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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선배 Feb 02. 2021

어떻게 부는 대물림 되는가?

"훌륭한 사람이 되려면 학원을 많이 다녀야 한단다."

초등 3학년 올라가는 친구들과 첫 만남을 갖는 시간..서로 소개하기를 진행했다.


각자 '나'에 대해 1분 동안 자유롭게 이야기하고, 친구들이 무엇이든 자유롭게 질문하고, 대답하고 싶은만큼 대답하는 방식이다.


한 아이가 자기 소개를 마쳤다. 난 그 아이에게 질문했다.


"최근 가장 행복했던 일 또는 스트레스 받는 일 있으면 말해주세요."


잠시 머뭇거리던 아이는 대답했다.


"숙제가 너무 많아서 힘들어요."


다른 아이가 물었다.


"왜 그렇게 숙제가 많나요?"


아이는 다시 대답했다.


"학원을 많이 다녀요."


아까 질문했던 아이는 추가 질문을 했다.


"왜 학원을 많이 다니나요?"


아이는 결연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빠가 말씀하셨어요. 훌륭한 사람이 되려면 학원을 많이 다녀야 한단다."


그 말에 나는 의아했고, 거기 모인 아이들은 다 수긍하는 표정이었다.


그 소개한 아이 말로는 아빠가 의사라고 했다.


그날 수업 끝나고 나는 아이들에게 숙제를 냈다. 아주 중요한 숙제이니 꼭 해야 하고, 못해오면 아주 혼구멍을 내겠다고 겁박을 했다. 

아이들에게 내가 낸 숙제는 "잘 놀기"였다.

긴장했던 아이들 얼굴 표정이 환해졌다.


하지만 난 안다. 나 역시 이제 초등 3학년 되는 아이 어깨에 '독서교실' 숙제를 얹어줄 것이라는 점을....... 그 아이 어깨는 더 처질 것이다. 그래도 훌륭한 사람이 되기 위해 그 아이는 인내의 시간을 보낼 것이다. 아주 한참동안...


그래서 그 아이 아버지가 바라는 훌륭한 사람이 될 수도 있을 것이고, 혹시나 중간에 인내에 한계가 온다면 어쩌면 아버지가 바라는 훌륭한 사람은 되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다. 대신 아이가 생각하는 훌륭한 사람이 될 수는 있을 것이다. 아니 훌륭한 사람이 되지 못하면 어떠한가? 그냥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그냥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 


이 문제를 가지고 여러 생각을 할 수는 있겠지만...요즘 약자, 비정규직을 배려하지 않는 '기득권층(?)'에 대한 이해를 할 수 있는 대목이 있지 않을까 싶다.


어린시절, 청소년 시절을 학원에 몽땅 헌납하고 '훌륭한 사람'이 되기 위해 자신은 매진했는데......그들이 보기에는 공부도 안하고 성장기를 자기 마음대로 편하게 살아놓고 약자라는 이유로 '과실'만을 요구한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그들 입장에서 그것은 '공정'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닐까?

자식 교육을 위해 많은 돈을 쏟아붓고, 시간과 노력을 들이고, 심지어는 부모 자식간의 관계마저 손상하면서 얻은 성취인데...그 성취를 과연 나누고 싶어할까? 그 노력을 어떻게 인정해주어야 하는 것인지? 어디서부터 실마리를 풀어가야 하는 것인지? 


그 체제에 기생해서 살아가는 내가 주제넘게 고민할 일인지도 잘 모르겠지만....


사실 내가 생각하는 그들은 기껏해야 중산층에 불과하지만...이렇게 각자의 자리에서 우리는 견고한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카스트, 신분제도는 과연 없어진 것이 맞는지? 없어질 수 있는 것인지? 그냥 약화되거나 노골적이지 않을 뿐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런 복잡한 생각에 마음이 무겁다.


겨울 바람이 차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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