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 내 이야기가 될 줄이야!
지금에서야 방송을 볼 때면 연예와 예능이 주를 이루고 있지만 내가 어렸던 80~90년대에는 사극과 가족드라마가 성행되었던 시절이었고 지금도 몇 가지 기억이 남는 일들이 있는데.
공포물의 원조라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인 전설의 고향은 그 시작을 알리는 첫 화면이 어찌나 무서웠는지 모든 것이 작았던 아이는 어머니의 손을 꼭 잡은 채 눈을 감고서는 그 순간이 빨리 지나가길 기다렸던 일.
주말 저녁 시간이면 온 가족이 모여 당시로서는 제법 현대적 느낌의 자유분방한 구성원들로 이루어진 가족과 그와는 상반된 지극히 가부장적인 아버지를 중심으로 한 그래서 수동적일 수밖에 없는 구성원들로 이루어진 가족 간의 이야기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를 보며 웃고 울었던 일.
조금 커서는 친구들이 모여 유행하고 있는 청춘드라마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면 우리 집은 동 시간에 사극을 본다며 멋쩍어했던 일.
과거의 그 시간을 추억해 보면
어릴 적에는 방송의 내용을 잘 알지도 모른 채
그저 아버지와 어머니라는 든든한 울타리 속에서 행복해했다는 것과 학생 시절에는 친구들 사이에서 자발적인 왕따가 되기도 하였지만 부모님과 함께했던 시간이 정말 소중했다는 것.
그때는 그 모든 시간이 그냥 그렇게 흘러가는 크로노스의 그것인 줄 알았지만 결국 그 모든 것들은 하나, 하나가 모두 큰 의미가 있었던 카이로스의 시간이었다는 것이다.
어릴 때 나에게 찾아온 생각이 있었다.
정말 문득 든 생각인데,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기까지 남은 시간은 앞으로 8~9년 그러면 아빠의 나이가 60. 지금에서야 100세 시대를 이야기하며 60인 것이 인생 3막, 4막의 새로운 출발을 준비할 수 있는 한창의 나이이며 그때에도 70, 80을 사시는 분들도 계셨을 테니 결코 많다고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그때의 나에게는 이 60이라는 나이는 무척이나 많게 느껴졌었는데 그래서였을까? 정말 환갑을 앞두고 예순이었던 해에 아버지께서는 갑자기 돌아가시고 말았다. 무엇을 한 것도 누군가에게 이야기하지도 않았었는데 그렇게 생각만 하였는데, 혹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해 미리 대처하라는 예지였던 것은 아니었을까?
나이가 든 지금에서야 친인척 혹은 사회생활을 하며 맺은 다양한 관계 속에서 그것에 대해 조금은 익숙해졌지만, 그때의 나에게 있어 이는 언제나 다른 사람의 이야기였으며 드라마에서나 나오는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언제나 내 곁에서 있어 줄 것만 같았던 큰 산이었던 아버지께서는 아무것도 해드리지 못한 채 받기만 하였던 자녀에게 죽음이라는 것을 두고 가셨고 "죽음" 그것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절대 쉽지 않은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