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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람 Jan 13. 2024

그녀가 보내온 글


‘그녀는 지금 생장에서 피레네산맥을 넘는 중이라고 소식을 보내왔다. 그 길은 우리가 함께 걷기로 예정된 길이었다. 그러나 가족들의 만류로 포기한 산티아고 순례길. 장시간 비행기를 타고 가서 걷는 길이 안압을 올릴 수 있기에, 그래서 함께 간 이에게 걱정을 끼칠 수도 있기에, 산티아고 순례길은 나의 버킷리스트에서 지울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고친 눈인데......

그 한 마디로 나를 위로하며 그녀의 긴 순례 여정에 신의 축복이 함께 하길 기도한다. 

부엔 까미노!!!’     


함께 걷자 약속했던 이웃이 부득이한 사유로 떠남을 포기했다. 나와 마음으로 교감하는 지인 중 한 사람인 이 분 역시 순례길 걷기를 소망했기에 우리는 기꺼운 마음으로 동행을 약속했다. 하지만 세상이 언제나 내 편일 수는 없다. 선생의 눈에 문제가 생겨 버킷리스트였다는 이 여행을 포기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함께 걷지 못하는 나의 아쉬움이 아무리 크다 한들 선생의 그것만 하겠는가. 아쉽고 안타깝지만 순응의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대신 두 마음이 한 몸이 되어 걸어야겠다는 생각을 마음속에 품으며 한참 동안 눈을 껌뻑거리며 코를 훌쩍였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것이 우리의 세상살이이다. 현역에서 은퇴할 즈음 그동안 봐왔던 모습과 달리 행동하는 사람을 보고 충격과 실망이 매우 컸다. 잠을 못 이루기도, 살이 쭉쭉 빠지기도 했다. 길 위에서 생각하는 시간 또한 많아졌다. 겸손과 자만을 동시에 떠올리고, 사람을 통해서 사람이 성장함을 느끼기도 했다. 

      

톨스토이의 단편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되새겼다. 내 마음속에는 무엇이 있는지, 나에게 주어지지 않은 것은 무엇인지, 나는 무엇으로 사는지를 화두로 잡고 걷기도 해야겠다.   

    

수도원에서 운영하는 공립 알베르게는 주변 환경이 깔끔하고 쾌적하다. 그러나 모르는 이들과 함께 밤을 보내야 하는 첫 숙소이기에 낯설다. 내 침대는 길게 늘어선 2층 침대 대열의 안쪽 2층으로 배정되었다. 분위기가 어색해 어정쩡하게 서 있는 내게 차도남 느낌의 남성이 자신의 1층 침대와 자리를 바꾸어준다. 나중에 커피 한 잔 대접하겠다는 인사말을 남기고 짐을 풀었다.      


쉽게 잠들지 못하고 별의별 생각을 잔뜩 끌어안은 채 아침을 맞았다. 아침은 언제 어디서나 새날이다. 침낭을 정리하고 낯선 이들과 인사를 나누니 내가 어디에 있는지 자각이 된다. 익숙하지 않은 분위기에 압도된 상태로 조심스럽게 식당을 찾아 나섰다. 아침 식사는 어제 들어오면서 신청해 놓았고 이미 식권도 받은 터이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같은 심정으로 미로를 걸었다. 평소에도 공간 감각이 떨어져 길눈이 어둡다는 얘기를 입에 달고 사는 내가 이 복잡한 건물에서 홀로 식당을 찾아가고 있다.       


새로운 어딘가를 찾는다는 건 나에게 엄청난 눈썰미를 요구한다. ‘그 나물에 그 밥’같이 비슷한 회색 건물 안에서 쩔쩔매며 식당을 찾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듯 혼자 길 떠남을 즐김은 맛본 자만이 알 수 있는 자유의 만끽 때문이다. 

결혼 32년 차에 느끼는 이 자유는 오롯이 나만의 것이다. 지금도 여전히 스스로를 아프면서 크는 나무라고 여기는 나는 이러한 자유를 통해 생각을 다듬고, 마음을 다스리고, 행동을 제어한다. 세상살이가 녹록지 않음은 분명하지만 길 위에 서 있을 때만큼은 내 판단대로 행동하고 움직인다. 내가 나를 경영하는 CEO이기 때문이다.     

  

CEO는 최고 경영자 1인이다. 누가 대신하거나 대체될 수 없다. 그러니 오직 나만이 내 인생을 책임지고 만들어 나가야 한다. 길 위에서 스스로를 돌아보고 앞날을 그릴 것이다. 어제와 내일은 다른 삶이다. 음식을 만들 때도 양념에 따라 맛이 달라는데 인간의 삶은 오죽할까. 어떤 양념을 하고 어떻게 버무리느냐에 따라 사는 맛이 달라짐은 당연한 이치이다. 마치 손맛에 따라 달라지는 음식의 맛과 같다.      


내 삶을 맛나게 만들고 싶다. 이왕이면 더 가치 있고 의미 있게 살고 싶기도 하다. 지금까지 허투루 살지 않았다고 자부하는 것도 이런 생각을 바탕에 깔았기에 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삶은 까다로운 수학문제를 푸는 것 같다. 처음부터 술술 풀려서 정답이 나오면 다행이지만, 혹여 틀렸다 하더라도 좌절할 일은 아니다. 다시 차근차근 풀면서 정답을 찾기 위한 노력을 할 것이다. 이것은 내 가 이 길을 걸으려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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