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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선배 Aug 14. 2019

바쿠 석유 산업과 노벨 가문

[코카서스 3국 여행기]

아제르바이잔 수도 바쿠의 랜드마크 프레임 타워. 바쿠 시내는 석유 자본을 바탕으로 특색 있는 건축물들이 즐비하다. 제2의 두바이를 꿈꾸는 도시이다.ⓒ 허명옥


과거 여행은 떠남을 통해 일상과의 단절이 가능했다. 대신 낯선 곳과의 새로운 만남이 있었다. 그러나 요즘은 스마트폰 때문에 낯선 여행지에서도 익숙한 삶의 공간을 벗어날 수 없다.
 
코카서스라는 생소한 지역을 여행하면서도 일본의 경제보복을 둘러싼 뉴스에 쏠린 관심을 거두기는 힘들었다. 과연 일본은 공언한 대로 반도체 핵심소재에 대한 화이트리스트 배제를 단행할 것인지? 아닌지? 자꾸만 뉴스를 클릭하게 만들어 여행에 집중하기 어려웠다.
 
일행들과도 한일 갈등을 둘러싼 해법에 대해 자꾸 토론할 수밖에 없었고, 때로 견해 차이로 언성이 높아지기도 했다. 그렇게 요즘은 통신 기술의 발달 때문에 더 이상 공간의 단절 없이 여행과 일상이 뒤범벅이다.
 
요즘 한일갈등 국면에서 우리나라의 아킬레스건 '기술종속'이 튀어나왔고, 결국은 '기초과학'에 대한 그동안의 투자 부족에 대한 뒤늦은 자성이 쏟아지고 있다.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바로 한국과 일본의 노벨상 수상 현황이다. 우리나라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2000년에 수상한 것이 유일무이한 기록이다.
 
반면 2018년까지 일본은 물리학상 9명, 화학상 7명, 생리학・의학상 5명 등 기초과학 분야에서만 21명이 노벨상을 수상했다. 이 외에도 문학상 2명, 평화상 1명 등 총 24명의 수상자를 배출했다.
 
우리는 흔히 노벨상 하면 노벨이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해서 번 돈으로 기금이 조성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아제르바이잔 바쿠를 여행하면서 뜻밖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알프레드 노벨은 다이너마이트 발명을 통해 번 돈과 형들의 바쿠 석유사업에 투자하여 번 돈 등으로 노벨상을 제정한다.ⓒ 나무 위키


"노벨은 다이너마이트를 팔아서 번 돈보다 석유 회사에 투자해서 번 돈이 더 많습니다. 결국 노벨상 기금도 다이너마이트보다는 바쿠의 석유에서 나왔다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아제르바이잔의 수도 바쿠도 이번 코카서스 여행을 통해 처음 접하는 도시였는데, 석유는 뭐고? 노벨과는 또 무슨 관련이 있다는 말인지? 참 여행이라는 것은 이처럼 새로운 지식과의 만남을 주선해주기도 한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노벨은 '알프레드 노벨'이다. 그에게는 형이 둘 있었다. 큰 형 '로베르트 노벨'은 본래 총기 제작자였다. 그는 소총 개머리판에 쓸 목재를 구하기 위해 바쿠에 방문했다가, 석유 회사를 견학한 것이 계기가 되어 석유 사업가로 변신한다. 얼마 후 둘째인 '루드비히 노벨'까지 끌어들여 노벨 형제는 원유를 운반하는 파이프라인과 유조선을 처음 만들어 세계 석유 시장의 신데렐라로 떠오른다.
        

아제르바이잔 곳곳에는 지금도 석유 시추 작업이 활발하다.ⓒ 허명옥


이 석유 사업에 '알프레드 노벨'이 투자해서 막대한 배당금을 챙겼고, 그 배당금이 다이너마이트 사업 자금과 합쳐져서 훗날 노벨상의 종잣돈이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그래서 바쿠 시내에는 '노벨 형제의 집'이 관광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바쿠 시내에는 노벨 형제가 살던 집이 그대로 보존되어 관광객들을 맞고 있다. ⓒ 노벨 형제의 집



그렇다면 노벨 형제의 석유 사업은 어떻게 되었을까? 왜 노벨의 다이너마이트만큼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았을까? 거기에는 자본가들의 치열한 암투와 권력가들과의 검은 커넥션 등 복잡한 뒷이야기가 있다.
 
초기 석유 시장은 미국의 록펠러 스탠더드 오일이 장악하고 있었다. 그런데 노벨 형제가 세운 브라노벨이 세계 최초의 유조선 발명을 앞세워 록펠러를 앞서는 상황이 만들어진다.
 
바쿠는 한 때 전 세계 석유 소비량의 절반가량을 담당할 정도로 급성장한다. 이러한 성장을 못마땅하게 여긴 록펠러는 또 다른 은행 자본 로스차일드와 결탁하여 노벨 형제의 브라노벨을 퇴출시킬 계획을 실행한다. 여기에는 영, 미세력과 러시아 세력의 대결이라는 국제 질서도 한몫했다.
 
이처럼 자본과 정치가 뒤얽혀 각자의 이익을 위해 싸우는 과정에서 한 기업의 흥망성쇠가 판가름 나는 것이다.
 
또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브라노벨 퇴출 과정에 록펠러가 손을 잡은 것이 바로 러시아 혁명의 주역인 트로츠키와 레닌이라는 점이다. 구 러시아 제국을 무너뜨려야 한다는 점에서 자본가도 공산주의자도 공통의 이해가 있었기에 손을 잡은 것이다.
 
자본가들의 지원을 받은 트로츠키와 레닌은 볼셰비키 혁명을 성공으로 이끌고, 그 대가로 바쿠를 공격, 브라노벨의 유전을 파괴함으로 록펠러 가문이 석유 시장을 독점할 수 있게 해 준다.

이번 한일 간의 갈등을 계기로 기술종속에서 벗어나기 위해 기초과학에 투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사실 그러한 의견은 오래전부터 늘 있어왔다. 현실의 이익이 다급하다 보니 늘 뒷전으로 밀려서 오늘날에 이른 것이다. 과연 이번에는 예전과 다를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그런데 요즘 한일 간의 갈등이 과연 단지 강제동원 노동자들에 대한 배상권 문제가 전부일까? 한일 민족 간의 해묵은 감정싸움이 중요한 이유일까? 아베로 대표되는 일본 극우 세력들의 정치적 이해 때문 만일까? 아니면 경제 패권을 둘러싼 자본가들의 갈등이 도사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가 여행을 떠나는 것은 낯선 곳에서 자신을 돌아보기 위함이다.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것은 역사가 단지 과거의 일이 아닌 현재의 원인이며, 역사는 다른 얼굴의 오늘이기 때문이다.
 
결국 정치권력, 자본가들의 이익 다툼의 국면에서 일반 시민들은 어떻게 하는 것이 자신들의 평화와 안전을 지키는 것일까? 꼭두각시처럼 놀아나다가 늘 민중들이 희생당하는 불행한 역사는 이제 그만두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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