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리지 않기로 한 밤

우울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글로 기록합니다.

by 사잇결

지극히 우연히,
퇴사한 회사의 구인 공지를 발견했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직장을 다니고 싶었고,
내가 하고 싶었던 일들,
내가 할 수 있는 역할들이
그곳에 여전히 남아 있었다.

그 시절의 나는 분명, 활기찬 직장인이었다.

그러나 원치 않은 퇴사를 겪으며
자존감은 바닥을 쳤고,
나에 대한 혐오와 수용,
온갖 감정이 한꺼번에 소용돌이쳤다.
우울이 함께 찾아왔던 이유이기도 했다.


트라우마처럼 느껴졌던 그 직장에
다시 지원서를 쓴다는 것은
심장이 아플 정도로 두근거리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하고 싶은 일이 있었기에 나는 다시 용기를 냈다.


합격 소식을 들었을 때,
마땅히 기뻐해야 할 순간에도
마음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과연 할 수 있을까.
과연 잘 해낼 수 있을까.
이 선택이 나를 더 망치지는 않을까.


온갖 생각에 잠을 설친 밤,
나는 조용히 나에게 말을 건넸다.


불안하구나. 그럴 수도 있어.

잘 해내고 싶구나. 그럴 수도 있지.

후회할까 봐 두렵구나. 그래도 괜찮아.


누구도 아닌, 나 스스로를 다독이며
나의 불안과 두려움을 받아들였다.


그렇게 나는
우울을 없애려 애쓰는 대신,
우울과 함께 공존하는 방법을
조금씩 터득해가고 있었다.


새벽녘이 밝아올 즈음,
‘잠을 자야 하루가 편할 것’이라는 강박에서 벗어나
불완전한 나를 그대로 인정하자
비로소 눈이 스르르 감겼다.


불안은 여전히 남아 있었지만,
나는 나를 버리지 않은 채로 잠들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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