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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구석평론가 Sep 12. 2022

아케인 리뷰

* 인게임 챔피언의 특징을 언급할수도 있지만 인게임 이스터에그는 다루지 않음

* 근데 쓰는 입장도 롤 세계관 모름(진짜모름). 하도 갈아엎어서 관심도 안가짐.


 리그오브레전드의 유저들은 스토리에 흥미가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너무 많이 갈아엎었기 때문이다. 출시 당시의 스토리 설정은 챔피언들이 왜 '소환사의 협곡(게임 맵)'에 모여서 싸워야 하는지가 아주 명확했다. 하지만 새로운 챔피언들이 추가되는 과정에서 스토리라인이 주먹구구식으로 수정됐다. 마치 난개발된 도시의 교통 문제처럼 문제가 끊이지 않았다. 설정 충돌 등의 문제가 발생하면서 이 것을 수정하는 시도를 했으나 큰 그림이 없으니 마찬가지였다. 일례로 특정 챔피언은 본인의 설정만 네번씩 바뀌는 불상사가 생기기도 했다.


 라이엇은 이것을 고치기 위해서 크게 네번의 시도를 했다. 앞선 세번의 시도들은 모두 실패했고 네번째 시도에는 리그오브레전드 유니버스를 설립하고 몇년의 기간을 들여 대대적으로 뜯어 고쳤다. 이 때부터는 스토리에 통일성도 생기고 훨씬 완성도도 생겼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리고 '아케인'은 이렇게 정리된 스토리 라인을 기반으로 라이엇에서 처음으로 도전하는 장편 애니메이션이다. 룬테라 대륙의 도시인 필트오버와 그 지하도시인 자운을 배경으로 인게임 챔피언인 바이, 징크스, 케이틀린, 제이스의 이야기를 진행한다. 


'아케인'의 이야기는 크게 세 갈래로 나눠진다. 마법공학 기술을 중심으로 한 제이스-빅토르의 이야기, 케이틀린과 바이를 중심으로 한 수사 이야기, 그리고 실코-징크스 vs 케이틀린-바이를 중심으로 한 자운의 이야기다. 이 세 가지 이야기들은 각각 기술과 연관된 정치, 계급, 가족에 대해 다루기도 한다. 이렇게 다층적인 이야기 구성을 통해 챔피언들의 이야기 뿐만 아니라 필트오버와 자운의 세계관을 성공적으로 보여주었다. 이로 인해 흥미를 이끌어내는데 성공한듯 하다.


제이스의 이야기는 테크노크라시로 요약 가능하다. 마법공학을 연구하던 제이스는 실패만을 거듭한다. 연구를 끝내려는 순간 빅토르라는 조력자를 만나서 결국 마법공학에 성공하면서 유명세를 얻고 필트오버의 정치체계인 과두정 속의 의원이 된다. 그리고 필트오버 사회를 이끄는 과정에서 겪는 과학자와 권력자로서의 고민을 보여준다. 과학자로 성공했으나 정치인이 되면서 많은 도전을 받게 되고 시리즈 내내 실패만을 거듭한다.


케이틀린의 이야기는 계급에 대한 이야기다. 필트오버 의원의 딸인 케이틀린은 부모님의 후광 때문에 능력이 과소평가된다. 케이틀린은 이 것이 틀렸음을 증명하기 위해서 자체적으로 마법공학을 노리는 테러집단을 조사한다. 그리고 바이를 만나 지하도시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게 된다. 이 과정에서 케이틀린이 얼마나 새장 속 세상에서 살았는지 보여준다. 이로 인해 시리즈 내내 제대로 된 활약 없이 상황에 휘둘리며 제대로 된 판단을 못하는 모습만 보여준다.


바이-징크스의 이야기는 아케인의 메인스토리이자 가족에 대한 이야기다. 자운에서 태어난 바이는 필트오버의 부유함과 자운의 가난함이 불공정하다고 여기는 캐릭터다. 그래서 친구들과 함께 필트오버에 올라가 곧잘 도둑질했다는 설정이다. 극에서는 도둑질을 하다가 폭발이 일어나면서 필트오버와 자운의 정치적 갈등을 만들어낸다. 자운의 리더이자 아버지인 벤더가 이 갈등을 해소하려는 과정에서 바이와 징크스는 아버지와 자신의 친구들을 모두 잃게 되고 바이와 징크스도 헤어지게 된다. 바이는 감옥으로 끌려갔고 징크스는 벤더의 대적자인 실코의 손에 길러진다.


징크스는 정신장애가 있는 캐릭터다. 그래서 보살핌이 필요했는데 실코는 이런 부분을 케어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바이가 케이틀린과 함께 징크스를 찾아냈을때는 조현병으로 발전되어 있었다. 이렇게 심각한 정신장애를 앓던 징크스는 바이와 실코 사이에서 갈등하다 갑자기 찾아온 발작으로 아버지처럼 따르던 실코를 죽이면서 완벽한 빌런으로 거듭난다.


이 시리즈의 매력은 이런 이야기들이 교차되면서 만들어내는 입체성에 있다. 초반 3화까지는 그냥 평범한 미국 드라마의 시나리오를 따른다. 기존 세대의 가르침을 거부하는 신세대, 그리고 그 신세대가 치는 사고들로 파괴되는 기존 질서는 생각보다 뻔한 이야기다. 하지만 4화에 접어들면서 등장인물들이 3화까지 보여줬던 각자의 세계관과 가치관을 아주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특히, 실코를 공격하러 간 바이와 제이스가 갈라서는 장면은 이 서사의 장점을 아주 잘 보여준다. 제이스는 실수로 무고한 시민을 죽인 것에 죄책감을 가지며 실코가 배포하는 시머라는 약물에 취한 대다수의 자운인들을 외면한다. 바이는 감정적인 편이라 제이스를 설득하지 못하고 본격적인 공격태세 직전에 회군한다. 정치인으로서의 제이스와 공학자의 제이스를 대비해서 보여주고, 필트오버의 문제가 아니므로 하층민(자운인)들에 타협적인 모습까지 보여주면서 제이스라는 인물의 입체성을 잘 조각해낸다.


서사 뿐만 아니라 연출도 인상적인 것들이 많다. 후반부 징크스와 에코의 일대일 무력대결에서 유년기의 모습이 교차되는 모습이 대표적이다. 그 밖에도 바이와 실코를 두고 갈등하던 징크스의 조현병 발작을 표현하는 방식 등은 눈을 잡아끄는 매력이 있는 장면이었다. 이런 자체 연출 말고도 인게임 유저들을 위한 장치들도 배치되었다. 제이스의 무기변환 효과음과 미니맵을 연상시키는 천장 구도 등은 롤을 플레이 해본 유저들만 알 수 있는 이스터에그다. 이 시리즈를 완성하는데 6년이 걸렸는데 그 동안 얼마나 노력했을지 엿보이는 연출들이었다.


이 시리즈를 통해 라이엇은 스토리 명가로 올라설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애니메이션 전체적으로 완성도가 무척 높기 때문이다. 특히 캐릭터들이 이합집산하면서 보여주는 욕망과 필요를 표현하는 방식은 근래 본 어떤 컨텐츠보다 인상적이었다. 이 높은 완성도는 유저들의 기대를 충족시키에 부족함이 없었다. 뿐만 아니라 게임을 하지 않는 이들에게도 호평을 받으며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그래서 시즌2도 런칭되었다.


이야기를 쓸 때 중요한 것은 기본구조 구축이라고 한다. 캐릭터와 세계관을 잘 구축해놓으면 재미가 없을 수 없다는 얘기다. 이런 면에서 아케인은 분명히 기본구조가 잘 구축되어있는 웰메이드 애니메이션이다. 심지어 리그 오브 레전드를 한번도 플레이 해본 적 없는 유저가 봐도 재미있게 잘 볼 수 있게 만들었다. 넷플릭스를 구독하고 있다면 이 작품도 놓치지 말아야 할 명작이라고 생각한다. 츄라이츄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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