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리지 않기로

우울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글로 기록합니다.

by 사잇결

나는 나에게 주어진 환경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한다고 믿었다.
그렇게 살아왔다.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말은
언제부턴가 나를 옥죄는 강박이 되었다.


그런데 우울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그렇게 아등바등 스스로를 닦달하지 않아도 된다고.


나는 그런 우울을 멸시했고, 천하게 여겼다.
우울 때문에 내 삶이 엉망이 되었다고 저주하기도 했다.


하지만 억눌리면 억눌릴수록
우울은 더 기승을 부렸다.
나를 봐달라고,
더 이상 외면하지 말라고
아우성치듯 날뛰었다.


더는 어찌할 바를 몰라
나는 조용히 멈춰 섰다.


그리고
불안과 두려움이 변해버린
그 우울을 바라보았다.


아주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안녕, 나의 우울아.”


그제서야
사냥개처럼 날뛰던 우울이 잠잠해졌다.
그제서야
오랫동안 무시당하던 내가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나를 안아주었다.

그제서야
미처 보지 못했던
내가 어질러 놓은 잔해들이
하나둘 눈에 들어왔다.


그렇게 나는
나의 우울을 받아들였다.

우울은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다는 말이
그제야 내 안에 자리 잡았다.


그렇다고 모든 것이 괜찮아진 것은 아니다.

다만 이제는,
나를 몰아붙이던 자리에서
한 발 물러설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나를 버리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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