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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람 Feb 02. 2024

부르고스 대성당에서 '빠빠모스카'를 만나다

- 걷기 12일 차 - 

카스티야 왕국의 초기 수도였던 ‘부르고스’를 향하는 마음이 부풀어 있다. 역사의 중심지인 동시에 유서 깊은 도시 부르고스는 스페인에서 가장 웅장하고 아름다운 건축물로 알려진 부르고스 대성당이 있는 곳이다. 제대로 걷지 못해 행동에 제약이 따르지만 그래도 이곳만큼은 꼭 방문하려고 한다.      


아를란손 강가에 있는 부르고스 대성당의 남쪽에는 ‘산타 마리아 문’이 있다. 도시를 감싸는 성벽과 구 시가지 입구에 위치한 이 문을 통과해 부르고스 대성당을 향해 간다.    

스페인 성당 중 유일하게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1984년)으로 등재된 부르고스 대성당. 이 성당은 스페인에서 세 번째로 큰 규모이며 산티아고로 가는 순례길에서 만나는 가장 성스럽고 위대한 건축물 중 하나이다. 이렇듯 명성이 자자한 성당은 마우리시오 신부님의 벽돌 하나하나가 기초가 되어 200년에 걸쳐 지어졌다고 한다. 이러니 어찌 우리가 신앙의 위대한 힘에 토를 달 수 있겠는가.

여기에 더해 국왕 펠리페 2세는 “이것은 사람이 만든 것이 아니라 천사의 솜씨다.”라며 극찬을 했다니 벌써부터 기대감에 마음이 달뜬다.


차로 이동했더니 성당 개방 시간보다 일찍 부르고스에 도착했다. 여유롭게 성당이 마주 보이는 산타 마리아 광장 가의 Bar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는다. 한 페이지 읽고 대성당 한 번 바라보고 또 한 페이지 넘기며 성당 한 번 바라보기를 반복했더니 어느덧 11시 40분이다. 기다렸다는 듯이 자리를 털고 일어나 절뚝거리며 성당으로 향한다.


고딕 양식의 첨탑이 우뚝 선 대성당의 출입문 주변은 화려한 조각 장식으로 그득하다. 특히 문 위쪽의 팀파눔(tympanum) 중앙에는 예수가 앉아 있고 그 아래 앉아 있는 12제자 중 오른쪽에서 네 번째 제자가 바로 야곱이다. 들고 있는 성경에 꼰차(가리비)가 붙어 있는 것으로 구별한다기에 목을 빼고 바라보다 성당 안으로 걸음을 옮긴다.   

     

빨리 걷지 못하기에 종 치는 시간을 놓칠까 봐 가장 먼저 ‘빠빠모스카’를 만나러 갔다. 빠빠모스카는 성당 안 천장에서 정오마다 종을 치는 소녀의 이름이다. 애틋하고 슬픈 전설을 갖고 있는 아름다운 빠빠모스카는 그녀를 짝사랑하던 엘리게왕의 분부로 만들어진 조각상이다.     

 

어느 날 왕이 대성당에서 기도를 마치고 나오다 예쁜 아가씨를 보게 됐다. 어찌나 아름다운지 날이 가고 달이 가도 잊을 수가 없었다. 상사병에 걸린 왕은 조각가에게 그 아가씨를 만들라고 했다.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인가. 고개를 빼들고 천장을 바라보니 내 눈에 들어온 빠빠모스카는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다. 병정이 서 있는 것 같은 모습이라 여성스러움은 눈을 씻어도 찾을 수가 없다. 이처럼 이상한 모습의 빠빠모스카는 그래서 더 관람객의 눈길을 끄나 보다.      


성당 안에는 내 관심을 집중시키는 볼거리가 몇 개 더 있었다. 그중 하나는 전쟁 영웅 ‘엘 시드(El Cid)’와 그의 아내 히메나(Jimena)가 잠들어 있다는 것이다. 예배 공관과 주교 회의실이 만나는 바닥의 중심에 조성해 놓았는데 부르고스가 엘 시드의 고향이기 때문에 여기에 모셨나 하는 생각을 잠깐 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원작 ‘산타 마리아 막달레나’를 ‘지오반 피에트로 리졸리’가 모사한 작품도 흥미롭다. 그런가 하면 ‘마리아와 아기 예수’가 있는 예배실의 마리아는 매우 풍만하고 화려한 여성으로 묘사되어 있어 그 모습이 낯설기만 하다     


황금으로 치장되어 있는 ‘천국의 계단’은 또 어떠한가. 스테인드글라스 창문 아래에서 데칼코마니를 이루며 자리 잡고 있는 이 계단을 올라가면 천국에 다다를 수 있으려나. 그 천국은 내가 그리는 그런 세계일까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된다. 

    

대성당은 예배를 드리는 방들이 여러 개 있다. 화려하기 그지없는 예배실은 각 방마다 다른 색깔을 지녔다. 그중 한 방에서 치마 입은 예수님을 만났다. 치마 입은 예수님은 듣도 보도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사연을 알고 나니 ‘그럴 수도 있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봉헌식이 돌아왔으나 촉박한 기일로 예수님이 완성되지 않자 작가가 급한 대로 치마를 입혀드렸단다. 그 이후 지금까지 예수님은 치마를 입으신 채 우리를 내려다보고 계신다. 



오늘은 ‘핼러윈데이’로 온 도시가 축제 분위기로 들썩인다. 내가 머무는 알베르게 앞에도 사탕을 안 주면 공격하겠다는 작은 악마 한 무리가 어슬렁거린다. 한 움큼의 사탕을 나눠주며 아이들이 귀여워 웃음을 터뜨렸다. 

애, 어른 할 것 없이 온통 분칠하고 분장한 사람들이 거리를 활보하고, 순례자들은 아이들에게 사탕을 나눠주며 덩달아 축제를 즐긴다. 나도 그들 속에 끼어 친해진 사람들과 웃고 떠들었다. 

      

오늘 머무는 알베르게는 공립임에도 불구하고 시설이 만족스럽다. 그러나 푹 쉬고 가뿐하게 출발하려던 내 생각은 허공으로 흩어졌다. 핼러윈 데이의 영향인지 소란스러움이 잠 잘 줄을 모른 채 시간을 점령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 걷기 12일 차 (아헤스~부르고스(Burgos)) 23.5km / 누적거리 292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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