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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찬 Dec 06. 2022

계약하지 못한 자유계약 선수는

 돌아보니 그랬다. 우연히 태어나, 말을 배우고 숫자를 세고 사람들 사이에 규칙이 있다는 것을 배울 때쯤, 아이는 그에게 절대적인 존재였던 엄마와 떨어져 유치원에 들어갔다. 어느덧 꽤 자연스러운 말솜씨를 뽐낼 무렵, 여린 두 팔에 가득 얹힌 교과서와 함께 초등학교에서 6년을 보냈다. 기뻤던 졸업 후, 아직 다 자라지 않았다는 이유로 너무 컸던 교복과 함께 중학교에서 3년을 보냈다. 헐렁한 교복을 창피해하던 아이는 어느덧 짧아지고 낡은 교복을 창피해했다. 이제는 거의 다 컸다며 얼추 맞는, 그러나 조금은 커서 어색했던 새로운 교복과 함께 고등학교에서 3년을 보냈다. 아이는 평일 내내 등교하고 짧은 주말을 아쉬워하는 그 삶이 영원할 것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매주 쳇바퀴 돌듯 했던 생활의 반복으로 다른 생활을 상상하기 조차 어려울 때쯤, 아이는 고등학교 졸업장을 받아 들었다. 마음고생했던 3년이어서 그랬는지, 해냈다는 성취감보다 견뎌냈다는 안도감이 들던 그 한 장의 졸업장. 아이는 한편으로 ‘이대로 졸업해도 괜찮은 걸까?’, ‘왜 쫓겨나는 거 같지?’하고 생각했다. 그렇게 내던져진 아이는 원하는 대학에 가지 못할 수능성적과 함께 계약 불발의 자유계약 선수가 되었다.

 돌아보니 그랬다. 제도권 교육 아래서 국가와 가족을 제외하더라도 나는 항상 어딘 가에 속해 있었다. 어디 학교, 무슨 반, 무슨 과, 무슨 동아리 김윤찬. 잃어봐야 소중함을 안다고 했던가. 당시에는 알지 못했지만 어떤 공동체에 속할 수 있다는 건 내게 큰 안정감과 자존감을 갖게 했다. 약 14년 동안, 주어진 공동체 속에서 생활하며 내가 속한 공동체를 비난하기도 했지만 비난할 공동체조차 상실하자 매우 당황스러웠다. 심지어는 내가 무엇을 상실했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상실감을 겪고 나서야 내가 무엇을 잃었었는지, 상실감이 어느 정도였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더불어 내가 어떤 성질의 공동체에서 자라 왔는지도 짐작할 수 있었다.

 초식동물은 모여 산다. 다닥다닥 붙어 생활하는 그들의 생존전략은 무엇일까? 그 거대한 집단의 본질은 위협해오는 포식자를 대적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에 속한 개인의 두려움과 위험 부담을 줄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포식자의 위협에도 꼴찌만 하지 않는다면 생존할 수 있는 전략이 아닌가. 얼룩말들이 모이면 모일 수록 공동체에 속한 얼룩말 개체가 낙오되거나 잡아 먹힐 확률이 줄어든다. 게다가 그 확률의 감소량만큼 두려움 또한 줄어든다. 대게 학부모들은 성적이 좋은 아이가 다니거나 많은 아이가 다니는 학교와 학원에 아이를 보내려 노력한다. 이 학습전략은 과연 아이에게 잘 공부하는 법을 가르치기 위한 것일까? 그 속내는 우리 아이가 최소한 꼴찌를 면하거나 속한 공동체에서 낙오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더불어 아이와 부모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안정감을 높이고 두려움을 낮추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물론 개인의 책임보다도 사회구조의 책임이 큰 문제다.) 그렇게 아이들은 초식동물로 자라고 평생을 그런 태도로 살다 간다. 나 또한 그렇게 자랐다. 다를 바 없었지만 내가 그렇게 살아왔다는 걸 인정하기까지 몇 년이 걸렸다. 그제야 공동체는 그 자체로 소중한 가치지만 더 나아가 어떤 공동체에 자리 잡을 것인지 또한 중요한 고민거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 사회에서 계약에 실패한 자유계약 선수로 생활한다는 건 그다지 유쾌한 일은 아니다. 우리 사회는 공동체에 속하지 않은 개인에게 그리 친절하지 않다. 이 작은 주제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은 있지만 아직 내 이해와 정리가 부족하기에 후에 충분히 공부하고 표현하고 싶다. 숨 고르고 돌아와서, 사람은 만남을 통해 배우고 변하는 존재다. 우리는 새로운 인연을 통해 우리의 세상을 넓혀가고 다른 세상을 이해한다. 그동안 혼자 무언가를 배우고 생각해왔지만 그것들은 온전히 자리 잡지 못한 채 떠돌았다. 또, 굳건할 줄만 알았던 깨달음이나 결심이 너무 쉽게 사라져 버리곤 했다. 어딘 가에 뿌리내리지 못한 생각과 결심이 내 기대만큼 깊어질 리 없었다. 실천과 분리된 깨달음은 추상적이었다. 나는 내 생각과 의지를 토론과 행동으로 구체화시킬 수 있는 공간, 곧 공동체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요즘은 어떤 공동체에 자리 잡을지 고민한다. 내 정치적 성향과 삶을 대하는 태도를 비롯한 모든 것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가보고 있다. 지난 시간을 함께한 이들과의 만남 또한 소중한 공동체다. 그런 의미에서 다양한 이들이 모이는 대학은 최고 수준의 공동체다. 앞으로의 대학생활이 기대되는 이유다.

 우리 모두는 자유계약 선수다. 속해 있는 곳이 어디든, 우리는 우리가 원할 때 자유로워질 수 있는 존재다. 주체적인 선택이라면 걱정이 덜하겠지만 살다 보면 분명 그렇지 못할 때 또한 생기고야 만다. (주체적이라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그런 생활이 길어지면 판단력이 흐려지고 낮아지는 자존감과 깊어지는 열등감에 출처를 알 수 없는 죄책감이 생길 수 있다. 그럴 땐 기억하자. 우리만 이런 상황에 처해있는 것은 아니며 그게 우리 잘못 또한 전혀 아니다. 우리를 홀로 있게 하는 이유와 목표가 우리 삶의 전부는 아니다. 우리를 구성하는 하나의 요소일 뿐! 헤쳐 나가는 방식은 다양할 지라도 그 시간들이 우리를 우리 되게 하는 것에 가까워지는 법을 알려준다고 믿는다. 얼떨결에 계약에 실패한 자유계약 선수 생활을 겪은 나는 그동안의 불안했던 시간 덕에 내가 원하는 공동체의 성질을 알게 됐고 함께 하고 싶은 공동체의 문을 두드릴 용기를 얻게 됐다. 그럴듯한 공동체에 속해야 한다는 조급함이 사라진 건 덤이다. 3년 간의 여백이 내게 남겨준 것은 앞으로의 삶에 있어 내 생각보다 더 소중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지불해야 했던 대가는 있었지만 공짜는 없었던 것일까.



 모든 자유계약 선수들이 미계약에도 행복할 수 있기를, 모두가 마음만 먹으면 어디든 이적할 수 있는 최고의 자유계약 선수들임을 잊지 말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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