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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구석평론가 Sep 12. 2022

 어느날 우리집 현관으로 멸망이 들어왔다리뷰

 최근 우리나라 로맨스 판타지 드라마들을 보면 도깨비 전과 후로 나뉜다. 도깨비 전의 드라마는 초월적인 주인공과 평범한 주인공 둘 사이의 관계가 중심이 되면서 코미디를 포인트로 얹는 구조였다. 재벌을 만난 신데렐라 스토리가 초월자로 바뀐 것이다. 도깨비 이후의 드라마들은 기존의 두 주인공 사이에 신을 추가하는 변화가 생겼다. 이로 인해 인물간의 구도와 갈등이 복잡해지고 사랑에 대한 좀 더 깊은 이야기가 가능해졌다. <별에서 온 그대>와 <도깨비>를 비교해보면 좀 더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요즘 드라마에선 신의 역할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신은 이 드라마가 가는 방향을 알려주는 일종의 이정표다. <도깨비>에서 신은 본인을 가리켜 '운명으로 질문하는 자'라고 말한다. 그래서 <도깨비>는 죽음과 사랑이라는 두 선택지 아래에서 갈등하고 고민하는 김신을 중점적으로 그린다. 김신은 지은탁을 살리기 위해 죽음을 택하지만 종국에는 죽음마저도 극복하며 사랑까지 쟁취해낸다. 김신은 드라마 내내 신을 미워하며 반목했기 때문에 그 투쟁의 끝에선 죽음을 극복하는, 나름대로 감동적인 이야기를 완성한 것이다.


 이 장르에서 신과 죽음이 빠지지 않는 이유도 여기서 기인한다. 숙명적인 상황을 조성하기 편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초월적인 존재의 주인공이더라도 죽음은 피할 수 없는 명제다. 이 피할 수 없는 명제 아래서 신은 죽음과 주인공 사이에서 상황을 조율하며 자신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이야기를 이끈다. <도깨비>에서는 죽음과 신은 김신이 극복해야 할 대상이었다. <호텔 델루나>에서는 죽음은 목표였고 신은 장만월을 죽음으로 인도하는 인도자였다. 이런 관계들이 극의 분위기와 흐름을 주도하는게 이 드라마 장르의 핵심이다.


 <어느날 우리 주집 현관으로 멸망이 들어왔다>는 이 장르의 원칙을 어겨서 실패한 드라마다. 신이 존재하고 역할을 하지만 가리키는 방향이 없다. 다르게 말하면 이야기에서 말하고 싶은 메세지가 없다는 것이다. 도깨비는 죽음도 이겨내는 사랑을 말했고 호텔 델루나는 사랑을 위해선 자기자신을 사랑할줄 알아야 한다는 메세지를 던지며 명작으로 자리잡았다. 근데 <현관>은 아무것도 없다. 탁동경(박보영)과 멸망(서인국)이 사랑하고 신이 그들을 축복하는 것에서 끝난다. 신이 이들을 특별히 사랑하고 축복하는 이유조차도 잘 말해주지 않는다. 인생은 운빨망겜이라는 교훈을 알려주고 싶은걸까?


 신이 방향을 가리키지 않으니까 죽음도 의미가 없다. 죽음이 조금씩 가까워질수록 깊어지는 주인공들의 감정이 어떤 방향을 향해 가면서 극적으로 변해야 한다. 하지만 방향이 없으니 감정적으로 붕뜨면서 몰입하지 못하게 된다. 그렇다보니 갈수록 서사의 텐션이 떨어진다. 신은 방관하고 탁동경은 자신의 죽음과 멸망의 죽음을 저울질한다. 하지만 탁동경이 스스로 죽음을 택할때까지 멸망이 그냥 지켜볼까? 이런 전개 안에서는 멸망이 죽을거라는건 기정사실이다. 그렇다보니 뻔하고 진부한 드라마가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그러고나서 마지막회 쯤 신의 사랑으로 멸망이 인간으로 돌아온다. 감동적인가? 하지만 앞서 말했듯 이유가 없는 신의 사랑이기 때문에 감동적이지 않다. 이유가 있고 신과 멸망 사이의 관계와 서사를 알아야 몰입할 여지가 있는데 그런 것이 없으니까 몰입도 없다. 심지어 멸망이 인간이 되면서 생길만한 개연성의 문제도 신이 모두 해결해주는데 할말을 잃게 된다. 근래 본 드라마 중에서 가장 최악의 데우스 엑스 마키나였다.


최근 유행하는 드라마의 구조들을 잘 따왔지만 구조만 따오고 실속은 못챙긴 드라마다. 이런 드라마에선 신의 존재는 아주 중요하고 이야기의 깊이를 더해주는 존재인데 이런 것을 너무 놓쳐버렸다는 느낌이다. 끝에서는 신의 존재를 도구적으로 활용하면서 자기 편할대로 끼워맞추는 것까지 그냥 최악이라고 밖에 할 수 없는 드라마였다. 편의주의적으로 극의 요소들을 다루는게 너무 웹소설 같았다. 드라마는 드라마고 웹소설은 웹소설이다. 두 가지는 완전히 다른데 너무 쉽게 접근했다는 인상을 받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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