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 잘하지

by 아끼똥



작년에 지인이 책을 낸다며 피드백을 부탁했다. 뜻밖이었다. 왜 하필 나일까? 돌아온 대답은 간단했다. "내 주변에 책 제일 많이 읽는 사람이 너잖아." 기분이 묘했다. 책을 많이 읽는다고 꼭 좋은 피드백을 줄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일단 원고를 받아들었다.


글은 다양했고, 주제는 넓었다. 그런데 어디를 어떻게 고쳐야 할지 눈으로 스치기만 해도 감이 왔다. 문장이 자꾸 흐려지고, 감정은 뭉개진 채로 남아 있는 느낌. 읽는 내내 머릿속엔 "왜?"라는 물음표가 떠나질 않았다.

그리고 알았다. 직접적으로 쓰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것. 말을 하되, 끝까지 하지는 않는 문장. 전달보다는 회피에 가까운 흐름. 그건 의외로 쉽게 보였다.


피하려는 흔적이 더 선명하게 느껴진다. 어디까지 이야기할지, 무엇은 감출지. 그 마음은 오히려 글 속에서 더 진하게 드러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내 피드백을 그는 잘 듣고, 잘 반영해나갔다. 그 모습을 보면서 문득 나 자신이 떠올랐다. 나는 글을 쓴다고 말만 했지, 막상 쓰지 않았다. 누군가의 글에 물음표를 던지며, 내 글은 하나도 쓰지 않은 채.


조금 웃겼다. 글을 써본 적도 없는 내가 지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의 글은 자신을 마주하는 과정이었고, 그 모습을 지켜보는 일은 내 생각을 자연스럽게 꺼낼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줬다. 충분한 자극이 되었다.



이왕이면 나도 써보자. 어설퍼도, 꾸준히. 글을 쓰는 경험도, 어쩌면 나에게 온 하나의 기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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