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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구석평론가 Sep 12. 2022

모범택시 리뷰

- 피해자면 뭐든 괜찮아요?


최근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들은 공통점이 있다. 바로 법이 정의를 바로 세우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다. '빈센조'가 그렇고 '모범택시'가 그렇다. 두 드라마가 법을 보는 시선에 온도차가 있기 때문에 과정에도 차이가 있긴 하지만 결론은 같다. 정의를 바로세우기엔 법으론 부족하다는 것이다.


'모범택시'는 그것을 지적하고자 범죄피해자의 모습을 좀 더 부각시킨다. 피해자들의 연약함은 서사를 덧붙여서 설득력을 더한다. 이들이 어떤 고통에 처해있고 사회적으로 어떻게 소외 받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반면에 가해자는 그 악함을 단면적으로 보여주되 서사를 부여하지 않는다. 이것은 의도적으로 보인다. 특히 전국범죄피해자지원연합회의 지원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면 좀 더 구체적으로 느껴질 것이다.


이 드라마의 성공에는 이런 이유가 숨겨져 있다. 피해자의 입장은 공감할 수 있지만 가해자의 입장은 멀찍이 떨어져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드라마의 장점도 단점도 여기서 비롯된다. 장점은 피해자 입장에서 사건을 대하기 때문에 '복수대행서비스 무지개운수'의 복수대행에 좀 더 몰입할 수 있다. 이 것은 명확한 장점이다. 반면에 그렇기 때문에 서사가 입체적이지 않고 단순 사이다 수준에 그친다는 단점이 있다. 특정 시점을 택했을때의 일장일단을 잘 보여주는 케이스다.


그래서인지 제작진은 드라마를 빠른 속도로 진행시킨다. 피해자의 현재 모습과 사건의 전사(前事) 정도만 보여준다. 그리고나서 무지개운수의 잠입/복수 과정을 유쾌하고 통쾌하게 그린다. 하나의 사건에 절대로 여운을 두지 않는다. 진지해질만하면 웃기고 웃다가 정신차려보면 통쾌하게 끝나있다. 그리고 이런 진행이 중반까지는 분명히 잘 먹혔다.


이런 범죄오락물들은 악을 악으로 갚는다는 설정 때문에 후반부에 이 설정을 어떻게 다뤄야할지 헤메곤 한다. 그대로 밀어붙이면 피해자라는 점에 호소해서 범죄를 옹호하는 것이 된다. 반대로 진지하게 정의에 대해 고민하면 초중반의 오락적인 면에 매력을 느낀 시청자들이 쉽게 떨어져나가게 된다. 하지만 내적 일관성을 위해서 둘 중 하나를 선택해서 밀어붙이는 결단이 필요하다. 어느 하나도 선택하지 못하면 일관성도 시청자들의 기대도 모두 잃는 애매한 작품이 된다.


 모범택시도 13화에 이르러서 이 선택지 앞에 서게 된다. 그리고 복수대행서비스 무지개운수가 복수라는 이름으로 자행한 범죄자들에 대한 폭행/납치/감금이 범죄인 것을 인정한다. 하지만 복수극을 기대하던 시청자들이 이 것을 납득하지 못하고 강력한 반발을 하게 된다. 이 때부터 드라마는 시청자들의 눈치를 보면서 표류한다. 범죄인 것은 맞지만 이들의 행위가 정의인 것도 포기하지 못하는, 이도 저도 아닌 상태가 된 것이다.


 그래서 이 드라마는 하나의 결단을 내린다. 감성팔이를 하는 것이다. 김도기의 트라우마로 남은 어머니의 죽음을 다시 끌고 온다. 그래서 김도기가 알고 있는 범인은 범인이 아니고 사실은 진짜 범인이 따로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복수에 대한 원동력을 다시 만들고 무지개운수를 다시 시작하는 결말로 이끈다. 사실상 '피해자는 뭐든지 해도 된다'는 식의 결론을 맺게 된 것이다.


 이렇다보니 후반부에 이르러서는 드라마가 굉장히 헤이해진다는 인상을 받는다. 작가를 교체해가면서 무지개운수의 행동에 대한 고민을 진지하게 그리려고 했던 감독의 의도도 실패했다. 뿐만 아니라 초중반부에 시청자들을 이끌었던 재미도 사라졌다. 이 드라마를 끝까지 봐야할 원동력도 드라마가 보여줘야 할 설득력도 사라진 것이다.


 결국 모범택시는 범죄오락물들이 쉽게 빠지는 지점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이 드라마가 남긴 것은 '피해자면 뭐든 해도 괜찮은거 아냐?' 정도의 수준이고 법의 각성에 대한 호소도, 정의에 대한 달성도 실패했다. 이건 드라마 외적으로 몇분 남짓의 다큐멘터리를 추가로 붙인다고 해결되는 이야기가 아니었음에도 이렇게 마무리가 됐다. 아쉬운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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