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요한 만큼만 벌고 싶었다. part2
2002년을 기억하는지 모르겠다. 벌써 20년도 더 지난 일이겠으나 그럼에도 우리의 기억 속에서 결코 잊혀 지지 않는 월드컵 4강의 신화 그리고 그 이후 지금까지 전 국민의 마음속에 애증의 단어로 각인된 그것. 인생 역전! 그렇다, 로또가 처음으로 발행된 때이기도 하다. 물론 지금은 아니지만 당시에는 복권을 잘 알지도 못했고 그것을 할 경제적 여유도 없었기에 나의 관심 속에는 없었던 신문물이었는데 로또가 처음 나오고 2~3년 후일 것이다. 한 번은 나와 함께 일을 하던 나이가 지긋한 한 분이 로또 체크 종이를 가지고 오며 번호 여섯 개를 찍어 보라는 것이었다. 이것이 세로로 찍으면 되는 것인데 가로로 번호 여섯을 찍었고 이러한 내 모습을 보며 황당해하셨던 일.
그렇게 첫 직장으로 9개월가량을 다니며 처음에는 연배가 있으신 분들과 함께 아파트 방역 일을 하였는데 이분들 모두 젊었을 적에는 한 자리씩 했었는지 어쩌다 과거의 이야기들이 나올 때면 “내가 말이야! 왕년에는”으로 시작하였다. 나는 나이가 어렸던 지라 그들의 이야기에 끼어들기보다 가만히 듣는 편이었고 그 끝에는 하나같이 젊은 사람이 “왜 이런 일을 하느냐”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 본다면 그 물음에 등록금을 벌기 위함이라고 당당하게 이야기하면 되는 것인데 왜 그렇게 하지 못했을까? 이에 대해 정말 많은 이유와 핑계를 댈 수 있겠지만, 결국에는 생각이 없었다는 것은 아닐까? 삶의 정확한 목표와 방향성이 없는. 그냥 그렇게 흘러가는 크로노스(Χρόνος)의 삶 말이다.
그러다 사업이 잘되어서인지 조직이 커지고 팀이 나누어지게 되었고 나는 젊은 사람들과 팀을 이루어 좀 더 힘이 필요한 신축 아파트를 중심으로 계단을 청소하는 일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여기서 함께 일했던 분 중 부장인가! 중간 관리자급의 한 분이 계셨는데 아마도 기억하기에 회사의 초기 창립 구성원으로서 물심양면(物心兩面) 큰 노력을 하였었는데 웬걸 이분은 외면당했고 외부에서 다른 사람을 데리고 와서는 변화된 조직의 새로운 중추로 세우는 것이었다.
당시 이 일에 있어 그분은 굉장히 서운해한 것으로 기억이 나는데 그 이후 20여 년의 시간을 살아보니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 내 살아가는 것이 그다지 달라지는 것은 아닌 것 같다. 한 직장에서 초창기 구성원으로서 10년 이상을 일하지만 결국에는 나이가 들었다는 이유와 오래 있었다는 것으로 퇴물인 듯 취급을 받으니 말이다. 이때에만 하여도 그 일들이 이후 나의 일이 될 것이라고 누가 생각을 했을까.
하지만 당시 나와는 별 상관이 없는 일. 나는 그저 내 일만 열심히 하면 되는 것이었고 모든 기억 들이 좋았던 것은 아니었지만, 함께 일했던 모두는 좋은 사람들이었고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은 채 자기 삶의 열심인 분들이었다. 그렇게 채 1년이 되지 않는 기간 동안 일을 하며 기억에 남는 일을 이야기하며 이번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어느 날 아파트 계단을 청소하던 중에 일어난 일이다. 집마다 틈틈이 물 막음을 두었음에도 어느 집 현관으로 물이 들어간 것이었다. 마침 그곳에 내가 있었는데 집주인인 듯한 아주머니가 나오셔서는 노발대발 소리를 지르며 화를 내는 것이었다. 힘들어 죽겠는데 정말 그때에는 무슨 정신으로 그랬는지 갑자기 입고 있던 옷을 벗어 그 집 현관을 닦으려 나도 같이 큰소리를 쳤으니 말이다. 옆에 있던 동료 선배가 중간에서 거듭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면.
지금 생각해 보면 이 당시 아주머니의 반응은 지극히 당연할 것이다. 물론 좀 더 좋은 말로 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기도 하지만 긍정이든 부정이든 어떤 표현을 함에 있어 그것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고 더욱이 위에서와 같은 상황이라면 아쉬워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語不成說)이 아닐까? 당시의 나는 세상 물정 모르는 그저 젊은 혈기 밖에는 없었던 시절.
이런 일도 있었다. 아파트 주변으로 소독약을 뿌리며 방역 중이었는데 얼마 떨어져 있지 않는 거리에서 어린아이와 함께 걷던 어머니의 말이었다. “공부 열심히 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너도 저런 일을 한다.” 처음에 그런 일을 겪어서였을까? 씁쓸함에도 두 번째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으니 확실히 사람은 적응하는 생물이 맞는 듯하다.
공부와 일이 무슨 관계가 있다는 말인가? 나도 지금 아이를 키우지만, 공부는 지금의 너의 위치에서 네가 해야 하는 일인 것일 뿐이라고 하는데 과연 그 아이는 어떤 모습으로 성장했을까? 과연 그런 말이 그 아이에게 좋은 교육이 되었을지 모르겠다. 그렇게 약 일백만 원 조금 안 되는 급여를 받으며 나의 첫 사회생활은 시작하였고 0원이었던 나의 통장 잔액은 이때부터 조금씩 늘어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