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배알도 없이 받았던 군종 보직에 대한 즐거움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었던 것 같다. 물론 나와 입대 일자가 얼마 차이 나지 않았던 선임은 고된 일과 이후 쉬는 시간을 쪼개서 하는 것이 왜 좋은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기도 하였지만 음... 그것을 무엇이라 표현할 수 있을까? 마치 물 만난 고기라면 적절할까!! 보통은 그 선임처럼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는데 만약 입대 후 얼마 지나지 않은 상황이었다면 하루, 하루 적응하기도 쉽지 않았겠지만,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고 하늘과도 같았던 선임이 하나, 둘 전역하며 그에 따라 나 역시 이 생활에 익숙해진 후였으니 그렇게 어렵지만은 않은상황이었던 것이었다. 이것이 겉으로 보이는 주변 상황의 변화로 인한 것이었다면 또 다른 하나는 그곳에 모인 각각의 중대 군종들에 마음가짐이라 할 수 있는데 만약 이곳이 사회였다면 각자가 소속된 집단의 가치관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었겠지만, 이곳은 그런 것들이 존재할 수 없는 군대라는 조직이기에 특별한 사심이 없이 오로지 하나의 목표뿐이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내적인 부분!
여름 성경학교를 진행하던 중에 있었던 일이다. 그렇게 모두의 기도가 하늘에 닿아서였을까? 군부대가 있는 지역적 특성상 옆 동네라고 하기에도 상당한 거리가 있고 교통편 역시 불편함에도 어디서 어떻게 소식을 들었는지 내가 담당했던 영*유아 아이들이 처음 계획했던 인원보다 3~4배 더 많이 오는 것이었다. 조그마한 아이들이 끊임없이 들어오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 결국 단체복이 부족하여 초등학교 큰아이들의 옷을 마치 원피스처럼 입고 있는 모습에 모두의 얼굴에 즐거움과 미소가 그리고 그 상황들에 대한 나의 마음은 정말 특별한 기분이었다.
"그 당시에는 정말이지 우쭐했던 것 같다. 나의, 내 기도가.
하지만 결국 그것은 나로 인함이 아닌 많은 이들의 중보 기도가 있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여기서 아주 특별한 한 가지를 눈치챘는지 모르겠는데, 그것은 바로 군인과 민간인이 함께 종교행사를 갖는다는 것이다. 이것이 절대 불가능한 것인데 당시 듣기로는 이러한 형태의 군 교회가 거의 없는 아주 특수한 경우일 것으로 앞서 이야기했듯이 민간인이라고 이야기하는 일반 사람들이 특별한 목적 없이 자유스럽게는 부대로 들어올 수 없기에 교회는 부대 밖에 있었는데 걸어서 10분 정도로 나갈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 먼 거리는 아니었음에도 밖의 풍경을 볼 수 있다는 것 그것 하나만으로도 이는 엄청난 호사(豪奢)였다.
"바로 이것이 내가 군종 생활을 아주 즐겁게 할 수 있었던 또 다른 이유는 아니었을까?"
그렇게 그것만으로 만족했어야 하는데 나의 군(종) 생활 중 이후 내 삶의 큰 줄기를 돌리는 한 사건이 일어나고 마는데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그곳은 군인과 민간인이 함께 예배를 볼 수 있었고 당시 고3이었던 학생과 선생이라는 이름의 군인과 민간인의 연애가 시작된 것이었다. 하지만 군인이라는 제한된 신분 속에서 특별한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단지 서로에게 좋은 감정을 유지하는 것뿐! 그렇게 결국 나는 군화를 거꾸로 신고 만 것이었다. 아니 정말로 그런 것인가! 거꾸로 신을 군화는 있었던 걸일까? 입대를 앞두고 어떤 말도 없었으며 군 생활 중 면회는 고사하고 편지 한 통 없었던 사람을 여자친구 아니 그 관계를 연인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전역 후에도 계속 연락을 이어가던 중 X-mas 이브를 앞두고 이제 성인이 된 여자친구를 만나러 고속버스에 몸을 싣고 가던 중 내 외투 주머니 안쪽에는 군 생활 내내 아무런 연락도 없던 그 친구에게서 이번 이브 때 무엇을 할 것이냐는 쪽지 한 장이 있었다. 하지만 이미 내 눈에 그 내용은 들어오지 않았고 교회에서 나를 신학의 길도 이끌어 주었던 고마운(여성 목회자) 분에 의해 이어질 뻔했던 그 관계는 아니 시작이 없었기에 끝이라고도 할 수 없는 이상한 관계는 그것으로 정리되고 만다.
"지금 나와 함께 지내는 고마운 여인은 이들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람이니 이 모든 일들은 과거의 추억으로 끝났으며 그렇게 모두는 각자의 길을 가게 되었다."
많은 이들이 2002년을 나라 전체가 붉은 물결로 가득했던 시간을 기억할 것이다. 하지만 2001년을 기억하는 사람은 드물 것인데, 그해에는 선장을 잃은 대한민국의 축구를 살리기 위하여 거스 히딩크 감독을 영입한 해이자 나는 월드컵을 집에서 볼 것이라며, 부대 후임들에게 외치며 전역을 하였던 해였다. 그리고 그렇게 찬란했던 나의 군 생활은 마무리되었다.
"내가 신학이라는 학문에 그리고 그 길을 감에 있어 좀 더 확고한 마음이 있었다면
아니 내가 좀 더 영악해서 계산기를 누르며 내 인생에 플러스가 되는 것만을 생각했다면
이렇게 지금 알고 있는 것들을 그때 내가 알았다면
지금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신학도의 길을 가며 지금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을까?
그랬다면 행복했을까?"
"우리가 숨을 쉬고 있는 이 순간에도 무수히 많은 선택의 순간들이 있다.
그리고 그 선택은 사소한 것에서부터 사소함을 가장한 중요한 것까지 있을 수 있기에
모든 일에 있어 신중하게 그리고 그 선택을 했다면 후회가 없도록 오늘도 나 자신을 되돌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