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훑어보기는 드라마 전반을 훑어보는 편입니다.
* 스포일러 주의
최근 드라마의 트렌드는 민주주의나 사회 시스템에 대한 의심과 회의다. 그래서 그 내용들이 대부분 불법이나 편법을 가리지 않고 즉각적이고 통쾌한 응징을 가하는 식으로 이루어져있다. 이 것은 사회 시스템의 맹점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이 드라마들은 모두 지금 이 시스템이 잘못되었다고 주장한다. 느리고 답답하고 정의의 성취가 어려운 기존의 시스템보다는 당장의 속시원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최근 대중문화 전반에 흐르는 통쾌한 카타르시스, 그러니까 소위 사이다를 만족시켜준다는 말이다.
이것들이 대부분 사적 처벌이라면 <악마판사>는 공적인 영역으로 끌고 오는 얘기다. 재판을 라이브 버라이어티 쇼처럼 방송하면서 인민재판을 통해 정의를 구현하겠다는 것이다. 원래 이 재판의 의도는 재판을 쇼처럼 만들어서 대중들의 눈을 현혹하고 자신들이 원하는 여론대로
이 과정에서 과거의 악연이이었던 정재계의 인사들에게 복수도 하고 한국사회에서 문제점으로 지목받는 것들을 뿌리 뽑으려고 한다. 판사가 주도하는 혁명에 대한 이야기라고 하면 좀 더 직관적으로 이해가 쉬울 것 같다.
가장 최근에 히트했던 <빈센조>와 결이 비슷한 드라마다. <빈센조>는 학연지연으로 엮인 느슨한 사법체계와 그로 인한 불공정한 처벌을 빈센조가 ‘공정’하게 만드는 드라마였다. 하지만 이들이 그려내는 사회상은 사회 엘리트층과 재벌에 한정되어있었다면 <악마판사>는 좀 더 큰 그림을 그린다. 엘리트층과 재벌 뿐만 아니라 디스토피아적인 사회의 이곳 저곳을 보여주면서 저변을 넓혔다. 뿐만 아니라 사이다로 끝내기보다는 고민의 여지를 남긴다. 드라마 소개에 있는 작가의 말처럼 일종의 사고 실험처럼 느껴지는 부분이기도 하다.
<악마판사>가 남기는 가장 큰 고민은 '손쉬운 정의란 존재하는가'이다. 사회시스템을 불신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손으로 자신의 입맛에 맞는 정의를 만들 수 있게 해주었을 때 정의는 이룩될까? 민주주의에서 다수결이 절대정의라지만 여기에 오류가능성은 없나? 등의 의문을 남긴다. 극 중 시범재판은 이런 의문들을 사실상 정면으로 던지는 요소다. 드라마에서 시범재판에 참여하는 이들 뿐만 아니라 드라마 밖에서 지켜보는 시청자들조차 강요한의 막후조작에 속아넘어가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드라마는 잠시 템포를 멈추고 시청자들에게 고민할 시간을 줘야 한다. 가장 큰 의문을 던졌고 시청자들조차 깜빡 속아넘어갔으니 스스로 돌아볼 시간이 있어야 하지 않겠나. 근데 작가는 땡처리하듯 시청자들에게 고민할 것들을 계속해서 내보낸다. 그러니까 마지막 즈음 가서는 누구 하나 매달아놓고 죽인다고 해결될 수준이 아니게 된다. 듣는 사람은 신경도 안쓰고 자기 하고 싶은 말만 하는 사람을 보는 느낌이다.
그래서 드라마가 후반부로 갈수록 빌드업이 엉성해지고 뻔해졌다. 쉬면서 등장인물들간의 갈등을 손보면서 관계를 발전시키고 좀 더 깊은 이야기까지 나아가야 했다. 캐릭터들이 깊은 내면을 갖고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파편화된 이미지로 이뤄진 입체성으로 움직이다보니 캐릭터들이 썩 매력적이지 않게 느껴졌다. 이 중에서 예외는 강요한 뿐이다. 강요한은 이 드라마를 시종일관 이끄는 캐릭터다보니 굉장히 깊고 다층적으로 그려졌다. 이렇게 강요한만 유독 두드러지다보니 다른 캐릭터들의 평면성이 더 부각되기도 한다. 다른 캐릭터들도 더 심층적으로 그려줬어야 했다(이 문제는 다음주에 자세하게 다뤄보자).
결론을 내리자. 작가가 내세운 캐치프레이즈에 비해 역량이 너무 부족했다. 무거운 메세지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잘 모른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야기의 완급을 조절하는 능력도 부족하고 캐릭터들을 매력적이고 입체적으로 만드는 것도 부족했다. 이야기의 매력포인트는 분명한데 그걸 잘 살려주는 방법론은 그에 미쳤다. 여러모로 아쉬운 드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