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되어 보니, 부모로서의 말과 행동이 어떻게 자식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생각하는 시간을 많이 가진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아이의 표정이 나의 표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생각에, 내가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아이는 부모의 얼굴을 읽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나 스스로도 좋은 생각과 좋은 감정을 유지하면서 얼굴에 비치는 부모의 모습이 항상 좋게 되려고 노력 중이다.
말도 못 하는 아이에게 감정이 생길 때면 갈등이 생기곤 한다. 좋은 감정 있던 나의 마음이 좋지 않게 변할 때, 그것을 그대로 표현하는 것이 아이에게 좋은 것인지 아니면 나의 감정을 숨긴 채 애써 좋은 모습을 보이는 것이 좋은 것인지 생각을 하곤 한다.
감정을 그대로 드러 낸다면, 아이는 나의 눈치를 살필 것 같다는 생각에 미안해지고, 앞으로는 그런 감정 자체를 안 가져야지 생각하겠지. 부모가 아닌 인간으로서 어떻게 매일 좋은 감정을 유지하기가 힘들다는 핑계로 나의 감정을 컨트롤 못한다는 자책감이 생길 것 같다.
감정을 숨긴다면, 이 또한 아이에게 거짓된 감정을 표현하기에 나의 마음이 편하지가 않다. 포커페이스처럼 이중적인 태도를 보이는 부모가 자식의 눈동자에 맺히고 있는걸 자식이 알고 있다면, 부모로서 마음이 좋지 않을 것 같다.
이런 두 가지의 마음이 아이를 볼 때 한 번씩 생각나게 하고 그 해결책도 특별히 생각해놓은 건 없다. 다만 못된 부모는 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만 한다.
이제는 아이가 외출할 수 있는 개월 수가 되어 밖에 나가보니 바깥의 일상이 아이 교육에 있어서 수많은 샘플을 보는 듯하다.
한 번은 이런 적이 있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내가 가고자 하는 층에서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지만, 난 내릴 수가 없었다. 엄마와 세 살쯤 되는 아기가 엘리베이터 문 앞에 서있었기 때문이다.
엄마는 아기에게 말했다.
"사람들 내리니까 옆으로 비켜서야지"
근데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그 엄마는 그대로 엘리베이터 문 앞에 서있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그 여자를 비켜서 엘리베이터에서 내릴 수밖에 없었다.
부모의 의도는 이랬겠지 생각해보았다.
자식에게 엘리베이터 앞에서는 내리는 사람을 생각해서 옆으로 비켜서 주는 것이 교육이라고 생각했을 것 같다. 부모는 말만 하고 행동을 옮기진 않지만, 자식에게 말로만 가르치려는 이런 부모의 이중적인 태도가 미치는 교육이 정말 잘 된 교육일까 생각해보았다. 세월이 흐른 뒤 그 아이가 성인이 되었을 때, 그 자식에게 어떤 식으로 교육을 할지는 나도 의문스럽다.
상대방을 배려한다면, 엘리베이터 안에서는 누구나 언제든 사람이 내릴 수 있으니까, 엘리베이터 도착하기 전에 미리 부모와 자식에 엘리베이터 옆으로 비켜서 주는 것이 아이에게 말로만 가르치는 교육을 대체할 수 있고, 그 교육적 효과도 있지 않을까?
아이들이 부모의 말에 의해서만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면, 다들 바르게 크지 않았을까.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것 같다. 아이들은 부모의 말뿐 아니라 생각, 행동, 태도, 사고방식, 표정 등 다양한 측면에서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