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산다 9화
독일 그뤼네바흐, 2023년 4월
나는 7시에 눈을 떴다. 여전히 켜져 있는 노란 램프가 무색할 만큼 강한 햇빛이 커튼을 뚫 고 방안을 비췄다. 밤새 쌓인 눈곱을 비비자 방안 가득한 적갈색 나무벽이 눈에 들어왔다. 당연했다. 이 집은 나무집이다. 나는 침대 등받이에 등을 기댔다. 내 호스트인 요하네스, 미리암 부부가 붙여 놓은 지도를 보며 멍을 때렸다. 순간 반팔 속으로 한기가 스몄다. 독일 남쪽 알고이 지방은 4월이 되어도 여전히 추웠다. 오들오들 떨며 다시 이불속으로 들어갔다. 아이폰을 켜 퀸의 <Save me>를 틀었다.
집 밖에선 전기톱 소리가 진동했다. 일명 팀 마티아스가 아침 댓바람부터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요하네스의 이웃이자 목수들이다. 마티아스, 쟈크, 이언, 루디가 함께 일한 다. 요하네스는 그들이 지난 1년 전부터 이 집을 맡아 짓고 있다고 했다. 낡은 나무집의 뼈대는 유지한 채 리모델링하는 일이었다. 커튼을 젖히고 뒷마당을 바라보았다. 단열재를 크기에 맞추어 자르고 있는 루디와 눈이 마주쳤다. 이 지역 역도 챔피언인 루디가 싱긋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루디는 몸이 정말 좋았다. 그런 그도 이 아침은 추웠는지 온몸을 겨울옷으로 무장하고 비니로 머리를 감쌌다. 나는 어제 작업복으로 받은 요하네스의 옷을 입었다. 청바지와 Jotz라고 쓰여 있는 푸른 리복 맨투맨이었다. 거실로 나와 고개를 드 니 미리암은 이미 2층에서 화상 회의를 하고 있었다. 그녀는 차분하지만 빠른 독일어를 구사했다. 손을 흔들어 인사했다. 그녀도 손을 흔들면서 Schlaf gut?(잘 잤어?)하고 안부를 건넸다. 엄지를 치켜들었다.
하얀 삼단 서랍장 맨 위서랍을 열었다. 딱딱한 독일 빵이 가득했다. 그중 가장 부드러워 보이는 것을 한 뭉치 꺼내 칼로 두 조각을 썰었다. 냉장고를 열어 귀리로 만든 우유를 꺼 냈다. 일반 우유보다 단 맛이 느껴졌다. 빵 두 조각과 시리얼만 먹었는데도 포만감이 가득했다. 오전 내내 우리는 작업에 몰두했다. 나는 망치로 집 벽면에 붙어 있는 낡은 못들을 모두 뜯어냈다. 못을 다 뜯어내자 마티아스와 쟈크가 아슬아슬하게 벽에 걸쳐있는 나무판자를 모두 뜯어냈다. 그 속에는 세월이 느껴지는 단열재로 가득 차 있었다. 요하네스는 오늘 저 단열재들을 모두 꺼낸 후 새로운 단열재로 갈아 끼우는 작업을 한다고 내게 일러 주었다. 쟈크가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공업용 마스크를 건넸다. 그는 저 단열재 뭉치들은 유리로 되어 있어 폐에 좋지 않기 때문에 마스크를 절대 벗지 말라고 말했다. 노란 솜뭉치 같은 것이 어떻게 유리인지 믿기지 않았지만 최대한 조심하며 오래된 단열재를 뜯어냈 다. 노란 뭉치들을 절반정도 뜯어냈을 때 마티아스가 장갑을 벗으며 Mittagessen!(점심!) 하고 외쳤다. 우리는 요하네스가 근처 피자리아에서 사 온 피자를 순식간에 먹어치웠다. 쟈크는 장비를 챙기러 집에 다녀오겠다며 내게 같이 가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나는 입안에 남은 피자를 마저 씹으며 좋다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쟈크의 빨간 현대차를 타고 그의 집으로 향했다. 그의 집은 상당히 깊은 산골에 있었다. 이 마을은 초원과 언덕으로 가득한 시골이었지만 쟈크의 집은 산 중턱에 있어 또 다른 시 골로 들어가는 듯한 기분이었다. 차에서 내리자 우릴 반긴 건 셀 수 없는 닭들이었다. 낯 선 나를 보고 짖는 개도 있었다. 닭이 정말 많다고 말하려는 순간 저 쪽에서 공작새 두 마 리가 날아올랐다. 너무 신기해 웃음이 나왔다. 쟈크는 활짝 웃으며 다음에 알고이 지역에 올 땐 본인의 집으로 오라고 말했다. 대충 둘러봐도 할 일이 정말 많아 보였다. 나는 쟈크와 장비를 챙겨 차에 올랐다.
우리는 다시 요하네스 집으로 돌아가며 언어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다. 쟈크는 네덜란드 사람이지만 프랑스인처럼 옷을 입고 독일어를 구사한다. 문득 그가 얼마나 많은 언어를 구사하는지 궁금해졌다. 쟈크는 제도권 교육을 받지 않고도 독일어, 프랑스어, 네덜란드 어, 영어, 이탈리아어를 능숙히 구사했다. 그는 그가 내 나이일 적 몸이 불편했다고 말했다.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있어야 했는데 그때 어린이 티비 프로그램을 보는 것을 시작으로 언어를 익혔다고 했다. 그러면서 새로운 언어를 배울 땐 다른 무엇보다도 그 언어를 사 용하는 사람들을 유심히 지켜보라고 일러줬다. 우선 사람들이 그 언어를 어떤 느낌으로 사용하는지 관찰하는 데 시간을 쏟은 다음 우리가 보통 하는 언어 공부의 단계를 밟으라고 말했다.
나는 외고에서 독일어를 3년 간 공부했다. 그런데 몇 년이 지나자 외워버린 표현 말고는 한 문장도 구사하기 어려웠다. 부모님의 지원으로 비싼 수업료를 지불하고 독일어 자격증을 취득했던 것은 더 이상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고등학교를 다니며 독일어를 공부한다 고 우쭐댔던 스스로가 부끄러웠다. 겉치레였을 뿐이었다. 쟈크의 말을 아직도 잊을 수 없 다. 한국에 돌아온 나는 쟈크의 방식대로 이탈리아어를 공부하고 있다. 쟈크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들이 내게 일어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