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인을 알 수 없는 아픔 끝에서

우울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글로 기록합니다.

by 사잇결


두통은 예고 없이 찾아와 나를 흐릿하게 만들었다.




정신이 멍해지고 하루가 통째로 무너지는 날도 있었다.
결국 견디다 못해 신경과를 찾았다.


피검사, 뇌 CT, 신경계 전달 검사, MRI까지
받을 수 있는 검사는 모두 했다.
결과는 하나였다.
“특별한 이상은 없습니다.”


병이 아니라는 말이 나를 더 불안하게 했다.
아무 문제가 없다는데 나는 왜 아플까.
왜 두통은 여지없이 찾아와 나를 휘갈기는 걸까.
답 없는 생각들이 나를 더 숨막히게 했다.


두통이 올 때마다 진통제로 버티다 보니
나는 점점 어디엔가 갇혀가는 기분이었다.
숨은 쉬어지는데 살아 있는 것 같지 않고,
팔다리는 움직이는데 몸은 허공에 떠 있는 사람처럼 실감이 나지 않았다.
막막함이 목까지 차올랐다.


그때 문득, 상담하는 친구가 떠올랐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마음을 가장 편하게 털어놓던 그 친구.
그 생각이 스치자마자 손이 먼저 움직였다.


“숙아, 나 좀 도와줄래?”
“무슨 일인데? 내가 뭘 도울 수 있을까?”
“나… 우울감에 빠진 지 몇 달 된 것 같아.”

더는 이대로 버틸 자신이 없었다.
용기 내어 마지막 문자를 보냈다.
“나… 살고 싶어.”


그 말이 너무 급박하게 들렸던 걸까.
친구는 곧바로 전화를 걸어왔다.

두 시간을 붙잡고 이야기했다.
물속에 빠진 사람이 겨우 생명줄을 붙잡은 듯,
묵혀 있던 말들이 천천히 흘러나왔다.
응어리는 조금씩 풀려갔다.


고등학생 때처럼, 서로의 마음을 계산 없이 내어놓던 그 시절처럼.
그리고 그때처럼 나는 다시
조용히 마음을 열 수 있었다.

전화를 끊고 나서야
조금은 살아낼 수 있겠다는 용기가 어렴풋이 찾아왔다.


앞은 여전히 흐릿하지만,
안갯속 멀리서 작은 불빛 하나가
나를 향해 조용히 손짓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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