 어쨌든 환자라는 생각에 속상한 일이 있어도 부정적인 감정을 속으로 삼켰다. 차마 드러낼 수 없었다. 하지만 감정은 사라지는 게 아니라 쌓이는 것이었다.
뒤엉켜있던 오만가지 감정들이 임계치에 다다른 날, 마음의 둑이 무너졌다. 엎질러진 물이었다. 차라리 비워냈다고 생각하자. 우리는 더 투명해지고 단단해졌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엇나간 마음의 방향을 되돌렸다.
"여기서 돌아가면 돼!"
앞차를 따라 거북이걸음을 하던 끝에 겨우 다시 돌아가는 길을 만났다. 집을 나선 지 거의 3시간 만이었다.
그 시간 동안 차 안에서 불안과 슬픔, 미안함과 후회, 애틋함과 안도... 감정의 터널이 제법 길었다. 그러나 잘못 든 길은 있어도 잘못된 감정은 없었다. 며칠간 길을 잃고 헤매던 감정들이 돌고 돌아 제 자리를 찾아가는 느낌이었다. 덕분에 우린 서로에게 다가가는 새로운 길을 하나 더 알게 되었다.
어느덧 조금씩 먹구름이 걷히고 있었다. 더 이상 비 때문에 우는 일이 없기를, 하늘 아래 모두가 무사하고 안녕하기를 바라며 집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